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돌아왔습니다. 한강변에 ‘내장비만과 심혈간질환’이 의심되는 한 마리 괴물을 풀어놔 여러 사람 뛰어다니게 한지 3년 만에 이제는 우리 엄마 같은 그래서 ‘더 무서운’ 어머니 한 분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개봉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많은 비교가 되었는데 똑같이 칸 영화제에 가서 ‘누구는 상을 받았네 안 받았네’ 해서 영화외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게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박쥐>는 박찬욱 감독이 하고 싶은 걸 죄다 우겨넣어서 만든 영화라 하면 <마더>는 봉준호 감독이 그 동안 영화에서 보여주던 시점에서 벗어나 ‘엄마’라는 타인의 시점으로 영화를 바라본 전작과는 다른 양상을 띤 영화라 생각합니다. 현재 말들이 많은 이 영화의 '클로즈업'을 통해 그런 부분들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일단 이 영화는 김혜자씨를 위한 영화입니다. 당연히 ‘엄마’를 위한 영화이고요. 김혜자씨의 연기는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자식들, 특히 아들들은(저도 그 중 하나랍니다) 어머니에게 ‘섬뜩한’ 어떤 비슷한 감정들을 한번씩은 느껴봤을 겁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을 ‘해하려는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하는 것’일 때 말이죠.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지 않아 함부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한국의 어머니들이 약간 극성인 면이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한(恨)이 많아 그러는 거라면서 갑자기 ‘외국이 여자가 살기 참 좋다던데’라는 허무한 말로 설명을 끝내시기도 했습니다.(요즘 갑자기 이민노래를 부르십니다!!) 어머니들이 왜들 그러시는지 까지 알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봉준호 감독이 어머니상을 파악하고 포착한 능력은 정말 놀랍다 하겠습니다. <올가미>에도 비슷한 정서와 캐릭터가 나오지만 그건 공포영화라는 전제가 뚜렷한 장르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마더>는 일반 드라마 이야기 안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관객에게 공감을 얻어내야 하는 영화입니다. 그런 면에서 캐릭터는 물론 영화의 흐름까지 어머니들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만든 영화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엄마가 아들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아닙니다. 한참 뒤, 전혀 엉뚱한 애가 아들 대신 죄 없이 잡혀 들어간 후입니다. 엄마는 굳이 그 애를 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엉뚱한 애를 면회실에서 만나 한마디 합니다. ‘너 엄마 없니?’ 그리고 웁니다. 이 장면이 클라이맥스입니다. ‘너 엄마 없니?’는 최근의 나온 한국 영화 클라이맥스 대사 중에 단연 최고입니다. 왜 유행어가 안되었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본인의 어머니께 직접 조언을 구했던지 아무튼 보통 남자로는 떠올리기도 힘든 ‘현실감’을 놀랍도록 표현해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드라마적인 서사 뿐 만이 아닌 촬영적인 기법, 즉 ‘클로즈 업’을 통해 이런 감정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봉준호 감독은 ‘클로즈업’으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박해일을 눕혀놓고 송강호가 ‘너 밥은 잘 먹고 다니냐’라고 한 그 유명한 장면이 대표적인 ‘봉준호표 클로즈업’입니다. 씬(Scene) 내적인 요소들이 씬 들이 이어지며 ‘디테일하게’ 빛이 나는 봉준호의 영화에서 ‘클로즈업’은 ‘롤러코스터 위에 꼭대기까지 관객들을 올려놓고’는 절정을 맛보게 합니다. 그래서 대개 클라이막스나 아주 중요한 씬에 ‘자신의 약관’처럼 쾅 찍어 놓습니다. 아주 중요한 장면에 말이죠. 하지만 이번 <마더>같은 경우 영화 앵글의 대부분이 ‘클로즈업’으로 다소 남발된다는 느낌마저 줍니다.
저는 <마더>가 전작들과는 달리 봉준호 라는 감독의 시점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영화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마더>는 주인공이 한 ‘평범한’ 어머니이고 그 어머니의 관점에서만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어머니들이 자식을 볼 때 어떻게 봅니까? 바로 이런 ‘클로즈업’이 아닐까요. 전체적인 모습보다는 자식의 ‘어떤 면’만을 확대해 바라보는 게 어머니들, 특히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공통된 모습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에서 김혜자씨가 ‘아들’인 원빈을 바라보고 같이 대화하는 장면은 거의 다 ‘클로즈업’입니다. 영화의 전환을 맞는 장면에서 맞닥들이는 인물들 또한(아들과 관련이 된 친구) 바라보는 시점의 앵글이 점점 타이트해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자신을 의심해 화가 난 아들의 친구가 집에 들어와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약간 웃기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이 앵글은 철저히 어머니의 눈에서 쳐다본 것입니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 집중을 하면서 더욱더 그런 어머니의 다급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 클로즈업의 ‘백미’는 바로 엄마와 아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 ‘면회실’씬 입니다. 처음 면회를 하는 장면에서 변호사를 데려와 소개해주는 장면 그리고 어릴 적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 했었다는 걸 갑자기 아들이 말하는 장면까지. 거의 모든 컷과 앵글들이 클로즈업이며 감정의 흐름에 따라 ‘들고 찍기’도 등장합니다. 이는 <마더>가 철저히 캐릭터들에 충실한 영화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마더>의 ‘클로즈업’은 봉준호 감독의 ‘자기 자랑’이 아닌 자신이 아닌 제3자의 눈으로만 영화를 해석한 ‘재치’라고 생각합니다. <괴물> 같은 경우, 그 동안 우리가 보았던 괴수영화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바로 ‘봉준호의 세상 보는 관점’이 강하게 들어있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괴수영화는 ‘도망가는 인간과 쫓아오는 괴수’ 이야기가 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마더>는 봉준호 감독이 자기 자신을 죽인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평균적이면서 이중적인 자식에 대한 감정들을 더 잘 표현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빈번한 ‘클로즈업’은 그런 관점에서 봐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식을 바라보는 모든 어머니들의 시선. - 05 이민우 - middleguy@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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