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단편 - 제목 : 60기동대 (2부)
tonyk66
2006.12.25 11:20:34
누군가 박연에게로 달려왔다.
최루탄. 화염등으로 인해 생겨난 자욱한 연기때문에
한치앞도 분간이 안되는 그런 상황인데도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오감으로 느낀 그는
들고있던 3단봉으로 달려드는 사내의 머리를 그대로 후려쳐 버렸다.
그리 큰 덩치는 아닌 그 였지만 상황의 위급함과 3단봉의 위력이
맞물려, 사내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버렸다.
피의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는 절대의 인간성은 이미
상실한지 오래다. 그건 공권력인 자신, 그리고 시위대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피투성이가 된 그들의 동료들이 쓰려져 있는걸 본순간
머리가 돌아버리는 모양이었다.
길길이 날뛰는 양쪽의 대치상황속에서 의사당 부근의 양 골목에서
어두운 톤의 파란색 살수차 대.여섯대가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집채만한 덩치에 바퀴가 여섯개나 달린 이 괴물이 다가오자
성난 군중들은 겁을 먹기는 커녕 오히려 치밀어오르는 반감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한 무리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경찰들이 민간인을 집단살해 하려고 한다!!
저것들은 경찰이 아닙니다!!여러분~ 밀어 붙입시다!!"
군중심리는 이럴때 작용하는 것이다. 마치 잘 훈련된 도베르만이 쌍을 이루어
범인을 제압하듯, 다수의 무리는 여전히 경찰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또 다른 무리들은 살수차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주변의 그리높지 않은 건물옥상에는 여러 방송사간의 치열한 취재경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좀더 가까이 사건의 현실을 담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그들이 상주하고 있는 옥상을 내려가는
이는 단한명도 없었다. 자신의 목숨이 더 귀중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불 붙은 무언가가 옥상쪽으로 튀어오기만 하면 혼비백산 야단법석을 떨고 말았다.
"연일 심화되는 정부의 부패와 정치인들의 아니라한 행동......대기업들간의...........이권다툼 그리고
오늘의............현실을 이지경까지.......,"
계속되는 불똥으로 리포터까지 자신이 해야할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살수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액체속에는 최루액이 다량 함유되있어서
조금이라도 스친 이들에겐 뜨거운 고통이 따랐다.
하찮은 몸뚱아리의 구멍이란 구멍속으로 파고들어가 그야말로 지옥과 지옥사이를 오가는
일대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덩치가 크면 행동은 느려지는 법,
살수차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버리는 시위대들은 하나둘씩 그 괴물을 제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박연순경은 자신의 녹색견장 때문에 더많은 시위대들이 다가온다는것을 알아채고는
그것들을 잡아 뜯어버렸다. 이미 상대의 공격으로 그 폼나던 방탄 헬맷의 절반은 날아가고 없었다.
그러나 얼굴을 단단히 고정시켜주는 턱끈은 아직 멀쩡했기에 벗어버릴 생각은 아예 없었다.
20세기 말에는 진압복 안에 대나무가 들어있어 외부의 충격을 철저히 완화시켜주는 완전 진압복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기동성을 확보하고 경찰력의 위세를 강화하기 위해
급소부위만 가려지는 간진압복이 선보이면서 자연히 다른 부위는 노출이 되는 단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박연은 경찰박물관에서 1999년도에 쓰였던 완전진압복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회색빛깔의 이 볼품없어 보였던 진압복은 당시 광화문 사거리에 우뚝 세워져 있던 이순신 장군상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박연은 지금 그때의 진압복을 입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여유로운 생각을 하며
자신과 맞닥뜨린 두명의 시위대에게 밀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무술유단자이며 뛰어난 체력과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 되어야만 정예부대 1060기동대에 들어올 수 있는
영광(?)을 안은 그가 지금은 이자리가 너무도 싫었다.
그는 주먹으로 상대의 면상을 곧바로 질러버렸다. 적의 코가 부서지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왔다.
동시에 왼쪽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또 한명을
박연은 순식간에 몸을 돌려 장착되어 있는 방패로 그의 두상을 그대로 찍어 버렸다.
분출되는 피와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쓰러지는 둘을 보며 한순간 뿌듯함을 느낀 그였지만
동시에 악마같은 본성을 보게된 박연은 잠시 그대로 서있었다.
연기로 인해 하얗게 서린 주위 풍경이 잠시 멈춰 있는듯 하더니 이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했다.
자신의 중대원들과 시위대가 엉켜있는 모습이 다소 익살스럽게까지 보였다.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아이들이 "얼음!땡!" 놀이를 하듯 그대로 멈춰 있었다.
어떤 이는 부러지는 이가 튀어나오는 순간이, 또 어떤 이들은 싸움으로 인해 서로를 안고있는 듯한 순간이,
사력을 다해 앞다리로 적의 가슴팍을 공략하기 위해 한껏 입을 벌린 모습이,
모두 우스꽝스럽게 생긴것 같았다.
그런 형상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새기기도 전에 박연이 앞으로 와장창 쓰러져 버렸다.
누군가 뒤에서 각목으로 공격을 한것이다.
잠시 뒷덜미가 찡한것이 느껴오더니 곧바로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왔다.
- 지금 이런 고통따윌 느낄때가 아니다. 일어나라. 안그러면 내가 죽는다.
난 소대원을 이끄는 소대장이 아닌가? -
박연순경은 쓰러져있는 상태에서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자신을 때렸던 이가 다시 한번 각목을 내려쳤기 때문이었다.
너무 힘껏내리친 탓인가 공격자가 잠시 기우뚱 거렸다. 어딘가 모르게 느린듯하면서도 어색해 보였지만
이순간을 이용하여 번개같이 박차고 일어난 박연이 숙련된 앞차기로 그를 쓰러트렸다.
- 내가 누군줄 알고 날 치는건가! 난 박연이다. 60중대의 가장 뛰어난 기동대원 박연이다! -
피로얼룩진 박연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면서 쓰러져있는 그를 발로 정신없이 짓뭉기기 시작했다.
제법 탄탄한 기동화는 무기가 되기엔 충분했다. 성이 풀릴때까지 걷어차고, 3단봉으로 내리치는 것을 반복하던
그가 이미 숨이 끊어진듯한 그를 목덜미를 잡고 일으켰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마지막 일격으로 보내버릴 심산인듯, 내지르기 위해 주먹을 한껏 움켜쥐던 박연은 앞뒤가리지 않고 팔을 뻗었다.
한번. 두번. 세번도 좋았고 네번은 더 좋았다.
쓴웃음을 짓기까지한 박연은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자가 누군가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아버지"
그자는 박연순경의 아버지였다.
경찰관이 되어 누구보다 좋아하셨던 그의 아버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박연이 죽인 그냥 한명의 시위대였다.
다시 박연은 어떤 충격으로 쓰리지고 말았다. 목덜미를 쥐고 있던 손이 풀려버리자
아버지와 동시에 땅바닥으로 곤두박칠 쳤다.
4명의 시위대가 쓰려있는 그를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
고통은 느낄 수 없었다.
눈을 뜬채 주검이 되어있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그냥 소리없는 눈물만 흐른채
박연은 시위대의 마지막 발길질로 숨을 거두었다.
"2048년 금일 벌어진 경찰과 시위대간의 무력충돌은 대한민국 시위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상자~ 경찰 332명, 시위대 1501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통령은 자신의
무책임함으로 벌이전 이번사태로 인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표명 하였습니다."
9시 뉴스에서는 오늘의 이 사건이 집중 보도 되고있었다.
길을 가던 시민들과 각 가정에서는 뉴스를 심도깊게 시청하고 있었다.
- 2부 끝 -
스토리 바이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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