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되고 힘든...
leeariel
2002.12.20 22:37:26
황학동 촬영이 일단락 지어졌습니다.
중간중간 서울시내 도로를 헤집고 다니기도 했지만서도....
근 2달동안 마치 내 집인양 드나들었던 곳이었습니다.
황학동만 들어가면 조금씩 느려지는 촬영속도에...
7시면 문을 닫아버리는 주변 상가와 변변한 화장실 하나없는 열악한 촬영환경에...
이미 철거되어 높은 건물 하나없는 횅한 공터인지라 더더욱 추운 날씨에...
우린 모두 조금씩 더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척박하고 치열한 삶의 공간이라 촬영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곳이었습니다.
이제 오늘로서 촬영이 끝이노라...동네 아줌마 아저씨께 인사드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내에 이런 곳이 있었더라 추억이 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술마시고 훼방놓는 아저씨들도 그리 많지 않은 예상외로 조용한 동네이었고,
촬영 날짜가 지나면 지날수록 아줌마 아저씨가 우리들에게 익숙해져 오히려 더 협조적으로 도와주는 따뜻한 동네였습니다.
적어도 제 기억엔 그렇게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에요..." 라는 인사말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맺었습니다.
"이제 저희 없으면 속 시원하시겠어요.." 라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제 촬영팀 없으면 이 동네가 썰렁하겠어..... 우리도 섭섭하네.." 하시는 동네분들의 마음도 제게 전해졌습니다.
개똥이 주위에 즐비해 똥밟기 일쑤고
훤한 대낮에도 노상방뇨가 당연지사인 지저분하기 이루말할수 없는 이 동네에서 이제 떠나갑니다.
이제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촬영이 우리를 맞이하겠지요..
긴장을 늦출수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커피한잔을 타주시던 식당 아저씨 아줌마
낮이면 낮, 밤이면 밤마다 우리를 지켜주신 철거건달 아저씨들
매일 밤 윷놀이 도박을 하다가 싸움이 나도 우리가 "슛!" 하면 촬영한다고 소리 죽이시던 야바이 아저씨들
가방 뒤에 짊어지고 황학동 돌아다니면서 소리소리 지르시던 치매 할머니
항상 술에 취해 계셨던 딸이 방송작가인 21동 2층 할아버지
추운데 고생한다며 매번 옥상열쇠 빌려주시며 난로불 쬐게 해 주신 부동산 할머니
차빼달라고 전화하면 싫은 소리 안하시고 엉뚱한 곳에 차를 빼주셨던 공장 아저씨들
서울 시내 어디라도 야식을 해 주시겠노라 항상 좋은 얼굴로 우리를 대해 주셨던 식당 아줌마... 께 따뜻한 마음을 전합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라지만...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하더이다....
이제 곧 사라질 황학동이기에 그 추억은 더 가슴에 남을 듯 싶습니다.
다들 행복하시고 다들 열심히 사세요..저희도 열심히 영화찍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