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10편
짧은 기간과 빡빡한 일정으로 전주에 다녀올 관객들을 위해 FILM 2.0이 확실한 영화를 추천한다. 피곤해도 졸지 않을 수 있는 영화이자 영화제가 아니면 다시 못 볼 영화 10편이다.
제 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디지털과 대안영화를 영화제의 얼굴로 내세웠다. 신선하고 도전적인 얼굴이지만 그만큼 낯설다. 도대체 어떤 영화를 봐야 대안이 되는 영화의 꼴을 실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영화 고르기의 확실한 방법도 있다. 새로운 대안영화 뿐만 아니라 영화 역사를 통해 이미 확실한 대안으로 인정 받았던 고금의 걸작들도 올해 전주에서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화제가 열리면 우선 이 과거의 대안 영화부터 확실히 챙겨보도록 하자.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전주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모두 155편. 신선하면서도 대중적인 ‘시네마 스케이프’를 비롯한 ‘메인 프로그램’과 애니메이션, 디지털 영화, 전주영화제가 선정한 거장들의 영화를 상영하는 ‘섹션 2000’으로 크게 나뉜다. 한국 영화 회고전은 <피아골> <마부> 등 윗 세대의 추억으로만 전해지던 황금기 한국 영화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B급 영화의 제왕’ 로저 코먼의 영화들과 7시간 18분 짜리 <사탄 탱고>를 상영하는 ‘미드나잇 스페셜’은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영화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행사다. 변사의 해설과 함께 영화를 보던 무성 영화 시대로 당신을 안내할 것이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한다. 영화는 넘치고 시간은 모자란다. 언론에서 소개하는 영화들의 목록은 모두 비슷비슷해서 입장권을 구하기도 힘이 든다. 사람들 틈에 떠밀려 다니지 않으면서도 전주까지 내려온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는 없을까.
짧은 기간과 빡빡한 일정으로 전주에 다녀올 관객들을 위해 FILM2.0이 확실한 영화를 추천한다. 피곤해도 졸지 않을 수 있는 영화이자 영화제가 아니면 다시 못 볼 영화 10편이다.
1
로망스 Romance
프랑스/1999/95분/35mm
감독 : 카트린느 브레이야
주연 : 카롤린 뒤시, 로코 씨프레디
포르노 영화 속의 정사는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혹은 뒤엉킨 남녀의 알몸에서 환상과 선입견을 제거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로망스>는 그렇게 꿈을 벗겨내고 남은 섹스의 찌꺼기와도 같은 영화다. 출발도 단순하다. 조각처럼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남자와 우상을 섬기듯이 그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문제는 단 하나. 남자가 여자를 만지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연인에게 지친 마리가 다른 남자들을 찾아 나서면서 두 사람 사이의, 그리고 마리와 다른 남자들 사이의 문제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로망스>는 <나인 하프 위크> 처럼 달콤하지도 <원초적 본능> 처럼 치명적이지도 않다. “사랑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말하는 감독 카트린느 브레이야는 욕망을 사랑으로 포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로망스>는 즐거운 동시에 수치스럽고 때로 절망적인 영화일 수 있다. 매일매일의 성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가장 솔직했을 때 가장 복잡해지는 것이다.
2
홀리 스모크 Holy Smoke
오스트레일리아, 미국/1999/114분/35mm/컬러
감독 : 제인 캠피온
주연 : 케이트 윈슬렛, 하비 카이텔
인도에 간 호주 소녀 루스는 종교 집단에서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한다. 그러나 루스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고 판단한 가족들은 그녀를 사막의 외딴 오두막에 가두고 영혼치료사 피제이에게 치료를 맡긴다. 루스의 영혼을 치료하려는 피제이와 피제이를 설득하려는 루스. 때로는 말로 때로는 행동으로 다투는 두 사람의 열기와 오두막을 찾아드는 외부 사람들의 수다로 단조로운 사막이 끓어 넘치기 시작할 때, 감성적이고 저돌적인 루스는 자신의 성(性)을 이용해 피제이를 굴복시켜 버린다.
제인 캠피온의 <홀리 스모크>는 소녀의 혼란스러운 성장을 다룬다는 점에서 <내 책상 위의 천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나이 든 남자 위에 군림하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로리타>를 닮았다. 그러나 <홀리 스모크>는 그 어떤 영화와도 다르다. 신비로우면서도 냉정하고 혼란 속에서도 길을 찾는다. 그러면서도 캠피온의 초기작 <스위티>와 같은 냉소적인 유머가 넘친다. 이 영화의 압권은 남성적인 하비 카이틀이 연기하는 피제이가 루스의 여성적인 매력 앞에 굴복하는 과정 묘사에 있다. 영화에는 얼굴과 몸이 울퉁불퉁한 하비 케이텔이 빨간 원피스를 입고 예수처럼 사막을 헤매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인 캠피온이 아니라면 누가 그에게 그런 연기를 시키겠는가.
3
요나와 릴라 Jonas and Lila, Till Tomorrow Jonas et Lila, a Demain
프랑스-스위스/1999/120분/35mm
감독 : 알랭 타네
주연 : 제롬 로바르, 아이사 마이가
이미 고전이 된 1976년 작품 <2000년에 스물 다섯 살이 되는 요나>에는 요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으면서도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여덟 명의 인생을 촘촘하게 엮는 이 영화에서 요나는 일종의 상징이다. 영화 속에서 아직 태아인 요나는 등장 인물들의 연대와 희망으로 잉태된 존재, 2000년이 되면 “도시의 야만인”으로 저항하면서 살아가게 될 이들의 미래다. 그리고 드디어 2000년. <2000년에…>의 감독 알랭 타네는 생일 선물과도 같은 영화 <요나와 릴라>를 완성했다.
<요나와 릴라>는 40개가 넘는 시퀀스와 토막극, 노래로 분할되어 영화의 관습을 깨뜨리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전편의 미덕을 물려받는다. 막 영화학교를 마치고 아프리카 여성 릴라와 결혼한 요나.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전직 영화 감독인 안지아노, 여배우 이리나 등의 삶이 덧입혀진다. 전편의 인물들이 20세기 자본주의의 종말에 서 있다면, 이들은 21세기의 초입을 살아간다. 그러나 <요나와 릴라>는 25년 세월 동안 변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요나의 25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한 번 <2000년에…>를 보았다는 어느 관객의 말과도 통하는 결론이다.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변하지 않았는지 깨닫고 놀랐다”.
<요나와 릴라>는 전편 <2000년에 스물 다섯 살이 되는 요나>와 함께 상영된다.
4
오디션 Audition
일본/1999/115분/35mm/컬러
감독 : 미이케 다카시
주연 : 이시바시 료, 시이나 에이히
7년 전에 아내와 사별하고 아들과 단 둘이 살아온 남자가 사랑에 빠졌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여자에게 전화를 거는 남자 아오야마. 그는 다소곳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사미 옆에 자루 하나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자루 속에 발목이 잘린 남자가 들어 있다는 것도, 자신이 곧 그 남자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원작인 <오디션>은 중년 남자의 나른한 일상에서 출발해 한 순간에 광기로 돌입하는 영화다. 재혼할 상대를 물색하기 위해 여배우 오디션에서 참석한 아오야마가 아사미를 발견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영화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그러나 아오야마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사미가 알게 되면서 영화는 신체를 절단하는 피투성이 고문극으로 돌변한다. 아사미의 광기는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군더더기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다.
독창적인 야쿠자 영화로 경력을 쌓아온 감독 미이케 다카시는 충동과 감정이 부딪치며 터지는 영화의 쾌락을 아는 사람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섬세한 세부묘사 대신 곧바로 파고 들어 한번에 핏줄기를 터뜨리는 정공법을 택했다. 아사미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말처럼, <오디션>은 “죽음과 친숙한” 영화다.
5
남국재견 Goodbye South, Goodbye
대만/1996/124분/35mm
감독 : 후 샤오시엔
주연 : 샹 시, 애니 시즈카
세 개의 중국. 본토를 떠나 홍콩과 대만으로 분열된 중국인들에게 현대사는 역사책 속의 그 무엇이 아니다. 그들에게 역사는 두고 온 고향과 잊을 수 없는 사람들로 채워진 일기와도 같다. 후 샤오시엔이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그런 방식이다. 더 이상 우울할 수 없는 대만의 정서를 담은 <비정성시>에서 반정부적 지식인들이 받은 박해를 사랑 이야기 속에 투영시키는 <호남호녀>에 이르기까지 그는 부서진 사람들의 삶을 역사로 확장 시켜 왔다. 현대 대만의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코미디 <남국재견>에서도 남쪽 섬 대만을 바라보는 그의 성찰은 여전하다.
중국을 알지 못하는 카오와 친구들은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범죄자로 살아 간다. 중국을 그리워하는 그 아버지들의 세대는 대만을 거부하지만 과거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다. 서로 단절된 두 세대의 에피소드를 연결시키는 것은 짓눌린 과거의 악몽이다. 그러므로 <남국재견>의 유머가 불러내는 웃음에는 어쩔 수 없는 비애가 떠나지 않는다.
후 샤오시엔이 “나의 두번째 데뷔작”이라고 부르는 <남국재견>은 과거의 회고보다 현재에 대한 질문이 더 절실한 영화다. 대만의 변화는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중국인들은 이 변화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을까 아니면 탄식할 뿐일까.
6
세컨드 서클 The Second Circle
러시아/1990/95분/35mm/흑백, 모노
감독 : 알렉산더 소쿠로프
주연 : 표트르 알렉산드로프, 라데즈다 로드노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정신은 서방 세계의 시선이 접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별다른 사건 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세컨드 서클>의 특별한 아름다움도 그러하다. 이것은 <세컨드 서클>이 난해하다거나 지루하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이 영화의 긴 호흡은 시간과 공간의 여백을 만든다. 그 여백을 통해 관객은 영화를 끝없이 해석하고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통렬하게 고찰하는 <세컨드 서클>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를 볼 때와는 다른 호흡과 다른 시선을 필요로 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은 아들이 고향 집으로 돌아온다. 방 안에 있는 것은 침대 하나와 아버지의 시신 뿐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장례절차를 진행하고 계단을 따라 관이 내려간다. 뒤에는 텅 빈 방만이 남는다. 이것이 95분의 전부다.
<세컨드 서클>은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시간에 낮잠을 자는 편이 나을 그런 영화다. 그러나 영화제가 아니라면 무겁게 가라앉은 이 아름다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7
무비 카메라를 든 사람 The Man with a Movie Camera
러시아/1929/80분/16mm
감독 : 지가 베르토프
‘영화에 관한 영화’라면 영화를 향한 찬가나 영화 만드는 이들의 고뇌를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지가 베르토프의 <무비 카메라를 든 사람>은 정반대의 목적을 향해 간다.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들이 거짓과 기만에 차 있다는 것. 소비에트 공화국의 하루를 담아내는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를 찍고 있는 카메라 맨의 존재를 끊임없이 노출시키면서 그런 사실을 환기시킨다. 결국 영화도 카메라를 든 누군가가 만드는 것이다.
<무비 카메라를 든 사람>을 통한 베르토프 감독의 발언은 다큐멘터리를 찍는 많은 감독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은 곧 찍어야 할 대상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선택은 가치 판단을 내포한다. 베르토프는 관객의 지성을 자극함으로써 이 모순을 극복한다. 현실 자체만을 담을 수 없다면 판단은 관객이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70년 전에 이루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토프의 <무비 카메라를 든 사람>은 “사진도 거짓말을 한다”는 브레히트의 폭로를 영화로 증명하는 작품이다. 또한 이 영화는 역사상 가장 다큐멘터리의 이상에 근접한 영화로 꼽힌다.
8
기관총 엄마 Bloody Mama
미국/1970/90분/35mm
감독 : 로저 코먼
주연 : 셸리 윈터스, 로버트 드 니로
부모들은 언제나 따분한 교훈만 늘어 놓거나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타락해 버린 기성 세대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 누구와도 다른 방법으로 아들을 사랑해 주는 엄마가 있다. 가장 손쉽게 가르칠 수 있는 근친상간에서 시작해 강간과 마약, 유괴, 살인에 이르는 범죄의 모든 것을 손수 교육하는 <기관총 엄마>. 더 강렬한 영어 제목에 따르면, <피비린내 나는 엄마(Bloody Mama)>다.
<기관총 엄마>는 1930년대의 대공황 시대, 무자비한 범죄 행각으로 악명을 떨친 케이트 마 바커와 네 아들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케이트 마를 연기한 셸리 윈터스는 “10만 달러만 더 투자했으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같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관총 엄마>는 로저 코먼의 영화다. 그는 심야극장을 휩쓴 <공포의 구멍가게>를 단 이틀 만에 만들었고, <죠스>를 <식인어 피라냐>로 <쥬라기 공원>을 <카르노사우루스2>로 패러디 해 비웃는 저예산 영화의 거장이다. <기관총 엄마> 역시 저 예산 영화의 활기와 즉흥적인 생명력을 그대로 가지는 영화. 아편에 취한 젊은 시절 로버트 드 니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환각특급>, <흡혈식물 대소동>과 함께 ‘로저 코먼의 밤’에 상영된다.
9
살인마 A Devilish Homicide
한국/1965/92분/35mm/컬러
감독 : 이용민
출연 : 도금봉, 이예춘
어린 시절, 핏기 없이 푸른 얼굴로 나타나던 소복의 원혼들이 있었다. 아이들을 갈가리 찢어놓는 <나이트 메어>의 프레디보다, 창백한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할로윈>의 살인마 마이클보다 무서웠던 그 소박한 귀신들. 억울하게 살해된 며느리의 복수담인 <살인마>는 이불 속에 숨어 들어 고개만 내밀곤 하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한국의 공포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살인마>도 여자들 사이의 관계와 질투가 중심이다. 시어머니는 아이를 못 낳아도 남편에게 사랑 받는 며느리를 질투하던 끝에 식모와 짜고 며느리에게 누명을 씌어 살해한다. 한 맺힌 며느리의 원혼은 두 가지 방법으로 되돌아 온다. 자신이 죽을 때 흘린 피를 먹은 고양이와 핏빛으로 채색된 초상화를 통해. 그리고 그 초상화에 깃든 며느리의 혼령은 서서히 집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불교의 힘으로 혼령을 퇴치한다는 결말만 제외한다면 <살인마>는 여전히 섬뜩한 영화다. 복도를 미끄러져 가는 며느리의 혼과 남편의 귀에 속삭이는 원혼의 목소리는 죽은 자의 한이 전하는 서늘한 냉기를 품고 있다. 이 영화에 비한다면 <혼팅>이나 <헌티드 힐>의 특수효과는 그저 낭비일 뿐이다.
10
괴인 서커스단의 비밀 The Unknown
미국/1927/65분/흑백/무성
감독 : 토드 브라우닝
주연 : 론 채니, 조안 크로포드
서커스단에서 칼을 던지는 알론조는 팔이 없는 남자다. 어려서 부터 자신을 만지려 드는 남자들을 두려워했던 서커스 단장의 딸 내넌은 팔이 없는 알론조를 편안히 여기며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범죄를 저지른 후 팔을 코르셋 밑에 숨기고 있는 것 뿐이다. 내넌과 결혼하면 그 비밀이 들통날 것이 뻔하므로 알론조는 자신의 팔을 아예 잘라 버리려는 유혹에 빠진다.
<괴인 서커스단의 비밀>은 기형 인간들의 복수극 <프릭스>로 정상과 비정상, 육체적 기형과 정신적 불구에 관해 질문했던 감독 토드 브라우닝의 작품이다. 브라우닝은 흑백의 양식적인 화면 속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을 끌어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감독. 인간의 육체에 대한 혐오와 신체 절단, 협박으로 가득찬 이 영화도 끝으로 향할수록 더욱 기괴한 구조에 빠져 든다. 농아였던 부모와 자란 탓에 완벽한 마임 연기를 구사하는 론 채니의 연기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내넌에 대한 알론조의 강박관념을 몸짓과 표정만으로 생생하게 표현한다. 발로 담배를 피우는 그의 모습은 아직도 칭송 받는 명연기다. 생존해 있는 유일한 변사 신출 씨의 해설과 함께 상영된다.
2000.04.11 / 김현정
TOP >>
가끔 들려보시면 자기에게 꼭 필요한 어떤것을 건질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