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파트 놀이터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생기 있게 놀고 있다.
아이들의 부산한 움직임 사이로 빈 그네가 앞뒤로 가볍게 움직이고
벤치에 앉은 그늘진 표정의 젊은 여자가 안타까운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간간히 보이는 주민들의 빠른 걸음들.
주차시비로 높아지는 언성, 남편의 외도를 추궁하는 앙칼진 목소리 등이 어디선가 들려온다.
2.
소주병을 든, 딱 보기에 부랑자인 남자가 느릿한 걸음으로 벤치에 여자가 앉아있는 다가와 잠시 머뭇하다가 한쪽에 자리 잡는다.
미동 없이 앉아있는 여자를 슬쩍보고. 여자의 시선을 쫒아 본다.
꼬마애가 그네에 앉아 맥없이 발장난을 치고 있다.
한숨을 쉬며 술병을 입에 대는 부랑자, 여자에게 “딸이냐고 묻자” 여자는 놀란
표정으로 부랑자를 바라본다. 부랑자의 존재를 이제야 눈치 챈 듯이. 여자의 경계하는 듯한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랑자는 재차 묻고 여자는 낮은 소리로 대답한다. 여자의 대답에 부랑자는 이제야 생각난다는 듯 몇 번 본 적이 있다고 하고, 아이 걱정이 많겠다하며 걱정해 준다. 여자는 아이가 좋아한 것을 해주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한다.
부랑자 틈틈이 술을 마시고 여자는 아이의 모습을 처연히 바라보고 있다.
어디선가 수다쟁이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엊그제 젊은 애엄마 교통사고 난거
어떻게 됐데?” “글쎄 애는 죽고 애 엄마는 아직까지 혼수상태라지 아마” “ 쯔쯧 안됐네 안됐어”
3.
계절이 바뀐 아파트 놀이터.
여전히 술병을 들고 있는 부랑자. 여자가 앉은 벤치로 다가간다.
여자는 부랑자의 접근에 경계하고. 자리에 앉으며 부랑자가 묻는다. “언제 퇴원했어요” 여자는 잔뜩 의심하는 눈으로 되묻는다.“ 아저씨는 누구시길래 제가 입원한 걸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