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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노조 - 그리고 직장 구하기

neosane
2008년 06월 05일 06시 18분 04초 5272 6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할 겸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들이 알게 모르게 힘들다는 한국 영화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답니다.
--
할리우드라고 해서 더 낳은 건 결코 아니다. 남한공화국의 4배에
달하는 캘리포니아. 그 주에서 가장 큰 수출산업 항목은 영화. 그
영화판의 가장 밑바닥인 PA의 대접은 사실 한국이 더 낳다.

그건 한국 영화 크루와 일을 해보고 느낀 점을 말하는 거다. 그 위로
올라가면 다른 애기지만 – 그건 내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일자리 헌팅 2달째. 주중해 낮이면 산타모니카, 베버리힐즈등을
돌며 영화제작사에 이력서를 뿌렸고, 밤이면 크레이그 리스트를
통해 그날 올라온 구인구직에 이메일을 보냈다. 발가벗은 여자
사진도 물론 구경했다. 주말에는 LA다운타운을 돌면서 2톤짜리
촬영용 트럭이 보이면 무조건 접근해서 이력서를 주고서는
일자리가 있으면 달라고 했다.

그리고 할리우드 광고판에서 일하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이웃사촌인
로더(loader), 즉 2톤짜리 트럭에서 무거운 일을 전문적으로 하면서
틈만 나면 시나리오를 쓰는 친구에게서 콜쉬트(Call Sheet)를 여러
장을 복사 받았다.

한 장 짜리의 종이 앞면 뒷면에는 촬영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든
이름과 직책, 연락처, 촬영일자, 촬영장소 및 주차장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다. 할리우드에서는 대부분의 촬영장 인력은 노조에 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콜쉬트는 할리우드 노조 가입을
위한 증빙서류이자 촬영장을 찾기 위한 필수적인 서류였다.

한 예로, 무보수로 붐 마이크 잡는 사람의 어씨 역할을 하는 친구는
촬영장에서 궁시렁거렸던 소리 중에 하나가 “콜쉬트 42장을 모아서
노조 가입하는 게 꿈,”이라고 애기했다. 하루 평균 촬영시간 12시간.
노조 기본 가입 조건은 무보수, 보수등 촬영장에서 최소 500시간을
일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노조에 가입되면 의료보험이 제공되고, 수입이 일정해지고
또한 일자리를 구하는 데 있어서 한결 수월하다는 것이 – 만약 노조 인력을
기용하지 않을 경우, 노조가 움직여서 프로덕션을 셧다운, 또는 촬영을
금지해버리는 때문에 제작실장이나 제작부장은 필수적으로 노조인력을
고용하기도 한다. 한편, 제작사 입장에서는 노조에 가입한 촬영장 인력이면,
수많은 시간을 촬영장에서 보냈기 때문에 무난히 촬영을 진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서로에게 윈-윈 전략이기도 하다.

때문에 많은 고급 촬영장 인력이 노조 가입을 위해서 USC, UCLA, 그리고
AFI와 같은 미국 영화학교 대학원생의 졸업작품에 푼돈만 받고 일을 한다.
영화 학교 대학원생들은 고급인력과 싸게 일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고급 촬영장 인력의 입장에선, 비교적 너그러운 대학원생 촬영장 분위기를
즐길 수 있고 – 때론 예쁘장하고 돈 많은 영화 대학원생에게 한 수 가르켜주며
데이트를 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 무엇보다 노조 가입 시간을 채울 수 있어서
독립영화나 대학졸업생 영화작품에 참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받은 콜쉬트는 대략 30장 정도. 프로듀서부터 프로덕션 매니져의 연락처가
있었다. 언뜻 이름을 살펴보니 대부분다 앵글로섹슨 계열의 성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유일하게 눈에 띈 동양이름은 첸(Chen), 카렌. 대학교 때 나는 대만계
부모를 둔 교포녀와 데이트를 즐긴 적이 있는데 그녀의 성 또한 첸이었다.

“케런 첸씨 되시죠?”

“네 근데 누구시죠?”

“네. 다름이 아니라 제가 PA일자리를 구하고자 이렇게 전화를 드렸는데요.”

“제 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죠?”

“아. 집 전화번호. 죄송합니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이웃이 당신이 슈퍼바이져로
있던 광고촬영에서 로더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친구한테서 콜쉬트를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지금은 휴가기간이예요. 다시 일을 시작하면, 그때 필요하면 전화를 드리도록 할게요.”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력서를 어디로 보내면 될까요?”

“제 이메일 주소로 보내세요.”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내는 김에 저녁 식사도 초대해봤다. 내용인즉, 나도
동양인이고 당신도 동양인이니, 내가 밥을 한번 쏘겠다.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맛나는 밥도 대접하겠다는 게 주내용이었는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콜쉬트를 이용해서 다른 30여명의 프로듀서들한테도 전화했지만
이력서를 보내라는 소리만 했지, 당장 일을 하러 오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열곡절 끝에 인터뷰를 본 곳 – 베버리 힐즈에 있는 영화 제작회사. 이른바
스파이더맨의 감독을 맡은 샘 레이미가 설립한 고스트 하우스 픽쳐스. 베버리
힐즈의 젓가락 같이 늘씬한 여자에 놀랐고, 비싸보이는 소파가 있는 로비에
앉아있을 때부터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입술 근처에 여드름이 송송난 금발녀
어시스던트가 프로듀서와 인터뷰를 보라고 내게 말했을 때 더더욱 긴장했다.

“오클랜드의 포주와 창녀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이죠?”

내 이력서를 살펴보던 프로듀서는 말했다. 리바이스 501 청바지에 와이셔츠를
입은 프로듀서의 몸매는 날렵했고, 무엇보다 내 이력서를 읽어봐주는 점이 고마웠다.

“네. 의례 포주(Pimp)와 창녀는 사회의 변두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탐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성적서비스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최근 진보된 디지털화에 어떤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주제적 탐구 의식 또한 있었습니다.”

짜릿했다. 내가 대답을 해놓고서도 감탄을 했다.

그럴 법한 까닭.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는 영화 관련 논문을 써야했다. 물론 쓰기 싫었고,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게 “창의적 프로젝트”를 대신함으로써 졸업을 하겠다는 것이었고,
마침 스타크래프트 내기를 하러 오클랜드 한인타운 피시방에 놀러갔다가, 전형적인 포주
복장에 창녀 복장을 한 흑인들을 보고, 설득해서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비교적 잘 찍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내일부터 출근해요. 참, 경험이 없으니깐 무보수인건 아시죠?” 프로듀서는 내게 말했다.

2달 만에, 베버리힐즈에 있는 근사한 영화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 사실인 거 같았다.
--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uglychang
2008.06.05 08:06
Good Luck :D
j4life
2008.06.05 09:44
기행문 읽듯이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미국가게 되면 똑같이 연락드릴께요~! 저도 콜시트 한장 부탁드리겠습니다~ ^ ^
잘되셨으면 좋겠네요, 화이팅입니다!
Profile
kyc5582
2008.06.05 11:53
와! 정말! 축하 드림니다.^^
cultycrom
2008.06.05 12:14
정말 좋으시겠어요..축하드립니다..한국에 있는 나도...나도...-_-
kineman
2008.06.05 13:08
늦었지만 첫 직장 입사! 축하합니다. ^^
onsoo
2008.06.05 15:12
축하합니다. 반성과 감동이 됩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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