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되어버린 정동진

jelsomina 2001.07.01 01:48:46
어느날인가 "은수" 집 촬영분량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술한잔이 하고 싶었습니다
12시가 한참 넘어서야 촬영이 끝났고 .. 비가 추적추적 왔거든요

다음날. 그 다음날 ..촬영이 없었어요
오랫만에 촬영중에 가져보는 휴식이었기 때문에 ...
아마 그날밤 모든 스텝이 술을 마신것 같습니다.

근데 아무도 같이 술한잔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울하기도 하고 화도 조금 나고 ...
다들 피곤했겠죠 ..
술보다는 그냥 방에 들어가서 ..술먹다 피곤하면 누워자고 싶어서..나도 사실 그랬으니까

근데 방에 들어가기가 싫은겁니다
그냥 그렇게 방에 들어가서 그러기가 싫었습니다
혼자 생각을 하다가 .. 그래도 낡은차가 한대 있으니까 ...
7번국도를 타고 올라갔지요

헌팅다닐때 여러번 다니던 그 길을 따라 밤길을 가는데 정말 차 한대가 없더군요
군데 군데 바닷가 초소들이 보이고
낡은 항구와 등대와 어촌을 지나고 ..
시커멓게 문을 닫은채 늘어선 횟집들...

천천히 1시간 가량을 올라가니 정동진이 나오더군요
어떤길을 택했는지 언덕으로 한참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가며 저 아래 정동진이 보이는데
정말 그런걸 보고 불야성이라고 하나 보다 싶었습니다
부산 영화제 때 갔던 광한(안?) 리 바닷가 뒷편 술집들 만큼 ..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

예전에 친구들과 정동진에 들렀을때 ..변변한 가게 하나 없어
동네 구석 작은 민박집에 들러 라면을 끓여달라고 부탁했던 그런곳이
아니더군요.

다들 그렇듯이 저도 정동진에서의 추억이 몇개 있었는데..

기억이 닿는곳까지만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어딜가도 그때 그곳이라고생각되지 않길래..

산 언덕 위에 무슨 공원처럼 만들어 놓은 곳이 있어 가봤죠
산위에 배를 올려놓은것 같은 괴상한 건물이 두채 서 있고 ..
작은 공원이 하나 만들어져 있더군요
전망은 그런데로 괜찮은..

비도 오고 안개도 끼인 까만 바다를 보고 있었죠
...멀리 오징어 잡는 배들만 수평선을 밝히며 먼 바다 위에 늘어서 있고...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냐고 하길래 ..정동진 위에 무슨 공원이라고 했더니
혼자 갔냐고
혼자 왔다고 ..
...
이런 저런 얘기 때문에 잠시 혼자인걸 잊고는 ..
전화가 끊어지고 ...

..오징어배만 좀 지켜 보다가 ..돌아왔습니다
오징어 배 진짜 많이 떠있더군요 ..

으스스한 밤 바다 멀리...
마치 가로등처럼 환하게 빛나는 오징어배들을 보고 있으니까
꼭 도시 어딘가에 있는것 같더군요.

그리고 그 다음 이틀동안 방구석에 쳐박혀서 내내 편집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