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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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박순경 이야기 (3)

vincent
2002년 03월 26일 04시 23분 55초 1092 3 2
revo89님의 성원에 힘 입어 또 올립니다.
음... 솔직히 '성원에 힘 입어' 올린다는건 거짓말이고...
저는 지금 다른 일에 매진해야하는데...
다들 비슷한 경험들을 하시겠지만...
꼭 그럴 때 안하던 책상정리 및 옷장정리, 급기야  대청소까지 하게 되는 그런 거 있잖아요...
평소 안읽던 책 다 꺼내 읽고, 신문 사설부터 사원모집 광고까지 꼼꼼히 챙겨읽게 되고, 본 영화 또 보고.. 괜히 창작욕에 불타올라 이것저것 막 써대고(나중에 다 delete시켜버릴 것들)...
그런 잡다한 딴짓 중 하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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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언니'가 우리 집에 왔을 때 그녀의 나이 17살이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엄마가 한창 자랄 나이의 우리에게 신경을 쓸 수 없자 그 일을 대신 맡겨도 좋을 사람을 구했는데... 그 사람이 영숙언니였다.
언니는 충청도 어디선가 왔다고 했고, 충청도 억양이 말끝에 짙게 남아 있는, 내 생전 처음으로 본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었다. 노르스름한 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예쁘장한 소녀였다. 언니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난 '미스공' 언니가 심어준 좋은 기억 때문에 이 언니도 좋아할 수 있을거라고 감히 커다란 포부를 품었었다.

언니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 당시 비슷한 일을 했던 다른 언니들과 마찬가지로 시골에 남아 있는 식구들에게 돈을 부쳐야했고, 언니네 집안에선 여자가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사치이며 기술을 배워야한다고 했던 모양이었다.
언니는 우리집에서 기거하며 우리에게 끼니 때만 밥을 챙겨주고 대부분의 시간은 '기술'을 배우러 엄마의 의상실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엄마가 그랬지만, 지금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봐도 언니가 우리에게 밥을 챙겨준 일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고 의상실에도 언니가 없고 집에도 언니가 없었던 오리무중의 시간들만 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때부터 동생과 나는 아무도 없어도 우리끼리 알아서 밥을 챙겨먹어야만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커다란 '진리'를 깨우쳐서 아주 독립적인 아이들로 자라날 수 있었다. '영숙언니'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들의 인생의 스승이 된 것이다.

그렇게 늘 어딘가 돌아다녔던 영숙언니가 한심해 보였던 적도 많았지만, 그 또래의 다른 언니들이 학교 다니는게 부럽진 않을까 싶어 언니에게 조심스레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언니.... 학교... 가고 싶지?"
그 때 언니는 봉숭아 물을 들이기 위해 열손가락을 비닐로 싸고 설거지를 미루고 있었다.
"싫어... 야."
언니가 얼마나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는지 조심스레 질문한 일이 바보짓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난 언니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을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할 때 못한다고 깍두기를 시키면 괜히 하기 싫다고 집으로 들어오곤 했던 나를 돌이켜봤을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러나... 언니는 정말로 '학교'를 끔찍히 싫어했다. 내가 산수숙제를 하다가 뭐라도 물어볼까봐 도망다녔고, 내가 아이들의 최고 교양서인 '소년중앙'이라도 읽으라고 줘도 만화만 보며 낄낄댔다. 엄마가 학교에 보내준다고 하면 싫다고 손사래를 쳤고, 예쁜 '미스공'언니의 화장품과 옷, 매뉴큐어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언니에게 애정을 품으려는 나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었고, 동생도 그런 나의 취지를 이해했는지 꿋꿋이 견뎌주었다. 나중에 우리는 영숙언니가 밥을 챙겨줬다고 거짓말까지 기꺼이 해줬다.
그러나.... 가을 소풍을 계기로 영숙언니에 대해 애정을 품으려는 나의 노력과 포부는 조금씩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들이 주로 따라오는 소풍에 바쁜 엄마 대신 영숙언니가 따라오기로 했는데, 김밥과 간식들을 모두 가지고 따라오기로 한 언니가 나타나지 않아 물 한 모금 못마시고 꼬박 굶은 채 고행같은 소풍을 다녀오게 된 바로 그 사건!
담임선생님이 식은 땀까지 흘리며 쾡한 나를 보고 물어도 자존심 때문에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집으로 오자마자 나는 탈진해서 쓰러졌고 영숙언니는 전화도 없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져서야 돌아온 영숙언니에게 사정을 물은즉슨, 언니는 다른 국민학교의 소풍에 쫓아갔고 길을 몰라 계속 다른 국민학교 애들 틈에 섞여 있다가 배 고파서 가져간 음식들로 배를 채운 후 다른 국민학교 애들과 함께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미스공 언니가 열까지 펄펄 나는 나를 위해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사들고 위문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영숙언니를 저주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영숙언니에게 감사했다.

얼마 안있어 그 엉뚱하고 어리버리한 영숙언니의 황당무계한 행동들 중 '백미'에 해당하는 어떤 사건... 때문에 드디어 우리의 '박순경'과 '미스공'이 만나게 되는데..... <다음에 계속>

추신 1. '박순경 이야기'라 해놓고 박순경은 뜸하네요. --;;
추신 2. 오기를 바로 잡습니다.
           박순경이 근무했던 곳은 '방배2동 파출소'가 아니라
           '방배본동 파출소'네요.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sadsong
2002.03.26 14:13
우리집 : 방배본동 / 우리고모이름 : 영숙 앗~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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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man
2002.03.26 16:56
1. 이제 서서히 얘기가 본론으로...
2. 명랑 소녀 성공기가 될 것인가... 공주처녀 바람기가 될 것인가...
3. 소풍가서 물한모금 못마시고 굶어 탈진 했다... 대단합니다 ㅎㅎㅎ
4. 학교를 잘못 찾은 영숙 언니는 과연 지금의 깻잎머리 스타일 이었을까?
5. 소년중앙... 지금까지도 엽서 보내서 받아본 첨이자 마지막 지금의 경품
초등학교 3학년때 (국민학교 겠지만)
그 당시로선 엄청 귀한 무선 조종 자동차를 상품으로 탔던...
(아마 2등상인가 추첨으로)
동네 꼬마들 앞에서 으시댔던 과거의 기억 한 꼬투리가 떠 오릅니다.
6. 어쩌면 sadsong님의 고모가 이 실화의 주인공일 수도 있겠다.
한번 물어 보세요. 소풍가서 딴 학교 따라가서 길 잃었는 지...
7. 누구라도 반할 만한 미스 공...
vincent
글쓴이
2002.03.27 06:47
sadsong님... ㅡㅡ;;;
sandman님... 3 ㅡ> 안겪어본 사람은 모릅니다.
4ㅡ> 절대 깻잎 머리 스타일 아니었습니다. 참한 커트 머리였습니다.
5 ㅡ> 정말 부럽습니다. 전 한 번도 당첨 안되더니 결국.. 폐간되더군요.
6 ㅡ> 그럴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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