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image220 2003.11.16 05:28:10
어느새 훌쩍 다섯시가 되었네요.
남아있는 목욕탕 씬 촬영은 밤샘인데,
밤이 이렇게 짧으니 어떡할까요.


어제는 제 생일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집에 전화도 못드렸네요. 그 정도로 바쁜 것도 아니면서.
조금은 쓸쓸한 생일이었지요.
어려서부터 생일을 안따져버릇해와서 달리 아쉬움 같은 건 없지만
슬슬 지치는 타이밍, 이럴 때는 오래 못 본 친구들, 가족들이 그립지요.
뭐. 지나간 얘기네요.

촬영이 끝난 친구들은 주말을 아비드실에서 보내는데
저는 맨 구석 프리미어 편집실을 빌려서
인도네시아에서 찍어온 DV소스를 편집하고 있었습니다.
테이프는 네개지만 그 중에서 쓸 부분은 적겠죠.
단편영화 속의 TV화면이니까요.
오랫만에 다시 보니까 사람들이 정겹네요. 우리 고향사람들처럼.
가짜 인터뷰도 열심히 해주는 동네사람들.
보고 있으니까 내가 진짜 무함마드를 찾으러 다녀온 것 같고.
가을에 일주일을 다녀온 것인데, 어쩐지 거기서 여름 한 철을 보내다 온 것 같습니다.
편집해서 나중에 더빙도 해야하는데.
(혹시 성우분들과 친분 있으신 분 계시면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TV소스는 '야매'키네코 해서 쓸 예정이라
사운드 후반도 복잡할 것 같네요.

저녁 때는 촬영, 연출부와 함께 목욕탕 씬 콘티를 만들어보았습니다.
평상을 가운데 둔 탈의실에
주인아저씨, 단골손님, 이발사, 때밀이, 다방 아가씨, 무함마드, 소방기구 영업사원.
동시에 여섯명까지 등장하며 쉴 새 없이 대사가 이어지는 시나리오.
...를 왜 그렇게 썼는지 참. 제가 썼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선물받은 <살인의 추억>DVD를 벌써 열번 가까이 봤다는 촬영님.
"여기서 쓰윽.... 카메라가 들어가면서....투샷에서 단독 만들어 줬다가...
인물 따라주고..... 다시 저쪽에서 또... 쓰윽..."

피자 박스를 조각조각 오려서 이름을 써놓고
평면도 위에서 움직여가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시나리오 그 부분을 펼치기 두려웠던 과거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헤매지 말아야지요.


낮에는,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단속이 곧 시작된다는 뉴스를
무함마드처럼, 길을 걷다 전파상TV로 보았습니다.

잠이 올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만 기숙사로 갑니다.
좋은 일요일 보내세요.

11월도 반이 갔으니, 올해가 한 달 보름 남은 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