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배우 후보들, 도계 관악부 합숙시작. <2>

weirdo 2004.01.29 04:08:04
이제, 하루지난 28일 입니다.

7시30분 기상.
더운물 나오는 곳이 건물 외부에 딸린 작은 공간에 한군데 있었군요!
근데 수도 꼭지가 하나라서.. 아이들 다 씻은 다음에 대충 또 세수만 했습니다.
아침밥을 지어먹고 나서.. 이제는 서울 아이들도 설겆이를 돕네요. 거참..

서울서 보내온 악기가 도착해서 서울 아이들도 악기를 손에 쥐어보게 됩니다.
선생님도 지도해주시고, 이미 친해진 도계 아이들도 잘 가르쳐 주는군요.
트럼펫..은 좀 어렵고, 색소폰의 경우 생전 처음 입에 대본 아이가 몇시간만에
'학교종이 땡땡땡'(이거 제목이 맞나?), '떳다 떳다 비행기'(이건 제목이 뭐죠?) 정도
-물론 어설프고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불기도 하는것을 보니 신기하더군요.

다시 점심 지어 먹고.(3분 하이라이스.)

다시 연습하고.
저녁은 삼겹살! 상추, 깻잎,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김치.. 선생님이 끓인 콩나물찌게.
요런것들을 배불리 먹고 설겆이를 거의 다 마칠즈음,
확정헌팅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감독님, 조감독님, 촬영감독님, 조명감독님, 미술감독님 등..
여러분이 학교를 방문하셨습니다.
아직 헌팅이 진행중이지만, 그동안 선택된 지역들만 먼저 확인하러.

선생님과 인사 나누는 동안
갓 씻겨진 식기들로 급히 한 상 다시 차려졌고, 삼겹살은 다시 불을 만납니다.

그리고 저혼자 다시 남게 된 학교(아니, 아이들과 선생님도).
관악부가 대회에 나갔던 비디오 자료도 시청하고, 선생님의 복식호흡 강의도 있었고,
아이들끼리 잠깐 게임도 하고..
그 와중에도 전,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이틀간 참았던 피씨방도 가서 작업일지도 올리고,
아침에 봐두었던 더운물 수도꼭지로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해볼 부푼 꿈을 간직하고 있었죠.

드디어 취침시간,
선생님께 말했습니다.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선생님 말씀하십니다.
이 건물 출입구 전체에 세콤이 설치되어있다고, 해제하려면 수위아저씨(?) 불러서
어쩌구 저쩌구 해야 한다고.
아.. 제가 그렇게 까지야 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도 찬물로 발씻고 오시겠다는데.


그 대신, 다행히도 이 방에 컴퓨터가 한 대 있었습니다.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있는 떡 하고 놓여있는 이놈을 왜 지난 이틀동안 발견조차 못했는지,
그만큼 정신이 없었던건지. 웃기는군요.
어쨌든 느리지만 인터넷도 되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찬물과의 한판 승부만을 남겨놓은 셈이죠.


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순간부터 선생님은 바로 뒤에서 주무시기 시작했는데,
얼굴을 뒤덮은 선생님의 잠바가 이 컴퓨터의 모니터 불빛을 피하기 위해서인 것만 같아
참 죄송하네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써야지..
아이들은 불꺼진 상태에서도 몇시간을 쑥덕거리다 1시쯤 되서야 잠든것 같네요.
적막 속 소근대는 소리들이 하나 둘 모이면 아주 시끄러운거 아세요?
아이고 시끄러운 놈들.


지금, 네개의 작업일지를 연달아 올리는데 조금 더 긴 시간 잡아먹은 이유중 하나는,
도계 아이들이 자꾸 컴퓨터쪽으로 몰려와서 제가 무슨 짓거리를 하는건지 구경하고 묻고 해서였죠.
저는 애들 소리에 바로 뒤 선생님 깨실까봐 계속 조마조마했고.

<그 순박한 물음들 중, 인상적이어서 즉석에서 받아 적어놓은 몇가지.>

# 2학년 아이 한명이 다가와서 내가 (영화에서)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길래,
모니터에

감독
조감독
연출부1, 연출부2 연출부3,4,5...

이렇게 써가며 "나는 연출부라는 거야" 라고 말해주니,

2학년 : "아까 그 아줌마는요?"
나 : "그 사람도 연출부라는 거 하는 사람이야" 라고 답하는데,

어느 깜찍한 1학년 아이 스르르 내 등뒤로 다가와서는 저 숫자들을 보며 하는말,
1학년 : "선생님, 저희는 연출부예요?"

(도계 아이들도 실제 연주 장면에 출연할 예정인데,
그 아이는 저 숫자들을 보고 여럿인 자기들을 나타낸것으로 알았던 것.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 선생님이 되었나.)

2학년 : "우리가 무슨 연출부야, 우리는 엑스트라지." 하는데,
1학년 : "(뜬금없이) 영화 찍으면 어디 좋은데 가요?"
2학년 : "야 어딜가, 여기서 다 찍지."
1학년 : "(실망스러운)...."
2학년 : "그거 영화 할 때 우리도 시사회 갈 수 있어요?"
나 : "그럼, 가야지."
2학년 : "와..시사회는 저.. 연예인 되면 가는줄 알았는데.."
1학년 : "(다시 뜬금없이) 최민식이 주인공이니까 최민식이 젤 쎈거죠?"

내가 웃겨서 답은 않고 그놈의 질문을 타이핑하는데,

1학년 : "근데요, 왜 대답은 안하고 적기만 해요?"
이 때, 새로등장한 1학년 : "난 최민식이 누군지도 몰라."
원래 그 1학년 : "(모니터를 바라보며) 근데 이건 뭐하는거예요?"
아까 그 2학년 : "(모니터를 가리키며) 이거봐 작업일지 라고 써있잖아."
원래 그 1학년 : "이런거 쓰면 머리 안 아파요?"
나 : "아퍼"
원래 그 1학년 : "근데 왜 해요?"

음.... 이건, 호기심 가득담긴 그놈 얼굴을 직접 보면서 들으면,
저멀리 어둠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어느새 스르르 등뒤에 나타나서 뜬금없이 질문 던지는
그놈의 '행위'를 보면서 들으면 진짜 웃긴 대사들인데,
글로 옮겨놓으니 안 웃긴겁니다. 그렇게 아세요.


참, 아까 저녁 먹을 때,
서울에서 온 한 아이, 멀리 혼자 떨어져서 창 열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다가가 뭐하냐고 물었더니,
(서울에 있는)여자친구가 지금 달이 예쁘다고 문자를 보냈다는군요.
....
....

두사람 고개 내밀만큼 창문 더 열고 고개 내밀어, 같이 달을 바라봤습니다.

달이.... 참 반짝거리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