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말하자면 칠팔개월쯤,
남의 반지하방 빗물 괴는 문간 앞에다,
또 4인1실 기숙사의 컴컴한 신발장에다 팽개쳐놓았던 여름용 신발을 빨게 되려면,
적어도 내가 암에 걸려있었음을 깨닫는다든가,
머리칼을 죄 밀어버리고도 응어리 남을 실연이 찾아온다든가, 하는 그런,
어떤 계기가 주어져야 할 것으로 나는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밤 아홉시에, 지하 세탁실에 가서 밀린 빨래를 돌려놓고
도로 방으로 올라와서 한시간쯤을 기다리는 동안,
너무나 조용했다.
나말고 방 안에 있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들의 흔적뿐이었다.
바닥에, 가까이 공사장에서 날려온 흙먼지 알갱이가, 맨발에 사각거렸다.
어느새 나는 세면대에 물을 받고
아까 막 뜯은 세제를 손가락으로 조금 집어와 물에 풀고
더러운 신발을 그 물에 적시고 또 빨래비누를 칠하고
칫솔로 문지른다.
벽이 엷어서 옆방의 소리가 들리고. 여럿이 무얼 먹는 모양이다.
칫솔에 쓸리는대로 신발에서는 땟물이 배어나온다.
미끌거리는 손가락이 뻐근하게 문질러도, 끝이 없을 것처럼.
아마 오래전, 한철내내 입던 스웨터를 빨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디디고 다녔던 것들이 그렇게 더러웠을까. 그래서일까.
빨래가 다 되었다 싶을 때 쯤, 헹구어 낸 신발을 들고 세탁실로 내려갔다.
젖은 옷을 꺼내 큰 책가방에다 담아놓고, 빈 세탁기에 신발을 넣어돌린다.
무심코, 쓰던 칫솔을 버렸다.
바꿀 때가 되었던 것은 맞다.
손에서 빨래비누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