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에....

weirdo 2004.03.25 05:24:40
신문읽기를 좋아합니다. 뉴스보기를 좋아합니다.
신문을 못읽고 있습니다. 뉴스를 못보고 있습니다.

1월 중순쯤부터의 신문을 모아놓고 있습니다.
몇년전인가.. 읽지 못하고 모아 놓았던 한달분 조금 넘는 신문을 다 읽는데 6개월쯤 걸렸던
숨가쁜 기억도 떠오르고, '최근 소식들'을 먼저 알고 싶은 생각도 들고 해서,
1,2월치는 일단 미뤄놓고 3월분부터 읽으려고 합니다.

어제 해치운 3월2일자 신문을 통해서는
2004년 3월의 첫날, 타악기 연주자 김대환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헐렁한 검은 옷이, 벙거지 모자가, 작고 동그란 안경이, 처절하게 굳은 손마디가 떠오릅니다.
원래 떠올랐어야 한 날보다 20여일쯤 뒤늦게 떠오른 것입니다.
20여일만큼 미안했습니다.
1월과 2월엔 또 어떤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오랜만에 돌아온 서울에서의 가슴상태는 대체로 잔잔하고 적당히 슬픕니다.

엄마가 반갑게 맞아줘서 슬프고,
'이제 죽을때가 다 됐나보다'라고 언제나처럼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전과 다르게
정말로 힘없는 목소리여서 슬프고,
그래도 저 바쁘게 일한다고 웃어 주시니 슬프고,
한참만에 뵌 그런 할머니 곁에 십분정도 밖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슬프고,
사람들이 자꾸 정치 이야기를 해서 슬프고,
인터넷 어느 싸이트에서 본 어떤 사람의 어떤 근황을 보니 슬프고,
오랜만에 가졌던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 이상하게도 어색해서 슬프고,
새로 찾아낸 어떤 음악들이 마음에 쏙 들게 슬퍼서 슬프고,
상처받은 어떤 사람의 여린모습을 보게 돼서 슬프고,
서울 어느 거리의 여자들이 대부분 쎅씨해서 슬프고,
갑자기 술이 많이 먹고 싶어졌는데 그러지 못해서, 않아서 슬프고,
옆자리 어린 여자 아이들 대화중에 욕설이 떠나질 않아서 슬프고,
내가 슬픈걸 알아챈 어떤 사람을 만나게 돼서 슬프고,
거리를 향해 내걸린 '**호프나이트'의 모니터 속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들이 슬프고,
사실 크게 슬프지도 않은데 슬픈척 하려니 슬픕니다.

어쨌든 슬퍼서 좋습니다.


어떤 여자와 어디서 뭘 좀 마시고 나오는데, 카운터에선 작은 가그린 두병을 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단순히 입냄새 없애라고 줬을 수도 있는데,
그 순간에는, 입냄새 없앤 다음 둘이서 뽀뽀하라고 주는건가보다 했습니다.
꼭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럼 다음번엔 뽀뽀할 여자와 다시 가봐야겠습니다.




이제 작업 이야기 - 짧게

지금까지 11회차 촬영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느새 그렇게 되었네요.

도계에서 서울로 연이어 진행된 촬영으로 많이 지쳐보였던 스탶들이
하루 푹 쉬고는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것 같아 다행이구요.

이제 날도 많이 따뜻해지고 어느 땅에는 벌써 개나리도 피어났던데..
'꽃봄'에선 겨울 이야기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우선 계절적 배경이 잡힐만한 외부 씬들을 먼저 촬영 해가면서 쳐내고 있습니다.
솟아나는 꽃망울들을 극복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오늘은, 촬영하기로 되어있던 서울 분량이 있었는데,
그 씬에 대한 시나리오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촬영은 잠시 미루어졌고,
날 밝으면 우선 시나리오 회의를 가지게 될겁니다.
보다 나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고, 아마도 토요일쯤에 다시 도계로 내려가게 될 듯 합니다.



고백컨데 이건 사실, sadsong이 친구 weirdo 아이디만 빌려서 쓴 글입니다.
그러니 작업일지 같지도 않은 막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한번만 봐주세요.

한참 써내려가던 글도 한번 날렸고,
피씨방 요금도 4,600원이나 나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