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leeariel
2003.02.05 12:54:27
인터넷이 익숙치 않은 세트장에서의 촬영으로 제작일지를 뒷전으로 미루어 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이란 습관적 동물입니다..... 계속 쓰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게시판을 봐도 영 글을 쓰는게 쉽지 않았군요..
1월20일 세트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었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쉬는 중입니다.
그렇게 구정을 좋지 않은 마음으로 보내버렸습니다.
모든 스탭들에게 따뜻하고 즐거운 구정을 선물하지 못한게 새삼 미안하고 안쓰럽습니다.
어쨌거나 내부적으로는 다음 촬영을 위해 준비중입니다.
과연 다음 촬영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요?
사실...촬영이 두렵습니다.
몸편한 세트장에서
춥고 고단한 밖으로 나가려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 눈앞이 깜깜.....
사실 그 추운 날씨에 촬영을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으흑....
죄의식에 빠져있습니다. 으흑..
이제 밖으로 나가면 따뜻한 난로와 음악이 합께했던 녹음기사님 뮤직박스도 사라질테고....
촬영기사님, 조명기사님의 안락한 C라인 모니터도 사라질테니...
도망가서 숨을곳도 모두 없어지겠군요..으흑...
(이런 얘기를 글로 쓰고보니...제가 왕땡땡이로 보이는군요......
.........모두.......... 사실입니다...으흑...)
세트장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촬영기사님과 함께였습니다.
"지연아 .. 운전 내가 하마.." 하시며 제차에 타시는 김기사님께...
"에잉...제 운전실력이 못 미더우신거죠!!!!" 라고 했다가
"그거 아닌데..." 하시며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는 김기사님을 보며 본전도 못 뽑았습니다... 으흑
새벽 3시 서울에 가까이 와서 김기사님 하시는 말씀..
제가 젤로 빨리 촬영장을 빠져나갈 것 같아 제 차에 타셨단 말씀....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 첫 영화를 할때 말야... 우연히 세트 부시는걸 보고 말았어...
며칠을 살다시피했던 세트가 몇 분사이에 싹 사라지는 걸 보니까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더라고..
그래서 그 다음부턴 세트장 마지막날이 되면 괜히 우울해진다...."
우움... 그 기분 알 것 같습니다.
뭐든 익숙해져 있다가 이별하는 기분...
익숙할땐 모르는데 새삼 없어질 때 알게되는 그 기분.. 그래서 아차...참 소중한 거였는데 싶은 기분...
그게 비단 세트 뿐이겠습니까
몇달을 지지고 볶고 지겨워 지겨워 하다가..막상 크랭크 업하고..이제 매일 볼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때...
개봉하고 영화 상영하는 걸 보며 뿌듯해 할때...
어쩌면 시원하고 어쩌면 섭섭하고..하는 그런 그 기분...
상실감에서 오는 짜릿한 클라이막스...
사실 다들 그런 기분에 영화하고 사람 만나며 사랑하고 이별하는게 아닐까...
뜬금없이 그런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탬이..
그러다가 말입니다.
몇년지나 다 잊고 또 새로운 일을 하다가
우연히 사진 한장 발견하고 그때를 생각하면..
괜하게 슬퍼지고 괜하게 마음이 뜨뜻해지는 그거 말입니다.... 그거 죽이지 않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