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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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어제밤...술자리...

kinoson kinoson
2004년 06월 21일 18시 11분 23초 1232 5 13
"영화를 한다는거...."어제 문득 사람들과 술한잔 기울이다가 "영화를 한다는거"에 대한 즉석100분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어제의 대화를 잠시 옮겨보자면...

등장인물

뇬1 (28세) 은행원
넘1 (28세) 2년만에 모영화 연출부를 끝낸후 연속 세작품째 엎어지고 있음
뇬2 (27세) 현장에서 스크립터로 한작품 준비하다 엎어지고 다시 모대학 영화과에 들어갔음
나 그냥 그렇게 살고 있음

뇬 1 : 영화를 한다는거는 내가 영화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거 아닐까?

넘 1 : 그러니까 니 말은...내가 머리속으로 영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만하면 그게 영화를 한다는거냐?

뇬 1 : 그럼 맨날 엎어지기나 하는 연출부생활이 영화를 한다는거야?

넘 1 : 엎어지는건 우리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거 아니야? 누구는 첨부터 엎어질걸 알고 연출부로 들어가디?

뇬 2 : 내 생각엔 대한민국의 영화과는 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영화학개론 미학적분석..백날 이런거 배우면
뭐해?

나 : (열심히 먹고있다)

넘 2 : 하긴 전부 똑같은 것만 배우는거 숫자만 많으면 뭐해? 졸업해서 현장 와봐야 엑셀하고 한글로 표만 죽어라
만드는데....우리네 영화과에는 엑셀하고 한글 프로그램도 교양과목에 있어야해...

넘 1 : 내가 모영화를 2년만에 겨우 한편 끝냈는데...남는건 막대한 카드빛 뿐이더군.....그래도 엔딩크래딧에
내 이름이 나올땐 정말 눈물이 핑 돌더라...

뇬1 : 난 그런 네 모습을 이해할수가 없어....2년동안 400만원 벌고 크레딧에 이름 한줄 올라가는게 그렇게
감동스럽디?

넘 1 : 겪어보지도 않고 그런 말 내뱉지마. 나는 뭐 첨부터 이랬는줄 알어? 한때는 나도 열혈 영화학도 였다구
지금의 이런 내 모습 상상도 한적 없었다구..

뇬2 : 난 지금 너희 둘을 보면 (나와 넘1) 학교 졸업하고 현장으로 가는게 맞는걸까? 싶다. 그냥 단편영화 잘 만들어서
바로 입봉을 노려보는게 훨씬 우리의 처음 생각과 맞는거 아닐까?

나 : (열심히 먹고만 있다)

넘1 : (나에게) 그만 좀 처먹어!! 이 돼지야...(뇬2에게) 그거...좋지...근데 문제는 그렇게 입봉하는거 한 백만년쯤
걸린다는게 문제지....

뇬2 : 넌 세상을 왜 그렇게 비관적으로 사니? 분명히 그렇게 입봉하는 사람들도 있다구...

넘1 : 분명 로또1등 당첨되는 사람도 있지....하지만 중요한건 그 1등 당첨자가 언제나 "내"가 아니라는거야
모든건 한번에 풀릴수 있어...의외로 단순하다구. 나 아는 형은 4년동안 정확히 8편의 영화가 엎어졌어
하지만 그렇게 엎어지면서 막내에서 써드..써드에서 세컨....세컨에서 조감독....근데 그 조감독했던
영화가 대박이 나면서 그 후로 아주 잘풀리고 있지....(나에게) 그만 좀 처먹어!! 이 돼지야..

나 : (삐졌다) 내가 뭐 돼지라고 그래....안주하나 더 시키면 되자나.....쳇

뇬1 : 그래 XX 이 돼지 아니야 조금 통통하긴 하지만....

넘1 : 그래도 넌 살 좀 빼야해...

나 : 뺄꺼야 뺄꺼야....


언제나처럼 문제제기후 그 누구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옆에서 열심히 먹고만 있던 나에게 모든 불똥이 튄다...

하긴 "영화를 한다는거" 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줄 사람이 어디있어?

현장에서 일하는거? 학교에 몸담고 열심히 단편 만드는거...? 시나리오 열심히 쓰는거....?

넘1 말처럼 언제나 로또1등은 존재한다. 물론 우리 주위엔 없지만...술자리 막판에 그런 얘기도 오갔던거 같다

로또1등 그거 다 조작 아닐까? 매주 1등은 나오는데 절대 우리 주변엔 없잖아?

모르겠다....모르겠다....허둥선생님에게 명쾌한답을 내려 달라고 해볼까?
[불비불명(不蜚不鳴)]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tudery
2004.06.21 20:05
아앗!
그 칼자루에 달려 있는 버튼을 누르세요.
그간의 내공으로 광선검이 되어 있을 겁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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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somina
2004.06.21 20:37
병이 들면 그 병을 앓아온 세월만큼 세월이 흘러야 그 병이 낫는다고 하죠.
너무 서둘러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으셔도 될것 같습니다.
저두 감독 데뷔 하는데 9년이 걸렸어요.
그 사이 연출부 조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이 4작품 그 중에 한작품은 우리 하는말로 엎어졌습니다.
24개월동안 준비해서 말이죠.

그래도 때가 되니까 제 영화를 만들 기회가 오더군요.

영화를 한다는건 영화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늘 영화를 생각하면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지금 작업하고 있는 영화에서 연출부로 엑셀이나 한다고 불평은 하지 마세요.
영화를 만드는데 아주 소중한 일중에 하나이니까요. 그 일을 누군가 하지 않으면 프로덕션이 진행이 되지 않잖아요

너무 빨리 무언가 이루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도 계산해 보니까 9년동안 한달에 30만원씩 벌었네요. ^^
모두들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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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ljam75
2004.06.22 01:22
앗! 필커의 꽃, 젤소미나님.... 헤헤, 유명하고 멋지신 류감독님......
바쁘실텐데 친히 격려말씀 해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너무 빨리 뭔가를 이뤄내버리겠다는 조급함이 없어진 대신
심한 느긋함이 몸에 배어버려서 큰일입니다.
느긋함이 곧 게으름으로 변질될것 같기도하고.
하여간 영화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건강조심하세요. .................필커 일반회원 올림.
Profile
kinoson
글쓴이
2004.06.22 10:50
한걸음...한걸음...그리고 또 한걸음....철푸덕.....다시 일어서서 한걸음 한걸음 한걸음......
꽃봄 잘 나오길 바라고 있겠습니다..그리고 사실 기대도 많이 하고 있답니다...^^
cinema
2004.06.22 14:18
젤소미나님의 말씀은 힘든 상황에서도 조바심 내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차라리 영화판을 뛰쳐 나간 선배님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이뤄보고자 형제, 자매, 부모님의 가슴에 못질하며, 또 내 자신을 속박하며 아둥바둥 버티고 있는 스스로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적어도 후배들에겐 이런 부끄러움을 물려주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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