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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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잭 레먼을 기억하며...

vincent
2001년 06월 29일 23시 21분 41초 1688 2 2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의 눈물 겨운 여장 남자 연기도,
<미싱>에서 며느리와 함께 실종된 아들을 찾아 다니는 그가 연기한 부정도
인상 깊지만, 잭 레먼은 내게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속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빌리 와일더와 잭 레먼은 정말 궁합이 잘 맞는 팀이었나보다)

잭 레먼이 다니는 회사의 엘리베이터걸인 셜리 맥클레인이 잭 레먼의
유부남 상사와 사귀다가 자신이 결코 그저 재미 삼아 만나는 여자 이상의
존재는 될 수 없다는걸 알고 상심해서는 잭 레먼의 아파트로 찾아온다.
이 아파트는 잭 레먼의 아파트지만, 그녀와 즐기려는 상사들에게
잭 레먼이 수도 없이 빌려줬던 아파트다. 그리고, 그녀를 그는 짝사랑해왔다.
그녀가 그에게 한참을 하소연하고는 술에(아니, 수면제였나?) 취해 잠이 든다.
그는 그녀가 잠든 사이, 그녀가 혹여 어리석은 짓(자살이나 자해 등등)이라도
할까봐 전전긍긍, 잠재적 무기(?)들을 모두 치우기 시작한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면도를 하려다 말고 문득 생각에 잠기는 잭 레먼.
그는 면도기속 면도날을 빼더니, 화장실의 모든 면도칼들을 치워버린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나를 슬프게 웃기고 있지만, 유독 이 장면이
내 기억에 가장 깊게 남아 있다.

케빈 스페이시가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때
수상소감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할애에 감사를 바쳤던 사람은 잭 레먼이었다.
오랜 친구이자, 스승으로 그를 소개하면서 케빈 스페이시의 뺨에 머물던
환한 웃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케빈 스페이시는 오랜 친구를 잃었고,
우리는 또 명배우 한 명을 보냈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cryingsky
2001.06.30 03:26
빈센트의 그 박식한 인명과 영화명과 그 내용들의 기억해냄에.. 항상 경의를 표함.. 나이도 같은데.. 아직도 거의 머리 속에는 영화 관련 정보 밖에 없어 보이는 구먼.. ^^
wanie
2001.06.30 09:59
역시... 훌륭하세요.. 잘 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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