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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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강아지의 유해

moosya
2008년 02월 03일 01시 41분 46초 1705 1
겨울에 접어들 때쯤의 일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가 벽에 매어 있는 것을 보았었다.
그런데 벽 꼭대기에서 내려진 끈은 너무 짧아 강아지가 선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측은한 마음으로 지나가려는데 강아지가 갑자기 앞발을 들어 조금이라도 나에게 다가오려고 총총 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웠다. 두발을 들면 조금으라도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것을 깨닿고 있는 녀석의 총명함에 놀랐고,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꼬리를 흔들면 나를 반기는 녀석의 천진난만하고 긍정적인 활력에 놀랐다. 무릇 생명 자체에 담겨 있는 근본적인 해맑음을 보는 듯했다.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 강아지를 묶어놓은 잔혹한 어떤 인간을 원망하며 어떻게든 끈을 좀 늘려줄 수 없을까 궁리를 해보았지만... 강아지를 묶어놓은 그 끈은 강아지가 목 졸려 죽지 않을 만큼의, 딱 그만큼의 여유만을 그 강아지에게 활애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돌아가려다가 슈퍼마켓에 들러 천하장사 쏘세지 하나를 사서 먹여주었다. 그리고 내가 갈길을 갔다. 녀석은 앞발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멀어져 가는 나를 끝까지 지켜보면서 꼬리를 흔들어 댔었다.

녀석은 흔희 얘기하는 토종견인 일명 똥개였는데 그 놈의 맑은 눈은 녀석의 총명함을 증언하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예의 그 총총걸음으로 앞발을 들고 나를 반겼다. 녀석을 쓰다듬다보면 똥개 특유의 꼬리한 냄세가 손에 배어 약간 불쾌하기도 했지만 한 생명의 냄새이기에 나 스스로를 책망했었다. 나는 그 녀석이 묶여있는 그 담벽, 그 골목을 지날때마다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나도 같이 먹고 했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정을 쌓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열흘정도가 지난 어느날이었다.
항상 그 담벼락 앞에서 총총 재자리 걸음으로 나를 반기던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어떤 동물의 것인지 모를 유골들이 소복히 쌓여있었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그 강아지가 묶여있는 바로 그 자리에....

그래, 인정한다. 인간이 돼지와 소를 먹듯 강아지를 먹는 것도 별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자연의 이치와 생명의 보존이 이렇듯 서로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 인정한다. 하지만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른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된 또 다른 생명에 대한 경외를 모른다. 대자연 속에 얽히고 섥히어 살아감에 있어 우리의 존재를 보존할 수 있게 해주는 그 모든 감사함에 대해서 인간은 각성해야한다.

아니 비록 거창한 핑계를 대지않더라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과연 '인간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야만적이다. 숨막힐 듯 짧았던 끈과 자랑이라도 하듯 그 유해를 쌓아두는 방법이나... 더더욱, 옆에 두고 보아오던 생명을 단지 자신의 먹잇감으로 여길만큼 인간의 식문화가 궁핍하지 않을 지언데 어찌 감정에 창살을 꽂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애초에 그런 감정 자체가 없었다는 것인가... 그 영민했던 강아지가 잊혀지지 않는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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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0ckm
2008.02.04 00:45
좋은 글이네요,

사람들은 흔히 "개를 먹지 말자"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 다른 동물들은 왜 먹냐" "돼지가 얼마나 영리한줄 아냐?"

라고 말을 합니다.. 맞는 말이죠,

지금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육식문화는 단 몇사람, 혹은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시위를 한다고 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육식을 한다는 이유로,
지킬수 있는 생명들까지, 자연그대로 내버려두어도 괜찮은 것들까지, 고민없이 쉽게 살육하는것들은,
정말 인간에 순수성과 자연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도둑질이 합법이라고 해서 강도질까지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굳이 입지 않아도될 모피코트를 위해,
새끼를 옆에둔 어미 바다표범에 머리를 내리찍는,

단 한번에 보양을 위해,
죽을때까지도 꼬리를 흔드는 동물들에 목을 찌르는 일들은,

과연, 우리가 육식을 하는 당위성에 대한 진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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