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보면 '서울지하철'이라는 글자가 박힌 작업복이 영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 입고 지하철을 탔을 때의 그 불편함은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모를 겁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구걸을 한다거나 물건을 파는 걸 손님으로 타는 여러분들이야 '뭐, 그런가 부다'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놈에 옷을 입고 있으면 그렇지도 못하게 되는 입장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더욱 난감한 형편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시민'이 대합실에 노숙자가 '하나'가 있으니, '치워'달라는 '신고'가 들어온 겁니다. 정말 그때는 어디 짱 박혀 있었어야 하는데, 근무인원이 부족하여 역무실을 지키면서 쉬고 있다가 '민원'을 '접수'했으니 '처리'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저를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여직 나의 사고체계나 정서구조는 '근대화'가 되질 못해서 이런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데는 어두운 편입니다. 더구나 추위에 갈 곳이 없어서 쫓겨 들어온 사람을 '미관상'의 이유로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쫓아내야 하는 일이란 내 감성구조와 궁합이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 정황이야 어찌되었든 이곳에 품을 팔고 있기때문에 하기 싫어도 해야해서 정말 어쩔 수 없이 나섰습니다.
대합실 외진 구석에서 커다란 짐 보따리를 옆에 끼고 노숙자 '하나'가 쭈그리고 앉아서 비닐 봉투에 든 떡을 먹고 있었습니다. 대개 잡화상들이나 노숙자들은 역무원을 보면 알아서 잠시 피해주는 게 경험에 의해 이후에 부딪히게 될 곤경을 예방하는 지혜이며, 이쪽 저쪽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서 나온 배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도 지하철에서 형성된 '일반법칙'에 의해 행동해주기를 바라며 그 앞을 싹 지나갔다가 괜히 할 일도 없으면서 저쪽으로 갔다가, 또 화장실에도 가고 배배 돌다가 이쯤이면 눈치채고 알아서 피했겠거니 하고 가보았더니, 여전히 그 빈궁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있는 겁니다. 노숙자들이 지켜야 할 기본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며, 그들이 좀처럼 모이지 않는 변두리의 이 영등포구청역까지 흘러온 것을 볼 때 틀림없이 초짜 노숙자인가 봅니다.
"아저씨, 여기서 이렇게 있으면 안돼요. 계속 있으면 파출소에 신고합니다"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큰소리도 못하고 애매하게 말해버렸으니, 이미 기세를 잡기는 틀려버린 듯합니다. 대개 이들에게는 하대의 말과 다소 강압적인 으름짱으로 밀어붙여야 소기의 효과가 금새 나타난다는 것이 이쪽 동네에서 통하는 방법인데 그게 영 되질 않는 걸 보면, 저 역시 이런 방면에는 초짜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려, 신고 할 테면 혀, 난 아무 죄지은 게 읎스니께"하며 그는 가시를 잔뜩 세우고 헌 옷가지를 싼 짐보따리를 끌어안으면서 경계태세를 취하는데, 그의 말이나 모습이 참으로 딱하도록 착했습니다. 그 나이 되도록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그렇고……. 어디 세상의 일들이 죄지은 사람이 파출소에 가듯, 그가 믿고 있는 대로 돌아갔으면 그 사람이 이 자리에 나와 있을까 싶었습니다.
제가 그 아저씨에게 나쁜 뜻을 갖고 마치 쓰레기 갖다 버리듯 자신을 쫓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 이쪽에서 1의 단위로 말하면 저쪽은 10의 단위로 무장해서 방어를 하고, 이래라 말하면 저래라 받아치는 서로의 주파수도 사뭇 엇갈리는 피곤한 대화가 얼마동안 오고갑니다. 술 냄새에다 며칠인지 몇 달인지 씻지 않았을 몸에서 풍겨지는 역한 살 썩는 듯함이 뒤섞여진 채의 그를 여기에 머물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저씨, 아침부터 술 드시고, 이렇게 추운데 나와 있으니 어디 몸이 남아나유? 요 문래역에 쉼터가 있으니 거기 가서 씻고 쉬세요. 몸부터 추슬러야 무슨 일이든 할 것 아뉴?"
"나, 그런데 안가. 마누라도 다 소용없어. 얼마 전까지 젊은 사람처럼 공무했던 사람이여", '공무'했다는 말을 크게 내는 것을 보면 자신도 내세울게 있었고, 능력도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주라는 듯 묻지도 않은 말을 막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대게 이들은 내가 이래뵈도 집이 두 채나 갖고 있다거나, 아들이(혹은 딸이) 대학생이라거나, 돈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무시하지 말라는 투로 드세게 말하는 것이 이들의 모습인데, 이 말들은 자신의 상처를 숨기면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필요이상 무장, 무장하는 듯하여 아픕니다.
얼마간 이쪽은 생각도 않고 자신의 입장만 풀어놓는 얘기가 계속되자 세운 가시가 설설 풀리고 눈빛은 부드러운 기운으로 돌아옵니다. 상대편이 적의가 없음을 확인하고 무장을 해제하자 그는 금세 허기와 추위, 술에 시달려 허약해진 몸을 떨기 시작합니다. 그때, 우리 역의 아줌마 선배가 "장경태씨, 이거 그분에게 드려봐요. 설탕을 많이 넣고 탔으니까 추위를 이기는데 요긴할 거야"하며 녹차를 큰 유리컵에 가지고 왔습니다. 미처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역시 아이 기르고 어르신 모시는 아줌마라 그런지 불쌍한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을 금새 행동으로 보입니다.
"아저씨, 이거 드시고 기운차리세요"
"아녀, 나 뜨거운 것 못 먹어" 팔을 내젓는데, 그 목소리는 젖어들고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니 못 먹는 이유가 뜨거워서만은 아닌 듯 합니다. 여기 저기 떠돌면서 어디서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가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사람 대접을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접하게 되니, 이 자리에 오게된 처지가 기가 막히고, 슬프고 한편으로 고마운 감정들이 정리될 겨를이 없이 복잡하게 밀려오는 모양입니다.
"내가 갈 께" 그 자리에 고집스럽게 눌러 앉으려는 처음과는 달리 일어서는 그를 한 모금이라도 들고 가라고 앉히려고 하는, 상황이 역전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손을 내 저으면서
"내가 줄 것은 없고, 이거나 저 아줌마하고 나눠 먹어"하며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때묻은 밤 세 톨을 건네는 겁니다.
어느 선까지는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역무원의 입장은 무너지고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그것을 주저앉히느라고 혼났습니다. 밥 한 술 기약할 수 없는 그의 처지에서 어디서 기막히게 구한 소중한 것을, 먹고 싶은 유혹을 참으면서 며칠을 넣고 다녔는지 쪼글쪼글하게 생긴 밤 세 톨을 거침없이 내놓는 그의 검으스럼한 손이 나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안 받으려 해도 그 분은 "난 줄 것이 읎응께 받어" 막무가내입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그의 낡은 슬리퍼사이로 나온 발가락은 금새 얼게 생겼습니다.
"아저씨 잠깐만 기다리세요"하고 침실에서 굴러다니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운동화를 갖다가 신겼습니다. 다른 직원이 내 운동화 어디갔냐고 찾아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모른 척해야지요.
"아저씨 다시는 이런데 오시지 마시고 쉼터에 찾아가서 몸부터 추스리고, 할 일을 찾아보세요"말하고 나니, 행여 가족이 보고싶으면 어떨까 싶어 갖고 있던 전화카드를 쥐어 보냈습니다.
아직도 나의 주머니엔 그 밤이 들어 있습니다.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처지에서 그 사람에게는 가장 귀한 것을, 아무 것도 아닌 호의에 덥석 줄 수 있는, 그의 너무 크고 아름다운 마음을 저버리는 것 같아 이렇게 만지작거리면서 가지고 다닙니다.
한해가 저무는 오늘, 또 어느 지하철의 대합실에서 어느 공원에서 그와 같은 착한 사람들이 차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무너지고 있을지를 생각합니다.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조차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와 '사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200만원이 훌쩍 넘어버린 월급을 따박따박 받아먹으며 사는 우리 '노동자'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