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전 삼국지.
역사를 보면 전통적으로 농경민족은 한곳에 정착해 수확을 하고 문화를 꽃피우면서 부유하게 살아간다.
유목민족이나 기마민족은 곳곳으로 옮겨다니며 사냥을 하고, 방목을 하며 삶을 지탱하지만 고유한 문화가 부재하고
노하우도 부족하다.
그러다 그 유목민족이 농경민족을 침략해 멸망시킨다.
한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한민족 역사상 가장 완벽한 문화적 잠재성과 발전 가능성이 무한대인 국가가 고구려였단다.
농경과 유목, 기마민족의 장점을 두루 갖춘 가장 이상적인 국가였고, 그 힘과 노하우는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에
서 그 위용을 볼 수 있다.
신라와 당나라가 치사하게 조폭처럼 떼로 몰려와서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않았던들 그 문화적 잠재성이 더 빛을 발했을
텐데....
물론 역사는 가정이 불가능하고... 자만하고 답보한 고루려 왕족과 귀족들에게도 문제가 있었겠지.
그러고 신라는 정말 부족국가 수준의 나라에서 영악한 방법으로 천년국가를 건설한 잔머리의 대가였다.
신라의 통일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구려처럼 중국대륙으로 뻗어나갈 통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백제처럼 넓은 평야의 곡식창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며, 바다 건너 왜구들의 침략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이 이상한 나라가 삼국을 통일한 배경에는 치사하고 얄팍하지만 영악한 전략과 전술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2005년 충무로 삼국지의 승패는 어디로 갈 것인지......
2. 충무로 삼국지.
씨제이나 쇼박스 롯데 등은 이 삼국지에 낄 수 없다. 배급이나 마케팅에서야 단연 삼국지에 들 수야 있겠지만
영화를 하는 인간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어쨋든 장사꾼들이니까.....
삼국지의 멤버는 시네마서비스, MKB, 싸이더스... 이렇게 삼국을 나누어 보자.
시네마서비스는 단연 제작능력과 수많은 자회사, 배급능력에 카리스마 넘치는 절대 군주까지..... 압도적이다.
씨제이처럼 굳어져 있는 시스템이라기 보다는 영화에 대한 노하우와 기마민족의 순발력까지 갖추었다. 편의상
고구려라고 해보자.
싸이더스는 재간꾼이다. 듣기로는 50여개나 되는 기획이 한꺼번에 돌아가고 있다고 하니 과연 창작의 메카가 아니겠
는가? 거기에 '살인의 추억', '지국을 지켜라'를 비롯해 한국영화의 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만큼의 새로운 영화
의 미래를 제시하지 않는가? 그러나 싸이더스는 배급력이 없고, 자본의 순환에서 고질적인 악순환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미래를 어둡게 하는 아킬레스 건이 아니겠는지... 수확은 많은데 지킬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그런 경우겠지.
편의상 백제라고 해보자.
그리고 MKB. 이 회사 상당히 신라적이다. 한때는 명필름, 강제규필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편의상 신라와 가야라고
하자. 명필름은 재능있는 감독들을 필두로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 감독들을 화랑들이라고 해보자.
그러나 화랑들은 이 철저한 명필름의 시스템에서 견디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떨어져 나간다. 그에 비하며 싸이더스
나 시네마 서비스의 장군들(감독들)은 꽤나 의리도 있고 오래들 그곳에 있다.
좋은 작품은 많이 했는데 인력과 시스템의 노하우가 제대로 세이브되지 않았던 명필름은 한방이 있지만
기획이나 시스템이 불안정한 강제규필름과 통합한다. 신라가 가야를 통합하듯이.....
새로운 화랑들도 뽑았다. 임상수, 임순례 등등.........
이제 힘이 강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전쟁에서 좋지 않은 성과들이 줄을 잇는다. '몽정기2'는 밑지지야 않았겠지
만 평판이 상당히 않좋았고, '그때 그사람들'은 온갖 논란에 휘말리며 뉴스와 신문에 매일 홍보가 됐는데도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거기에 영화사 규모에서 많이 떨어지지만 좋은 영화를 기획하는 다른 군소영화사들에 비해 제작
색깔로 애매모호한 상태다.
고구려와 백제에 압박당하는 신라처럼 MKB의 미래는 어떠할지....
여기까지 고전삼국지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삼국의 카리스마 넘치는 절대 군주가 서로 다른 방식의 통치 방법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보존하고 각기 다른
색깔로 서로의 영토를 넘보며 통일국가를 꿈꾼다.
과연 충무로 삼국지는 고전 삼국지처럼 신라의 통일로 끝날 것인가?
신라가 했었던 외세를 끌어들여 적은 이익이지만 명분상의 통일국가를 건설할 것인가?
그 외세를 씨제이나 쇼박스, 롯데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미국이나 일본, 기타 외국의 자본이 될 것인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누가 이 삼국을 통일하든, 지금의 삼국은 모두 미래에 대한 대안없이
땅따먹기에 정신이 없는 뿌리없이 미련한 국가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전 삼국지처럼 말이다.
생존과 영토확장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이기려는 실제적인 노력들은 언제 할 것인지....
영화의 미래를 위해 대안을 제시할 그런 혁신적인 영화 영웅은 언제 나올 것인지.....
영화인협회나 영화인회의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 삼국의 군주들이 그 역할을 할런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정말 새로운 영웅과 통일국가를 건설한 혁신세력이 성장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미래가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써본 충무로 삼국지를 크라이막스와 엔딩을
남겨둔 채 아쉽게 끝내본다.
백만불짜리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