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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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아주 짧았던 산사음악회(보고온 꽤 긴 이야기)

sadsong sadsong
2002년 09월 15일 17시 00분 38초 1217 4 4
경기도의 용문터미널이란 곳에서 택시를 타고 산 중턱까지 가면
거기서는 승합차로 절(상원사)까지 데려다 준다는 설명을 들었다.


#1 상원사 가는길.

금요일, 그렇게도 시원한 날, 땀이 나도록 달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1회를 보고나서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좌석번호 45번인 용문행 버스표와 크림빵 두개와 우유하나를 사들고 버스에 올랐는데
45명 승객중 군인이 35명쯤 된다.
'용문이란 곳에 큰 군부대가 있나본데?'
머리모양만큼은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다섯명 꽉 끼어앉은 뒷자리는 좁기만하고,
아무튼 편한 분위기는 아니다.
내 어깨에 애정을 가지고 꾸벅꾸벅 졸기만 하는 오른쪽 녀석을 견제하며
꿋꿋이 빵과 우유를 꺼내 먹는다.

나도 잠깐 졸다.... 깰즈음에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서는데
용문이 아니고 양평이다.
'양평을 거쳐서 가는 버스인 모양이구나....'

다시 달리다 이번에는 마을분위기의 '길가'에서 한두 사람 내려주고
또 한두사람 태우기를 몇차례 한다.
시외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승객을 위한, 편한곳에 임의로 내려주는 배려'로 생각된다.

버스는 계속 달렸고,
서울 벗어나면서 좀 막혔었기 때문인지 예상소요시간 1시간10분을 꽤 넘어섰다.
그리고 얼마 뒤....
길가에 죽 늘어선, '강원도'임을 알리는 말뚝들이 눈에 들어온다. ㅡㅡ;
내가 가야할 곳은 '경기도'에 있는 '용문'이다.

사실1 : 이 버스는 이미 용문이란 곳을 지났다.
사실2 : 버스의 군인들은 용문아닌 더 먼곳을 가려는 것이었다.
추측1 : 아마도 아까 잠깐씩 멈췄던 길가 정거장(?)들 중 한곳이 용문터미널이었을 것이다.
핑계1 : 내가 이제껏 고속,시외버스를 이용해서 찾았던 곳들은, 모두 버스의 종착지였다.
          한마디로, 갈때까지 가면 되었던 곳들이었다.
핑계2 : 양평처럼 터미널 주차장으로 들어서지도 않고, 터미널 간판도 보이지 않는 길가에
          단지 몇십초 정차할거였으면, 초행길인 사람을 위해서라도
          (노선표도 붙어있고 안내방송 있는 시내버스가 아닌 다음에야)
          '**입니다, 내리세요'라는 정도의 안내는 운전기사가 해주었어야 한다.
짜증1 : 느긋하게 일찍 산에 도착해서 마음좀 가다듬어보려고 여유있게 떠난건데,
          여유는커녕, 공연을 볼 수 있을지가 걱정된다.
현실1 : 어서 내려서 용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야속한 버스가 그 다음에 멈춘 터미널은 강원도하고도 홍천이었고,
1시간10분의 예상시간보다 무려 40분을 더 달린 뒤였다.

내릴 때, 단거리 표를 끊고 장거리 뛴 승객이 아닌가를 확인하는 표검사를 하는 듯 하던데,
난 이미 열받았기 때문에 그냥 내렸고, 아저씬 날 잡지도 않더라.
(그 짜증나는 순간에도, 일부러 단거리 표를 끊고 장거리를 내달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순한 생각이 머릿속에 사사삭....)

다시 서울행 버스를 타고,
이번엔 기사아저씨에게 용문터미널에 내릴 뜻을 미리 비췄더니,
내게 안내해주는건 물론이고 그곳에 도착해서는 버스 뒷자리까지 들릴 소리로 외친다.
"용문 내리세요!"
이게 제대로다.

역시나, 아까 잠깐 거쳤던 길가가 용문터미널이었는데,
안쪽으론 넓은 주차장도 있긴 하더라.

상원사 가는길을 파출소에서 다시한번 확인하니,
걸어선 어렵고, 버스편은 잘 모르겠고, 택시로 10~20분 올라가는데 만원에 가깝다고.
걸으면 걸었지 그런 지출은 못참는(사실, 참고 싶어도 참을 수 없는 형편인....) 성격이라 갈등하고 있는데,
(드라마틱하게도)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지나던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다.
"오늘 상원사에서 가수들 나오고 뭐 한다는데 안가? 같이 가."
대화중에 잽싸게 끼어들어 물었더니,
터미널에서 하루에 단 몇번 왕복하는 버스가 30분 뒤에 있단다.
목적지에선 좀 못미치는 지점까지밖에 안가지만 600원이다. 앗싸.

버스시간에 임박해서 터미널옆 떡볶이집에서 교복입은 여학생들 틈에 끼어
떡볶이 한접시.
내가 타고 올라가는게 막차라니, 공연 끝나고는 걸어내려올 것을 작정한다.
걸어서 한시간은 넘고 두시간은 안넘는다고 떡볶이 할머니께서....
"젊은 사람이 어때!"라는 말과 함께.

버스를 타고 20분정도 오솔길을 오르고,
내려서 10여분을 또 걷고,
절에서 보내준 승합차를 타고 정말 험한길을 또 몇분 오르니,
그곳이 바로 '상원사' 이다.



#2 공연.

(수재민들께는 죄송하지만) 바로옆 계곡의 물소리가 아름답고,
풀벌레소리가 새롭다.
수많은 연등이 분위기를 내고,
숲 고유의 냄새와 절에서 끓여내는 차냄새나 향냄새 같은 것들이 뒤섞여
마음이 편안하다.
(내 바로 앞에 줄지어 앉은 -부유해보이는- 네쌍의 부부중 네명의 남편들이
연달아 양주를 마셔대는데, 그 자체를 흠잡고 싶진 않았으나, 그 분위기에서의
그 술냄새는 너무 역겨운 것이었다. 그들도 떳떳하진 못한지 숨겨가며 따르고 마시고.)

산속의 냉기는 역시 대단해서
준비해간 긴팔옷으로 겨우 찬 공기를 막아가며
공연을 본다.

일단 장사익님이 '허허바다'로 문을 열고
앨범을 세장이나 냈다는 심진스님도 몇곡.
잠자는 새들 다 깨우겠다며, 깊은 산속에서 이렇게 소리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하지만 질러보겠다는 한영애님이 독특한 카리스마로 한동안 무대를 장악한다.
노래 참 잘한다.
대부분 중장년층인 관객들 호응도 젊은 컨서트 못지않게 열광적이다.

그리곤 다시 장사익님.
노래 사이사이 그 순박한 말투가 조금이라도 꾸며진 것이 아니라면
정말 귀엽고 재미있는 분이시다.
그 구수한 말투만으로도 아주머니들은 좋아하며 웃는다.
많이들 따라부른다.

국밥집에서, 삼식이, 열아홉순정, 찔레꽃, 대전부르스....

어느새 시간은 9시가 되어간다.
아까 터미널에서 확인한 서울행 막차시간이 21:35.
머리에선 그만 일어서라 하는데, 이런 좋은 공연 중간에 자리를 뜰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딘지도 모르는 용문기차역에서의 서울행 막차가 22:27 이라던 인터넷 검색내용을
무기삼아 계속 소리에 빠져든다.

짜릿하게 이곡 저곡을 듣고있던 어느때쯤,
-믿거나 말거나- 내 손바닥 두 개를 더한정도 크기의 나비가 어디에선가 날아와
관객들 머리위를 날기 시작했다.
그 산사 분위기와, 음악과,
생전 처음봤을 그 나비의 크기와,
펄럭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날개짓과,
아까 보고온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의 나비와....
여러 가지 것들이 어우러져 신비로움마저 느껴진다.

이제 시간은 9시 30분이 거의 됐다.
많은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마지막 앵콜곡으로 얼마전 남북축구경기때 불렀던
'아리랑'을 부르시겠다고 한다.
그 때 경기장에선 속으로 울면서 부르셨다고....
사람들, 함께 따라부른다.



#3 집으로.

장사익님 무대를 마지막으로 절 아래로 내려오는데,
등뒤로 대금인지 뭔지 아무튼 피리소리가 들린다.
더 남은 순서가 있었나보다.
그걸 마저 보지 못하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아직 공연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까 사람들을 태우고 험한길을 한참 올라주었던
'상원사 제공 승합차' 역시 아직 안 내려간다는....
나와 시간이 바쁜 몇몇 사람들은 걷기 시작했다.
때론 경사심한 내리막이 오르막보다 힘들때가 있다.

30분쯤 걸으니 10시가 가까워온다.
기차시간은 30분정도 남은것이고,
산아래까지 걸으려면 앞으로도 가로등 하나 없는 길로 한시간 이상이다.
거기서 또 기차역을 찾아야 하고.

물론 그시간에 그 산위에 택시같은건 없었고,
같이 걷던 사람들은 하나,둘.... 주차해두었던 자기 차를 찾아탄다.

10시가 넘어서자 마음이 급해져서 내려가는 차들에 시선을 보내본다.
어설프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지만 그냥 그뿐이다.
대부분 가족이거나 단란한 커플들의 차량일테니
그밤에 험악한(?) 낯선남자 태워주기도 껄끄러울 것.
더구나 최근에 -나처럼- <세이 예스>라도 본 사람이라면.

난 아직 까마득한 곳이고, 이제 기차시간은 15분정도 남았다.
피씨방은 없을 듯한 동네이고, 파출소나 터미널 한귀퉁이에서 쪼그리고 자는 모습을
잠깐 떠올리다가, 정말 마지막이다 싶어 다시한번 '강하게' 손을 번쩍 드니
앗, 갤로퍼가 한 대 멈춘다.
차 내부는 잘 안보이고, 내려지는 조수석 창문 너머의 여자는, 어디까지 가는지를 묻는다.
산아래, 마을까지만 가면 된다는 말에 선뜻 타란다. 으흐흐.

올라탄 뒷자리엔 일행인 여자가 둘! 앞을 보니 운전자도 여자!
종합하여 "여자넷과 나하나"
젊은 남자라서 태워줬다느니 어떻게 생겨서 태워줬다느니 하는 농담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마을까지만 가면 기차역을 찾아 서울로 갈것임을 밝혔음에도,
(하지만, 시간상 이미 기차도 늦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서울 사는 그녀들의 나에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함께 서울로....

서울로....

....
....

그러다가....

이러쿵 저러쿵 하여....

어쩌구 저쩌구 하기도 하고....

그렇고 그런 일들이....

이래저래 발생했을 것을....

은근히 그려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
....


불교신자이시고 호스피스 활동도 하신다는, 고마운 그 여자분들은....


sadsong / 4444 / ㅈㅎ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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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의 합이 최소190인 것으로, 대화중에 밝혀졌다. 아주머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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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xeva
2002.09.16 02:47
오빠 잼있게 읽었어요....정말나두 한번쯤 가보고싶은 자리였는데...^^*
글 읽으면서 생생한 현장중계...가보지는 못했지만 가본듯한 기분...감사드립니다.
Profile
JEDI
2002.09.17 22:10
음..나도 꼭 갔다온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려..
다음에는 그런 기회있으면 같이 몰려서 갑시다.
pinkmail
2002.09.18 09:51
새드송은 진짜 용감한거 같아..
아님 요즘 아주머니들을 물로 보는거든지...

바람따라 구름따라..아무리 생각해도 방랑벽 내지는 그에 상응하는 일종의 증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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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글쓴이
2002.09.18 11:57
자나깨나 물조심, 마른물도 다시보자!
늘.... 좀 더 발전적인 증상악화를 꿈꿉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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