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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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이마트 견학기

junsway
2005년 01월 17일 12시 52분 01초 2342 2 28
1. 유통에 관한 몇가지 생각들.....

본래 결혼한 남자들이 싫어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아내에 이끌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픽업요원으로 끌려가는 것이

다. 나 또한 그런 일을 굉장히 싫어하고 거기에 일요일 오후에 이마트라니.... 이건 정말 최악이다.

늦잠을 자고 늦은 아점을 챙겨먹고, 대략 세수하고 어린 자식들을 이끌고 모두 이마트 앞으로.... 이런 식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참고로 강북쪽에 이마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창동역에 위치한 이마트가 굉장히 성업중이었다. 그 옆에 위치한

농협 하나로마트와 경쟁을 벌이며 고객을 유치한 이마트는 거기에 그리 멀리 않은 월계동에 굉장히 커다란 이마트

매장을 다시 완성했다. 집사람과 어머니, 아버지는 이미 이곳에 중독된 듯 싶다. 난 처음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집사람, 나, 우리 아들... 이렇게 다섯이 이마트에 출동했다.

이마트는 그 규모와 찾아온 이용객에 비해 크고 깨끗하고 쾌적했다. 중간 중간에 쉴수 있는 벤치나 편의 시설도

있고, 종업원들은 일사분란하게... 그리고 시설은 외국의 대형마트과 비교해도 오히려 우월한 시설들을 자랑했다.

인근 상계동과 미아리 그리고 멀게는 수유리와 그 이북쪽 사람들을 타겟으로 만들어 졌을 이마트 월계동점은

쇼핑을 싫어하는 나도 '대단하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머니와 집사람은 그 매장의 곳곳을 마치 타잔처럼 누비고 다녔다. 가격대를 확인하고, 물건의

품질을 가늠하고, 최근의 식생활 패턴을 분석하고... 그러다 시식코너에 달려들어 입을 가득 채우며 20여가지 이상의

식재료를 능숙하게 쇼핑해 나간다. 나와 아버지는 그저 놀라울 뿐. 두 여자가 집어주는 시식 음식들을 입속에서

오물거리며 카트를 밀며 여자들의 꽁무니를 줄기차게 따라다닌다.

유통이라는 거. 그거 참 대단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적 월계동과 인근 상계동은 정말 아파트는 고사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저소득층 서민들이 가건물을 대충 지어놓고 생활을 해나가는 어려운 동네였다. 그때, 태릉 푸른동산 수영장에

가면서 보았던 이 동네는 논과 밭들이었고, 포로수용소와도 같은 후줄근한 동네였다.

생각해 보건대, 박정희 정권 이래로 서울과 수도권에 유입된 수많은 지방사람들이 생계와 그 생계를 넘어 성공이라는

꿈을 꾸었을 이 미개척지의 땅은 어쩌면 인간유통의 중간지로 한때 이용된 곳이었다. 그중에 일부는 돈을 모아 좀 더 나

은 동네로 이사갔을 것이고, 일부는 끈질기게 동네에 남아 버텼을 것이고, 나머지 일부는 상계동 단지와 월계동 아파트

단지에 밀려 먼 지방으로 다시 회귀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 어렸을 적 보았던 인간유통의 역사가 존재하는 이곳에 현재는 수많은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아마 세계 아느 곳에

도 존재하지 않을 이 아파트 왕국(상계동,월계동,번동,창동,미아리,월곡동 등)은 사실 굉장히 끔찍하다.

생각해보면 이들중 과반수 이상이 타지에서 집을 사거나 세를 얻어 온 사람들인데... 대부분 어린 아이를 기르는

혹은 이제 낳으려는 젊은 부부들이다. 그들이 꿈꿀 그리고 그 자식들이 꿈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이곳으로

찾아들었을 때, 그들에게 엄청난 위안이 된 것이 바로 이마트 월계점이었을 것이다.

동창회나 친구모임에서 '야, 월계동이 도대체 어디니?'라고 묻는 친구들에게 '무시하지마, 우리 동네 굉장히 커다란

이마트가 있어.'라고 자랑했을 모습이 선하다.

아침 7시, 월계동, 상계동, 번동, 창동, 미아리, 월곡동 등의 일련의 아파트 왕국에 사는 일벌들이 모두 기상해서 화장실

로 향한다. 이들이 일제히 변기에 앉는다. 그리고 응가를 하고 물을 내린다. 그 배설물들이 정화조로 미치듯이 돌진한

다. 수십만명의 인간들이 뿜어대는 그 배설물들은 땅속을 휘저으며 정화조를 거쳐 어디론가 흘러간다......

똥의 유통. 그 똥들은 정화조를 거쳐 하천으로, 강으로, 바다로 가거나 다시 우리들의 집으로 회귀할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유통을 생각한다. 이건 스타트렉에 나오는 순간이동이 아니다. 인간이 유통되고, 물건이 유통되고, 배설물들

이 유통된다. 그 사이 우리네들은 시간의 유통에 파묻혀 나이를 먹어간다.


2. 고향을 버리고 온 타향살이... 그래도 살아남는다?

유통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어제 뉴스를 보니까 강원도 어느 군과 전라도 어느 군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100만원

상당의 현금이나 물품을 지원해 준다고 한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나 서울로 다들 떠나 동네에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옳고 그름을 섣불리 내릴 수도 없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번 생각해본다.

왜 이런 유통의 역사가 지속되는 것일까? 다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럴테지. 그렇게 말하면

사실 할말이 없다. 먹고 살겠다는데.... 자식새끼들 입에 밥덩이 좀 넣어주고 성공해서 부귀영화까지는 아니더라고

인간답게 살라고 올라왔다는 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래도 이런 말들은 영화하는 영화인들에겐 대단한 사치처럼 느낀다. 결혼에 자식까지 낳고, 번듯한 직장에서

매월 고정월급에 보너스까지 받는 인간들의 불평과 야망이 영화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들먹거림이나 위선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영화인들의 열등감도 있겠고, 굶주림도 있겠지만....

특히 이마트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소비에 굶주린 인간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아남고 성공해야 한다는 이들의

눈속에는 이글거리는 광기와 욕망, 굶주림이 세련된 자본주의의 포장으로 슬쩍 가려져 있다. 그 광기가 자식에게

전달되고, 그 자식은 자라 확대재생산된 그 시대의 '인간다움'에 대한 욕망의 화신으로 기성세대를 이루겠지. 이들이

자라 이룰 대한민국과 서울시가 정말 두렵다.

이제 이들은 광기와 욕망, 소비의 극대화를 유통한다. 이제 살아남는 시대는 지났다. 경제불황 속에서도 정부나

자본가는 소비의 유통을 위해 온갖 전략을 짜내고 그 전략은 성공한다. 살아남아 이러한 풍요로운 삶의 미덕들을

즐길 것. 이것이 이들의 지상과제다.

그러면서도 휴게벤치에 앉아 카트에 머리를 떨구고 졸고 있는 남편들을 보면 연민이 생기게 한다.

'이렇게 한번에 대형마트에서 구입하면 정말 싸거든요.' 다들 이렇게 말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일까?

백화점을 능가하는 물류의 이 환상적인 포만감과 결국은 나도 이 물건들의 일부를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 잔뜩 사놓은 물건들이 냉장고에서 썩어서 버리게 될지언정, 당장은 정신적 허기를 채워야겠다는

이들의 눈빛을 보면 정말 두렵다.

이게 정말 인간다운 상황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너무 편협한 것일까?


3. 이젠 내가 유통에 뛰어들 차례다.

1996년 2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1995년 대학 4학년 때 선배들하고 이벤트회사를 만들어 약간의 돈을 모았다.

졸업할 즈음, 회사가 문제가 생겨 흑자도산을 했다. 난 마음에 맞는 선배와 그 돈으로 천마산 자락에 토담집을

얻어 이사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들 취업에 미쳐있을 때, 난 은둔생활을 결심했다.

더 이상은 이 냄새나고 더러운 서울이라는 지옥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숨이 막히고 목을 조여들어

왔다. 무조건 떠나자.

천마산속에서 보낸 8개월은 정말 꿈만 같다. 편의시설이라고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산속에서의 8개월.

난 내 영혼이 그 존재를 깨닫고 다시 숨을 쉬는 것을 느꼈다. 8개월 쯤에 어떤 한 상황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만... 이제 다시 난 내 자신의 유통을 꿈꾼다.

앞으로 10년안에 이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갈 계획이다. 영화를 하면서 어느 정도의 돈을 모을지 알 수 없지만

액수에 관계없이 떠날 것이다. 아들은 가능하면 대안학교나 자유로운 삶을 부여해주고 싶다.

그래, 이제 내가 유통될 시간이다. 준비하고 신념대로 나아가자. 그래서 내가 살고, 우리 집사람이 살고, 우리 아들이

살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이 뭔지 알게 될 것이다.

부디 그 계획이 차질없길 바라며......




취생몽사 혹은 마틴 트래비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mojolidada
2005.01.17 13:38
유통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전인권의 '돌고 돌고 돌고'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다시 돌고~~~~ 돌고~~~'
73lang
2005.01.20 16:48
추천하나 누르고 갑니다요.

우겔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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