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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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마지막 정 떼기_

vlffma25
2007년 03월 27일 23시 40분 16초 2345 2
흔히들 마지막 남은 정 뗄려고 발악할 때가 있다고 하죠..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봤던 건데,
한평생 며느리한테 싫은 소리 한 번 안하고 잘 해주시던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는데,
정말 보는 사람들마다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며느리를 괴롭히시는 겁니다..
생전 이런 적이 없으신 분인데 며느리도 하다하다 못해 시어머니를 미워하게 되죠..
그리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후련해 할 줄 알았던 며느리가 막 울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시어머니가 죽었는데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느냐고 물었더니
그 며느리가 그러더군요..
자기도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 한평생 숨겨놓았던 며느리에 대한 미움을
다 풀어버리는 줄로만 알았다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시어머니와 자기 사이에 정이 너무 많아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자기가 너무 슬퍼할 것 같아서..
그래서 시어머니가 정 떼고 가시려고 자기를 그렇게 괴롭힌 거 같다고..
그렇게 말하며 며느리가 정말 서럽게 펑펑 울더라구요..

그 드라마를 볼 때쯤 한창 남자친구랑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드라마 보고 나서부터 남자친구한테 정 떨어트린답시고 별에 별 짓 다 했었어요..;;
남자친구가 제일 싫어하는 술 마시고 밤 늦게까지 놀기, 짧은 치마 입고 다니기 등등
결국 정작 남자친구와 헤어질 땐 저도 남자친구도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오늘 문득 그 마지막 정 떼기가 생각나더군요..
제가 던힐을 하루에 한 1/3갑에서 반 갑 정도 피우는데 요즘 들어 던힐이 좀 이상해진 겁니다..
인터넷에 보니 좀 작아지고 디자인도 변했다는데 전 무엇보다도 맛이 변해서 싫더라구요..
지난 번에 산 것도 맛이 좀 이상해져서 짜증내면서도 돈이 없으니;;
어차피 산 거 다 피우고 말았는데, 이번에 산 것도 또 맛이 이상해서 짜증 나길래
“아, 끊으라고 이러는 갑다”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마지막 정떼기가 생각나더라구요..
정말 던힐이 저랑 정을 떼려고 이러는걸까요??;;
크기가 작아졌다는 것까지는 눈 감을 수 있지만.. 맛이 변한 건 도저히..;;
그동안 던힐에서 숱한 문제 일으켰을 때도 참아내며 쌓아왔던 정인데..
이제는 정말 던힐과 정을 떼야할 때인가 봅니다...
던힐 bye..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eter1999
2007.03.28 00:09
재밌는 수필이네요. 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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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man
2007.03.29 20:25
성공 하시길...
저는 어느 시어머니가 자신의 장례식에 문상객이 맛있는 국밥 먹는 게
소원이라며 며느리를 음식으로 일일이 구박하던...

그러다 그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문상객마다 너무 국밥이 맛있다고 칭찬 일 색...

그 며느리..
또 국밥을 퍼다가 눈물을 펑펑...

그 시어머니가 음식으로 일일이 구박하던 것은 모두가
이 국밥에 들어갈 재료의 선택과 맛내기 였다는...

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던힐 바이하고 또 welcome 하지 마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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