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지 모듬 세트...
minifilm
2003.11.08 05:05:07
안녕하세요...minifilm입니다...
열심히 양수리에서 숙식을 하며 후시녹음에 전념하고 있느라...제작일지를 거의 못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홍보팀에서...모 영화주간지에 보낼 제작일지를 써달라고 해서...열심히 써본 글을 올려봅니다...
이미 올라간 글들과 중복되는 부분도 있구요...
잔머리를 굴려 몇번 나눠 올릴까도 했는데...^^
좀...깁니다...여러번으로 나눠서 읽으시지요...조회수 좀 올라가게...^^
실미도 제작일지 by 조감독 minifilm
2002년 여름 어느 날... ‘광복절 특사’란 영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전주 촬영이 비 때문에 지연되고 서울에 올라와 사무실에서 열심히
스케줄을 짜고 있을 때였다.
지은이 형을 만났다. 사무실에서.
(참고로 그 당시 우리 사무실 흥국빌딩 4층은 ‘감독의 집’이라고 지금은 없어진 유령 영화사가 있었고,
‘필름 매니아’ 라는 영화사 하나, 그리고 문제의 강우석 감독님 사무실이 공존하고 있는 무서운 공간이었다...)
형?
응...
여긴 무슨 일로?
감독님이 오라 그래서...(지은이 형과 나는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이후 무려
3작품이나 같이 연출부 생활을 한 사이이다.)
감독님이 왜?
나...실미도 하기로 했다.
실미도?
응.
아직 안 엎어졌어?
이 새끼가!
헐...어쩌게...?
몰라...너두 할래?
...아! 스케쥴 짜고 있었지?
야~아!
...아~ 바빠라~!! 다음주엔 뭘 찍지?
몇 주후...다시 전주에서 뺑이를 치고 있는데...서울서 감독님과
플레너스 본사 사람들이라고 하는 넥타이를 맨 몇 명의 아저씨들이 와서 우리에게 일용할 고기를 산 날이 있었다.
감독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평소 감독님이 연출부를 부를 땐 셋 중 하나다.
1. 술을 먹이려고
2. 뭔가 야지를 놓으려고
3. 중요한 무엇이 있을 때...
감독님은 반쯤은 농담조로 이야기를 하셨는데...나는 모두 농담이길 바라며 들었다.
물론 요지는 실미도를 하라고 하시는 내용이었는데...난 광복절 특사에 일단! 충실하겠다는
뻔히 속이 보이는 말로 일단 자리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영 편하질 않았다.
우리 연출부가 누구인가....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연약하고 가냘픈 한줄기 갈대 같은 존재가 아닌가...
광복절 특사가 개봉하자마자 호주로 도망을 갔다...
2002년 겨울 어느 날...
세종호텔 1층 횟집에 최초의 실미도 스텝들의 모임이 있었다.
참석자는 김성복 기사님, 신학성 기사님, 김원용 기사님, 고임표 기사님,
조영욱 음악감독님, 지은이 형, 혁이, 그리고 나...나?
그렇다. 나도 있었다. 도망? 도망은 무슨 도망. 이틀 전 귀국한 나는 이미 감독님에게 무릎을 꿇었다.
사실 실미도란 영화가 하기 싫었던 건 아니다. 난 방위를 나왔다.
18방. 18방이 무슨 특수 부대 영화에 도움이 될까 싶어...단지 그런 이유로...방해 될까봐...헐헐...
알고 보면 우리 감독님도 방위, 지은이 형도 방위...나도 방위...헐헐...고생 좀 하겠군...
감독님 포함 조감독만 세 명인데...현역이 한 명밖에 없다니...헐헐...
기사님들은 이미 공공의 적으로 호흡을 맞춘 분들로, 이중간첩을 찍고 계셨다.
감독님의 대략적인 스케쥴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내년 3월1일 이전에 크랭크-인 한다!
쿵!
쿵!!
쿵!!!
쿠~쿵!!!
여고괴담의 폭탄 점프샷처럼 폭탄적인 발표...
...다들 농담처럼 들었지만 감독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다...
문제는 시나리오 였다. 호주에서 돌아온 나에게 지은이 형과 혁이는 지금까지의 성과물을 자랑하듯
실미도 원작 소설 2권과 실미도 만화책 20여권, 그리고 수십 가지 버전의 시나리오를 안겨 주었다.
등장인물 수 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이 버전 이름과 저 버전 이름이 다르고 내용도 물론 다르고,..
여자주인공이 나왔다 안 나왔다...이런...어떻게 이런 영화가 안 엎어지고 여기 까지 왔는지 원....
이란 당혹감과 함께...실제 사건이 나에게 주는 충격은 장난이 아니었다....
...이거...만들어 놓으면...많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까...?
김희재 작가님이 맡아서 글을 쓰기로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나온 모든 버전들을
다 싸들고 분당 작업실로 들어갔다. 우리의 아이디어 조금과 작가님의 글 대부분이 합쳐저
4고까지 시나리오가 나왔다.
...일단 촬영에 들어가기로 했다. 완성된 대본은 아니지만 눈을 찍기 위해선
감독님의 충격발표대로 3월 1일 에는 촬영을 해야만 했다...
조감독으로써 캐스팅을 담당한 나는 31명이라는 명확한 숫자를 안겨준 김신조와
그의 일당을 미워하게 됐다. 실미도 부대원들의 숫자도 김신조 일당의 숫자와 똑같은 31명이다.
부대를 만들 때 ‘똑같이 그대로 복수 한다!“하는 말도 안되는 졸렬한 이유로 같은 부대원 숫자로 부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왜 하필 31명이 넘어왔을까? 한 10여명 정도만 왔으면 좋잖아?
이미 캐스팅 된 안성기(교육대장 역), 설경구(3조장 인찬 역), 정재영(1조장 상필 역),
임원희(원희 역), 강성진(찬석 역)등을 제외한 27명의 훈련병과 기간병을 찾기 위해 죽어라 캐스팅에 매달렸다!!
먼저, 전에 작업하던 모든 파일을 정리했다.
큰 캐비닛 하나를 다 잡아먹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는데 여자배우와 아저씨,
할아버지 배우를 제외하고 1000장이 넘는 프로필을 정리했다.
나이가 문제였다. 실제 부대원들은 1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 있었다고는 하지만
특수부대임을 감안하면 연령 대는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특기가 운동으로 적은 사람들은 우선 점수를 주었고, 가능하면 기존의 이미지가 아닌 신인들을 위주로 정리해 나갔다.
1000장의 프로필 중 200명 정도만 뽑아 뚝섬에 있는 운동장으로 군복을 지참, 체력 테스트를 가졌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결론은 좋았다.
뭔지 모르게 군복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 뛰는 폼이 이상한 사람,
턱걸이 한 개도 못하는 사람 그리고 안 나온 사람...등등 50명으로 추릴 수 있었다...
50명은 연기 오디션을 거쳐 수영장에서 수영 테스트를 했고 마지막으로 감독님의 confirm과정을 거쳐
진정 영화 실미도의 주인공인 훈련병 31명이 탄생하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 이런 따위의 얼굴 뜨거워지는 말을 난 너무 싫어 하긴 하지만
정말로 실미도의 주인공은 훈련병들이었다.
그들은 캐스팅 된 2월말부터 섬 촬영이 시작되기 전인 4월말까지 한주도 빠지지 않고
서울액션 스쿨의 훈련을 받았고, 인천 알파잠수공사에서 주말마다 잠수훈련을 받았을뿐더러
3월에는 김신조 부대원의 역할과 그 부대원을 추격하는 국군들의 모습을 훌륭하게 해냈을 뿐 아니라
엄청나게 적은 액수의 계약금으로 2월부터 10월초까지 훈련포함 8개월간 머리를 기르지도 않고
군소리 한마디 없이 영화에 전념해 주었다.
물론 우리의 경구형, 재영이형, 원희형, 그리고 강신일 선배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긴 하지만...
형들은 스타라는 의식을 버리고(스타?) 훈련병들과 함께 훈련하며 땀 흘리고 같이 행동했다.
3월1일...우리는 오대산으로 했다.
김신조 일당들이 넘어온 해는 1968년 겨울...그들의 침투 장면이 우리의 크랭크 - 인 이다.
또 한번 김신조가 미워진다. 날씨 따뜻한 봄이나 가을에 넘어올 것이지...왜...하필 겨울일까...
우리나라에도 눈은 많이 온다. 무척 많이 온다. 오대산으로 가보면 안다. 눈이 무릎까지 찬다.
왜 산 짐승들이 어이없게 잡히는지 이해가 간다.
대관령 목장으로 갔다.
김신조 일당이 눈 쌓인 능선 위를 전속력장소는 이미 헌팅이 되어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능선인지
는 현장에서 고르기로 했다. 가본사람은 알겠지만 대관령 목장에는 능선이 수십 개가 있다...
지은이 하고 상열이!
예!!! (첫날이라 군기가 장난이 아니다)
저 능선 올라가 봐!
예!!!
눈이 없으면 뚱뚱한 나도 1분이면 올라간다. 근데...눈이 많잖아!
하나 올라가는데 15분은 걸리는 것 같다...씨발...이런 뒷동산이...이렇게 힘들다니...
몸무게를 자랑하듯 발자국을 팍팍 새기며 올라간다. 땀에 눈이 녹는 것이 보인다...
다 올라가서 무전기로 감독님을 찾는다.
헉..헉... 헉!! 감.. 독... 님! 헉... 헉... 헉...
어...거기 말고 이쪽으로 올라가 봐!
거...기...말...고...요....?
다시 다른 능선으로 올라간다. 다시 죽어라고 올라가면 또 딴 능선으로 이미 이동해 있다....
또 딴 능선으로...또 딴 능선으로.......내복은 왜 입고 왔는지...더워 죽는다...
그러길 여러 번...결국 감독님과 촬영기사님이 이쁜 능선을 하나 정하셨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건데...어쨌든 실미도 훈련병들에게 김신조 침투복을 입히고 여러 가지 침투 모습들을 찍는다...
이틀간의 첫 촬영이 끝나간다....
시작이 반일까? 그럼 앞으로 2회 촬영이면 끝나나? 누가 만든 말인지 절대 맞는 말 아니다.
앞으로 우리에겐 74회의 빡센 촬영이 남아있다...
3월1일과 5월1일 사이에 우린 섬 이외의 장면들을 찍어 나갔다.
김신조 일당과 국군들 간의 교전 장면, 오국장 방, 상필 사형장, 공군 장성방 등등...
얼마 안 되는 육지 촬영의 즐거움을 맘껏 느끼며 섬 촬영을 준비했다.
실미도는 서울서 한 시간 반 정도면 갈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우리에게는 마치 외국이라도
나가는 듯한 멀고도 먼 장소이다.
뭐 하나 두고 가면 다시는 찾아올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짐을 챙긴다.
집에 하나로 통신도 끊어 버리고, 한게임 맞고 회원 탈퇴하고 친구들과 술을 먹고,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여자친구와 이별의 키스를 하고...
5월 첫날...
무의도...고사를 지내고 무의도 숙소에 각자의 방을 잡은 우리는 무엇보다 훌빈한 숙소에 많은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이 잘 안나오고, 옆방 라디오 소리에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방음이 안 됨은 물론,
특실이라는 해수욕장 주변의 방들에는 '돈벌레'라 불리는 지네 비슷한 엽기적인 놈들이 항상 출몰하였는데...
이런 짜증나는 비쥬얼이!!! 바퀴벌레도 아니고 송충이도 아닌 것이 징그럽기는 장난 아닌 놈들....
자고 깨면 구르다 깔렸는지 돈벌레들의 시체들이 드글드글...으아...어머니...
주변에 있는 매점은 오후 5~6시 정도에는 어김없이 문을 닫았고, 주변유흥시설이라곤 몇 개의 회집과 조개구이 집,
콘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노래방이 전부이고...사실 노래 부를 여유도 없긴 했지만...
밤에 술을 먹을 곳도, 구할 곳도 없다는 박탈감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다행히 주로 출퇴근? 한 우리 기간병 배우들이 소주라도 사올라 치면 모두 옹기종기 모여앉아
술을 마시며 서울소식에 그리움의 눈물을 흘렸다.
꿈을 꿨다.
우린 실미도에서 열심히 촬영을 하고 있는데 전쟁이 났다! 한국전쟁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우리는 우연히 부상당해 피해온 국군 한명에게 소식을 듣는다.
서울이 함락 되었고, 부산정도만 남아있다고...
어찌할바 모르던 감독님은 최후의 최정예 부대원들이 바로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우리 훈련병들이다! 북에서도 전혀 실체를 모르고 있던 실미도 배우 훈련병들!!!
감독님은 그들에게 실제 무기를 주고 북으로 북파를 시킨다.
김정일 목을 따오라고!
잠을 깼다.
개꿈이다.
낮 촬영...생각보다 섬의 햇살은 강했다. 아침 저녁은 파카를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웠고,
낮에는 얼굴이 타는 수준을 넘어선 화상을 입는 강렬한 햇살....
우리의 섬 첫 촬영은 오대산 첫 촬영보다 더욱 긴장되고 힘들었다. 실질적인 크랭크 인이었다.
촬영 내용은...배로 훈련병들을 나르던 조중사가 배를 멈추고 훈련병들을
전원 바다로 빠트린다....섬까지 헤엄쳐 오라!!...그리곤 배를 폭파해 버린다.
자신은 조그마한 보트로 섬으로 이동!...내용은 간단한데...
일단 배위의 장면을 찍기 위해 '바지선'이란 놈을 불렀다.
바지선은 운동장 같이 평평한 배로 흔들림이 거의 없을 분더러 공간이 넓어 스텝들과 배우들이
대기하기 원활하고, 촬영장비 (크래인등) 을 사용하기 쉽고, 자체 발전기도 있어 조명 치기도
쉬운 만능 배이다. 마치 촬영을 위해 만든 배인 양...이 바지선에 우리 촬영할 배를 묶어놓고 촬영을 시작했다.
오늘의 슬레이트는 이시명 감독님이다!
우리 현장에는 많은 감독님들이 왔었는데...오대산 현장에 김상진 감독님,
섬 촬영에 이시명 감독님, 장규성 감독님, 류승완 감독님, 한지승 감독님 등...
위에 열거된 감독님들은 뭐 좋은 일 있다고 오는 것은 아니고 단지 슬레이트를 치기 위해 왔는데...
김상진 감독님이 입봉하고 나서 강감독님 영화 크랭크 인 때마다 와서 슬레이트를 친다는
미담 아닌 미담이 여러 감독들에게 전해지면서 많이들 오시는데...보기 좋은 아름다운 풍습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첫날 배 위의 드라마를 대충 마무리짓고, 둘째 날 드디어 폭파를 한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위해 조감독 2명이 물 속에 들어가고...
물 밖에서 안절부절못하시던 감독님은 에매한 무전기에 화풀이를 마구마구 하시는데...
근데...쓰다보니 간단한데...문제는 물이라는 놈이었다....일단 시간이 너무 걸렸다.
먼저 폭파할 배를 위치에 놓고...폭약을 설치하고...다른 배로 뇌관을 빼고...
훈련병들을 다른 배로 옮긴 다음 적당한 위치에 떨어트린다.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제자리를 지켜주면 좋은데...물쌀 땜시 자꾸 위치가 바뀐다.
감독님은 배가 무슨 자전거 인줄 아시는지 '조금 왼쪽으로!!' '너무 지나갔잖아!!!' ‘거기 고정해!!’
소리를 지르시고...난리에 난리를 거듭, 결국 배는 무사히 폭파되었고...
전원 아무 사고 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낮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5월의 날씨는 너무도 맑았고, 스텝들와 배우들의 호흡도 척척척!!
그러던 어느 날...체력 단련실 장면을 찍던 그 맑디맑은 날,
샌드백을 치던 경수가 촬영중간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네. 바로 지네가 글러브 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빨갛게 독이 아닌 약이 올라있던 지네는 경수가 손을 넣고 샌드백을 툭툭 치자
기분이 안 좋았던지 경수의 손가락을 꽉! 물어 버렸다.
지네에 관한 상식이 당연히 없던 우리는 혹시 독이라도 있지 않을까 손가락을 묶어 주었고,
누가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어쨌든 좀 찝찝했겠지만 입으로 피를 빨아내 주었다.
섬이 문제였다. 육지였다면 바로 응급실로 보냈겠지만 섬인 관계로 경수는 해변에서 배를 기다려야 했다.
독이 걱정된 우리는 병원에 전화해서 ‘우리나라 지네에는 독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경
수를 안심시켜 주었고, 경수도 배를 기다리다 아픔이 가셨는지 덤덤한 표정으로 배를 기다렸다.
...이 사건 이후 경수에게 돌아온 것은 지네를 물린 후유증으로 튼튼해진 허리와 ‘지네’라는 별명이었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진행되는 섬의 밤 촬영은 생각보다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아무런 포장된 도로가 없는 무인도인지라 조명 크래인이 들어올 길이 없었다.
해변까지 배를 타고 온다 쳐도 산 위까지 올릴 방법이 없었다.
나는 크래인을 분해해서 조금씩 여러 명이 나눠서 들고 산 위로 올린 다음 산 위에서 조립을 하자는
좋은 아이디어를 냈지만 바로 무시당했고, 현실적이고도 무모한 헬기를 이용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헬기로 조명 크래인을?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도 그런 헬기가 있었다.!!
결혼날짜보다도 더욱 까다롭게 이 조건 저 조건을 따지다 힘겹게 간택된 날에 헬기가 떴는데 그 헬기의 사이즈란!!!
항상 거대하게만 느껴지던 조명 크래인이 미니카 같이 보일 정도로 헬기의 사이즈는 장난이 아니었다.
상상이 안 된다면 플래툰의 앞부분에 나오는 버스가 들어가는 헬기를 떠올리면 된다.
뻥인지 아닌지 제작실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헬기라고 자랑을 한다.
무사히 도착한 크래인 위에 조명기가 세팅되고 우리는 기나긴 밤 촬영에 돌입한다...
밤 촬영은 항상 다음 순서대로 진행된다.
1. 점심을 먹고 3시 정도에 현장에 집합한다.
2. 배우들은 의상을 입고 저녁 먹기 전까지 조감독들과 리허설을 진행한다.
3. 감독님이 도착한다.
4. 긴장한다.
5. 해변에 파라솔을 깔고 감독님은 콘티를 정리하신다.
6. 리허설이 끝나면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이 지켜보고 수정할 부분과 앵글에 대해 의논하신다.
7. 저녁을 먹는다.
8. 담배도 피고
9. 해가 지기 전에 화장실 큰 볼일을 끝낸다. 아니면...큰일난다....너무 무서워 갈 수 없다...
10. 대략 8시30분 정도 해가 지면 슛을 들어간다.
11. 안성기 선배님을 비롯 주로 촬영이 없는 배우들 위주로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고구마와 감자를 굽는다.
12. 화장실 가는 척 왔다 갔다 고구마와 감자를 먹는다.
서해라 그런지 유난히 해가 늦게 진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역시 일찍 도착한 배우들과 함께 리허설을 진행했는데
실로 많은 의견들이 오고 갔고(반상회 혹은 뻐꾸기라 불리우는), 많은 공부와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리허설을 진행하면 푸른 바다 저 멀리 감독님과 기사님들이 조그마한 배를 타고 5시경에 현장으로 오시는데
감독님은 오시자마자 꼭 파라솔을 피시고 올 콘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셨다.
감독님은 촬영 전에 ‘찍는 씬 들은 omit없이 다 쓰겠다!’라고 공언하셨는데
바꿔 말하면 안 쓸 씬 들은 찍지도 않겠다는 뜻으로 대단하고도 무모한 시도라 생각됐다.
무수히 많은 영화들에서 무수히 많은 씬들이 무의미하게 찍히고 편집된다.
‘찍고 나중에 빼지 뭐’라는 안일한 감독들의 안일한 생각에 스텝들은 분개해 왔고 절대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라 여겨 왔다.
여기에! 분연히 일어선 우리 감독님이 노 오미트(no omit)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콘티를 매일매일 빠짐없이 보면서 이 씬이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다면 왜?를 보고 계셨고,
혹시 이상하거나 걸리는 부분이 있는지를 체크하기 위해 읽고 또 읽으셨던 것이다.
우리는 결코 ‘어제 마신 술을 깨는 행위다’ 라던가 ‘졸고 있다’라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었다.
감독님의 표현을 빌리면 콘티를 보다가 잘 안 풀리면 해변을 걷곤 하셨다는데
꼭 똑같은 갈매기가 주변을 서성였다고 한다.
그놈 참...내 고민을 아는지...
왜? 잘 안풀려?
니가 뭘 안다고...저리 날라 가 임마!
콘티를 더 열심히 봐! 그럼 분명히 해답이 있을 거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영화 파워1위야!
난 갈매기 파워 1위다!
이 자식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거닐던 감독님은 매일 조금씩 수정된 콘티를 주셨고, 정말로 꼭 필요한 씬 만 찍는
알뜰하고도 살뜰한 촬영이 되었다.
실미도는 억울하고도 원통한 젊은이 50여명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실제로 촬영 중간 중간 그때의 물건들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피 묻은 칼이 발견 됐을 때 정말 소름이 끼쳤다.
당연히 귀신이 나올 거라 생각했고 많은 스텝들이 귀신을 봤음은 물론이다.
사례1. 의상팀이 밀린 빨래를 하기위해 숙소가 있는 옆 섬 무의도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실미도 막사 세트에서 잠을 잘 때 이다.
딱딱한 바닥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던 윤경이가 무심히 천정을 봤을 때
천정에 군복을 입고 둥둥 떠 있는 귀신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너무나도 슬픈 눈. 원래 귀신을 잘 본다는 그녀의 말과 평소 그녀의 행태를 봤을 때 믿을 확률 90%.
사례2. 세트를 지키기 위해 항상 제작부 남자2명이 실미도에 남아 숙식을 했는데
그날따라 식당에서 키우는 개가 자꾸 짖었다고 한다.
멍!.. 멍!... 멍!... 무인도라 사람이라곤 우리밖에 없는데...이상하게 생각된 그들은 무서워 나가지는 못하고
담배를 한대씩 태우고 다시 잠을 청한다. 근데...자꾸 침대가 흔들린다.
흔들지 좀 마! 조용히 말했으나 상대편은 묵묵부답,,,불을 켜보니 상대는 곤히 자고 있었고
담배한가치가 재떨이에 타고 있었다...그들이 담배를 피고 잠을 청한지 3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그 담배는 누가 핀 것을까...
평소 불조심 안하는 그들의 행태로 봤을 때 믿을 확률 40%
사례3. 무술팀장인 유상섭 팀장이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술을 한잔 먹어서 였을까? 잠은 안 오고 담배생각이 간절했다.
옆의 숙소 배우에게 하나 얻어 피겠다고 나선 유팀장. 어두운 안개 속에 누군가 자신을 찾는 소리를 듣는다.
그쪽으로 넋 나간 사람처럼 걷는다. 한참을 걷는데 이쪽이 아니라 반대쪽에서 부른다.
다시 반대쪽으로 걷는다. 걷는다. 걷는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숙소에서 한참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물 빠진 바다 갯벌 위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평소 정직한 성품으로 보아 믿을 확률 70%
...근데...담배가 그리도 급했을까?
사례4. 나의 이야기. 실미도 특실은 연출부가 쓰는 방이다.
말이 특실이지 크기나 상태가 특실은 아니다.
어쨌든 전날 무지하게 술을 먹고 11시쯤 깨서 화장실에 갔다. 오줌을 누고 나오려는데 누가 등을 잡았다.
눈을 뜰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등을 잡아끈다.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 넘어졌다...
화장실에서 너무 안 나와서 문을 열어본 연출부 경호는 나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했다.
넋 나간 사람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한참을 서 있다니 뭐에 끌리듯 뒤로 넘어가더라고...
그 방에서 잠을 잔 연출부들 거의 대부분이 가위에 눌렸다...
평소 곧은 성품과 바른 생활을 하던 나의 행태로 봐서 믿을 확률 100%.
밤 촬영 이후의 스케쥴은 다음과 같다.
1. 안주 조달을 위해 선발대가 먼저 섬을 빠져 나간다.
2. 촬영이 끝나면 감독님이 손수 오늘 술자리 멤버에게 통보를 한다.
3. 통보 받은 멤버는 헤엄쳐 섬에서 도망을 치든 술자리에 참석을 하던 선택을 해야 한다.
4. 피디 방으로 모인다.
5. 소주와 맥주를 따로, 또 같이 마신다.
6.마신다.
7.마신다.
8.마신다.
9.마신다.
10. 계속 마신다....
밤 촬영이 계속 되면서 술자리도 계속 되었는데...
감독님은 작년 한해에 마신 술의 양보다 5월1일부터 두 달간 더욱 많은 양을 드셨다고 한다.
그건...우리도 마찬가지였고 아마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워낙 강한 드라마가 계속 되었고, 밤샘이다 보니 술에 의존해 잠을 청할 수밖에 없으셨다 한다.
다행히 실미도의 공기와 바닷바람이 쉽게 술을 깨게 해주었고...처음에는 괴로워 빌빌대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술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중독 상태가 되었으니...요즘도 많은 배우들과 스텝들이 술을 찾아
좀비처럼 충무로 거리를 헤매고 있다 한다....10년쯤 후 서울역 앞에서 만나게 되지나 않으련지...원...
1차 안주로는 삼겹살과 닭도리탕, 조개구이가 번갈아 가며 올라왔고 2차 무대의 주인공은 단연 스팸이었다.
묘하게도 소주와도 어울리고, 맥주와도 어울리는 스팸...정말이지 매일 스팸을 먹었다. 매일... 스펨을...
어느날...헌팅가는 차안에서 “...요즘은 스팸메일이 문제죠?”라디오 방송이 나왔다 한다.
스팸메일? 우리같이 스팸을 매일 먹는 사람들이 있나보지?
밤 촬영이 끝나고 숙소로 정리해 넘어갈 때쯤이면 유난히 안개가 많이 피어오른다.
아직은 어슴프레한 새벽에 끼는 안개...
숙소로 넘어가려면 통행선을 타야 하는데, 조그마한 배에 약 20명에서 30명이 탈수 있다.
촬영장인 실미도에서 숙소가 있는 무의도 까지는 불과 배로 3분.
그날도 안개가 많이 낀 날이었는데, 정말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의 안개였다...
먼저 감독님과 기사님들, 배우들이 배에 올랐다. 배가 출발한다. 출발하자마자 배는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해변에 앉아 기다리는데 배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안개 속을 뚫고 드디어 배가 돌아온다...
근데...? 배가 좀 이상하다...
배에 사람들이 가득 차서 온 것이다...누군가? 감독님을 포함한 기사님들 이었다!!
안개 속을 헤매던 배는 제자리로 30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우리 - "어? 배에 누굴 태워 온 거지? 꽉 찼네...?"
배안에 있던 사람들 - "어? 누가 마중을 나왔나? 왠 사람들이...?"
날이 좀 밝아지고 안개가 걷히자 배는 다시 움직였고, 이번엔 3분 만에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말타 공화국.
그 이름만큼이나 낮선 말타 공화국은 이탈리아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쉽게 생각하면 한반도와 제주도 정도의 관계라고나 할까? 그러나 말타 공화국은 이탈리아 언어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유럽의 언어를 사용함은 물론, 듣기에도 이상한 말타 언어를 쓰는 등 어쨌든 복잡한 나라이다.
우리는 말타 공화국에 촬영을 갔다.
우리가 원하는 수중 전문 세트 MFS(지중해 필름 스튜디오)가 말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장면 중 바다로 침투를 시작한 실미도 훈련병들은 중간에 작전이 취소되어 돌아오게 된다.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그들은 위협사격에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뭐 그런 장면인데 문제는 밤 장면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비가 오는 바다라는 것이다... 굳이 무리하자면 실미도 앞 바다에서도 못 찍을 건 없다.
억지로 바다 위에 바지선을 띄어놓고 조명기와 비대를 설치하고 물탱크도 하나 띄우고...
전혀 불가능 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문제는 안전이다. 이 정도 장비를 올리려면 최소 수심 20m는 되야 하는데...
밤바다 수심 20m는 누구도 안전을 자신할 수치가 아니다.
우리는 말타를 택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안전을 위해.
그리고 영화의 질적 향상을 위해!!
말타의 스튜디오는 직접 보면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단하고 명료하다.
바다와 인접한 커다란 수조에는 파도를 일으킬 수 있는 기계장치와 바닷물을 그대로 끌어 올려 뿌릴 수 있는
비 타워 10여조, 그리고 기타 조명장비들과 불과 2m에 불과한 수심!
문제는 없었다. 마구 마구 신나게 찍어 나갔다.
우리는 평상시대로 촬영을 했다. 밤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나가 준비를 해 테스트를 거쳐 해만 지면
바로 촬영에 들어갔고, 단 한명의 노는 스텝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4일 예정된 스케쥴은 3일만에 쫑을 냈고 마지막 날 하루는 시내관광을 다니는 등
여유 있는 일정으로 말타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MFS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이상해 보였나 보다.
코리아 탑 엑터들이라고 들었는데 분장실이 아닌 밖에 세워 놓고 분장을 하고, 알아서 의상을 챙겨 입고...
조감독들이란 놈들은 물 속에 들어가 구명 튜브를 준비하고 있고,
비 오는 현장에 이리저리 비 맞으며 뛰어다니는 코리아 넘버원 디렉터의 모습이란...
어쨌든 말타는 끝났다. MFS 십장 마크의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만큼 포근했던 말타의 촬영은 끝났다.
우리는 비쥬얼 죽여주는 필름 몇 깡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라스트 생략.
어쨌든 촬영은 끝났다. 7개월이 넘게 진행되어 온 촬영은 끝났다.
전쟁 같던 촬영은 끝나고 너무나도 조용하게만 느껴지는 후반작업을 진행중이다.
모두의 정성이 들어간 한 커트 한 커트 다치지 않도록, 더욱 독보일수 있게 CG를 넣고,
소리를 넣고, 색을 만지고...
2달 후면 우리만의 실미도는 모두의 실미도가 될 것이다.
빨리 보여주고 싶다. 모두에게.
거친 러쉬 편집본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우리의 모습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우린 할 만큼 했고 더 뭐 어째볼 수 없을 만큼 했잖아.’ - 출정 전야 파티 중 인찬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