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369 개

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아주 짧았던 여행

jelsomina jelsomina
2002년 09월 13일 15시 16분 37초 1045 2 6
가을이 왔던데요 ,,,

가을이 오고 있는 중이 아니라 벌써 와 있었습니다.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는데 .. 벌써 노랗게 변해가지구
작은 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수수 떨어지는게 아니라
잠시 바람이 불어 가지가 움직이면
그 움직임이 멈춰질때 쯤에서야  하나씩 ..하나씩 ..

저녁에 도착해서 짐풀고 ..밥먹고 .. 그러다가 밤이 왔는데
나무들 사이로 별들이 참 많았습니다

베란다 흔들의자에 앉아 흔들흔들 하면서 고개를 들어보면
나무들 사이로 어릴적 보던 까만 하늘반 ..별 반 ...
일년중에 몇번 못보는 거라 오래오래 기억되라고 ..

흔들의자가 흔들릴때마나 삐걱삐걱대는 낡은 바닥소리도 듣기 괜찮구..
바람이 흔들고 지나가는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도 좋고 ..

혹시 아랫층 위층 사는 사람들 깨지나 않을까 ..살살..
소리내지 않고 ..별빛 아래에서 ..

새벽에는 쌀쌀하기까지 해서 커다란 수건을 두르고 있어도 추웠습니다.

깊은 가을이 되면 산중에 가서 꼭 며칠 있어야 겠어요  
머리가 아주 맑아지는것 같았습니다.

가을 여행 짧게라도 다녀오세요

산사도 좋겠고.. 누구의 별장이라도 잠시 빌려서도 좋겠구..
돈도 좀 까먹겠지만 ..

잠깐의 호사스런 생활이
나머지 재미없을 수 있는 일상에 도움이 된다면 괜찮을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가을을 꽤나 즐겼었는데 ..
모퉁이를 돌아설때 확~ 하고 밀려오는 찬 바람에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 있을수 밖에 없는 그런거 있잖아요

나이를 먹어가는건지 이젠 가을을 즐기고 싶은 생각은 없어지는것 같아요
이젠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
왠지 나와 닮아 있는것 같아 ...더 친근해지는 무엇처럼 말예요

그래서인지 봄 여름 보다는 가을 겨울이 더 진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낙엽을 틔우는 일보다 낙엽을 떨구는 일이 더 본래의 모습인것 같고..
특히 낙엽 태우는 냄새라도 맡게 되면 기분이 참 이상해지잖아요

봄은 너무 짧아서 아쉽고.. 사람을 설레게 해놓고는 금방 가 버리죠.
마치 찬란한 유년시절이 금방 지나버리고는 그걸 추억하며 지내게 하는것처럼 ..

여름은 세상을 온통 초록으로 만들어 놓고는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데일것 같아 밖에 선뜻 나가기가 무섭죠.. 안에 있으면 너무 덥고 ..
냉방병 안걸릴려면 에어콘 곁에 있는 시간을 줄이는 일밖에 더 있나요..
시원한 곳만 찾아다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게 꼭 젊기는 한데 할수 있는건 별로 없는 그런때와 닮아 있죠
여름엔 무언가 하고 싶지만 별로 할수 있는건 없어요. 곡식이 자라는 일밖에는 ..
곡식도 자라서 추수를 해야 그 쓸모가 있듯이 여름은 그냥 자라는 일에 충실해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많은 경험과 더불어 말이죠

요즘은 그래서 자꾸 가을을 닮고 싶습니다.
살갗이 멈칫하게 되는 그런 찬 느낌이 시작되는 시간.

지나치게 차지도 덥지도 않은 가슴이 되고 싶고.
떨구어야 할것들은 떨구는 일 ..
내 주어야 할것은 기꺼이 내어 주는일

여름을 지나 각자의 느낌대로 여물기 시작하고..
나름대로의 색을 띄게 되고..
어느정도 잎을 떨구어 하늘이 보이는 공간도 많아지고..
넉넉해 지잖아요.. 여유도 생기고

누군가 올려주신 남은 시간 계산하는 곳에서 봤더니 ..
살아온 시간이 남은 시간보다 많더군요 ..

저 아닌 누구라도 때가되면 긴 동면에 들어가고..

다시 봄이 오겠지만 나의 봄은 아닌 봄이겠죠.

어디를 좀 다녀오니까 좋더라는 말을 하려다가 이상하게....--;
미안 ..

가을엔 어디라도 다녀오세요. 가서 나무 한그루라도 더 보고 별 하나라도 더 보고
흙이라도 한번 밟아보고 ..바닷물에 발이라도 한번 담그고 오면 ..좋잖아요.

혼자 말고 둘이서 ..

젤소미나 입니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so-simin
2002.09.14 17:49
10월 5일에 봄날...재상영회를 한다고 봄날카페에서
필름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멜이 왔던데 젤소미나님도 그날 오시나요(~)
Profile
jelsomina
글쓴이
2002.09.16 13:24
별일 없으면 가보려구요.
이전
23 / 69
다음
게시판 설정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