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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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추운날 뛰쳐나가기.

sadsong sadsong
2001년 11월 06일 12시 48분 29초 1053 2 2
어제저녁
해지고
어두운데.

너무 화가났지
참기 힘들만큼.
확 뛰쳐 나갔어.
비도 오니까.

다행히 슬픈 노래들로 새로 장전해놓았지.
어려운거 말고, 단순하게, 뻔하게 슬픈걸로.

과거로 가는 기차, 박하사탕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토이
제발, 이소라
오래전 그날, 윤종신
천일동안 라이브, 이승환
제발 라이브, 이소라
러브스토리, 넥스트

그래, 별 생각 없이 쉽게 슬플 수 있어서 좋아.


우산들고, 모자 눌러쓰고, 달랑 티셔츠 한벌....
어.... 춥네.

무작정 걸었어.  예전처럼.
안경을 벗었지. 다른거 볼일 없으니까.
뿌옇네. 듣기만 하면 돼.

30분쯤 걷다가, 추운 바람맞으며 문자를 날리지.
안나올 사람인걸 알면서.
"10시까지 우울하게 소주를 마시자."
춥다고 싫대. 무슨일 있냐고 걱정은 해주네.

정말 춥다.

10분을 더 걷다가, 한참 망설이다 문자를 날리지.
대답없을 사람인걸 알면서.
"10시까지 우울하게 소주를 마시자."
그래.... 대답이 없네. 씹힌걸수도 있고.
그사이 떠나갔을수도 있고.


추워...

걸었지.

대형서점.
따뜻해라.
이젠 안경을 써야지.
씨네21은 비닐에 덮혀있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쎅시한 표지에 자꾸 시선이 가고,
건강과 근육은 별로 재미없고.

나와서 걸었지.

손이 얼어..
추워
그래도 겨울이 좋아.

강남성모병원이 나타나지.
영안실은 좀 떨어져 있어.

그쪽으로.

갑자기 추워진 이날.
돌아가신 분들은. 더 쓸쓸할까.

꽉찬 주차장.

현관으로 쑥 들어갔지.
예의상 이어폰은 빼주자.
모자는 못벗어.

빈곳없는 십여개의 방.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들.
먹고 마시는 사람들.
전화하는 사람들.

내가 본
표정없는 절반의 얼굴
미소띤 절반의 얼굴
슬퍼하는 아주머니 한분

오늘따라 온통 호상인가봐
미소띤 사람들이 많네
전에는 사방에서 많이들 슬퍼했는데.

슬픔을 온몸에 받고 싶었는데.
아무도 울어주질 않으니

나와서 다시 걸었지.

길건너 터미널에서 영안실 앞쪽에까지 이어지는 멋지게 생긴 육교가 건설중.
영안실로 이어지는 육교라....
신문보니 이름 공모하던데.  뭐라고 붙여질지.
응모해서 상금탈까


술도 불발이고, 너무 추워.
그만 집으로 가자.
마을버스나 타고 갈까
걷자.
음악도 있으니까.

걷자....
추워.... 손이 굳는다.
그래도 겨울은
따듯할 수 있어서 좋아
어둠이 길어서 좋고
슬픈계절이니까 좋고
눈도 오니까 좋고
사랑이 있을 것 같아서 좋고


길가 자동차 정비소.
젊은 여자 둘이 차를 고치러 왔네
렉서스는 뭔가 다른 부러움.

계속 걷고.
내몸은 사시나무


집에는 왔는데,
3시간 벌벌떨며 돌아다녀서,
화는 풀렸나?

몸은 뜨겁다.



sadsong / 4444 / ㅈ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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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만큼 춥지만 않으면.... 겨울은 정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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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now_groove
2001.11.06 16:22
감기 걸리지 않았어요? 몸이 호되게 아프면 맘아픈거 화나는거...이런거 잊혀져서 좋기는 하지만...그래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Profile
sandman
2001.11.07 15:40
그렇게 걸어본지가 언젠가... 참으로 멋있을 수 있는 한중산책 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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