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단 하루도 축소할 수 없습니다...

cinema 2003.06.18 03:51:27
먼저, 한 말씀 드리자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지난 대선 때 주요 공약 중 하나였던 스크린쿼터 사수 약속을 지켜라!!!
그저 약속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큰 위기상황도 아닌 현시점에서 미국측의 주장에 밀려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은 천인공노할 대죄입니다!!!

도대체 스크린쿼터가 뭐길래...?
스크린쿼터는 각 극장이 영화를 상영함에 있어 한국영화를 1년의 40%, 146일 이상 상영해야 한다는 제도입니다.
그나마도 1996년 7월 시행령에 의해 경감일수 40일이 인정되어 실제적인 상영일수는 106일(29%) 불과합니다.

이는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한 임계점이자 카타스트로피 지점입니다.
술을 마셔도 어느 순간 갑자기 취하고, 펀치를 허용하던 복서도 어느 순간 다운되듯이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106일은 그야말로 하루도 양보할 수 없는 한국영화의 임계점입니다.
만약 하루라도 축소하게 되면, 머지않아 한국영화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마 그럴까 하시겠지만,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는 1977년 자국의 영화가 미국영화의 점유율을 앞지르자 미국영화수출협회의 요구에 따라 자국의 쿼터제를 축소했던 브라질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한 때 그렇게 잘 나가던 브라질 영화는 스크린쿼터를 축소함으로써 사실상 미국에 배급시장을 넘겨주어 이제 세계 영화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한 때 아시아 시장을 제패하던 홍콩영화가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홍콩은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이처럼 한 나라의 영화가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아시아시장을 제패했던 홍콩영화도 그렇게 빨리 갔는데, 아직 국내에서만 맴돌고 있는 한국영화는 오죽 하겠습니까?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2002년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48%를 상회합니다.
이를 두고 이제는 스크린쿼터제도를 축소해도 되지 않느냐는 안이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최근 1,2년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입니다.
결정적으로 국내 배급 1위라는 시네마서비스의 점유율도 대표적인 헐리우드 배급사인 콜럼비아, 브에나비스타, 20세기 폭스사의 점유율을 합친 27%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쿼터제가 축소/폐지되는 상황속에서, 이들 헐리우드 배급사들이 손을 잡으면, 예전의 관행(쓰레기들을 끼워 팔던 블락부킹;block booking)이 되살아나고도 남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지구상 어디에도, 자금과 물량을 무기로 하는 배급시장에서 헐리우드 배급사들을 앞설 배급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 시네마서비스와 CJ가 선전을 하고 있다고 해도 스크린쿼터가 폐지된 상황속에서는 임계점을 넘겨 끓기 시작하는 물처럼 크게 동요하여 결국 국내 배급시장에서 증발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진정 스크린쿼터의 수혜 대상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영화인들? 물론 수혜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스크린쿼터의 수혜를 입는 사람은 바로 관객인 당신입니다.
스크린쿼터가 사라진 후의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거대자본과 안정적인 물량확보를 무기로 배급시장을 장악한 헐리우드는 예전보다 휠씬 강력한 블락부킹(끼워팔기) 전략을 구사하게 됩니다.
극장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흥행영화와 끼워 파는 쓰레기 같은 헐리우드 영화를 상영해야 합니다.
그나마 잘 나간다는 한국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이 눈치 저 눈치 다 봐야 하는 극장주들에게 잘 나갈 것 같지 않는 한국영화는 쳐다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스크린쿼터가 당장 축소/폐지되었을 경우, 가장 큰 피햬를 입는 것은 예술, 독립영화들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관객들은 더 이상 극장에서 "오아시스", "생활의 발견", "해안선", "동승"과 같은 영화를 볼 수가 없습니다. 이들 영화들은 헐리우드 영화에 치이고 트랜디를 따라가는 주류 한국영화에 치여 상영할 기회 자체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관객들은 1년에 100편이나 즐기던 한국영화를 1년에 3편이라도 보게 되면 다행인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스크린쿼터를 사수하는 것이 다만 영화인의 밥그릇 지키기를 위한 집단이기주의가 아닌 관객들의 다양한 볼거리를 보장하려는 제도적 안정장치라는 사실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세계 영화를 제패하고 있는 미국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폐지하기 위해 그토록 집요하면서도 끈질기게 작업을 해온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그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결코 우리나라를 위하거나 한국민을 위해서는 아닐 게라는 대답에 이르게 됩니다.

한국영화는 결코 스크린쿼터라는 장막아래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스크린쿼터제는 극장에 상영될 기회를 보장하는 제도이지 극장에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제도는 아닙니다.
현재로서도 헐리우드 영화들은 얼마든지 필요한 수만큼의 개봉관에서 개봉을 할 수 있고, 재미없는 한국영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관객들에게 철저히 외면받고 있습니다.
결코 스크린쿼터제도 아래라고 해서 관객이 더 들거나 덜 들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영화가 오늘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물론 관객들이 우리 영화를 사랑해 주었음에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좋은 영화를 만드려는 영화인들의 피 말리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오히려 스크린쿼터제도는 좋은 영화를 만드려는 영화인들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채찍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헐리우드라는 괴물과 공정하게 싸우기 위해서는 지금의 스크린쿼터만이 유일한 방편입니다.

스크린쿼터 단 하루도 축소할 수 없습니다!!!

추신 : 경제관료들에게 묻는다. 현재도 우리나라 경제는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국가경제지표가 이리저리 널뛰는 한심한 지경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국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인 무역구조를 이룰 생각은 하지 못하고 한미투자협정을 통해 심각한 수준의 미국의존도를 가중시키려는 저의는 무엇인가?
그리고 세계에서 자국의 이익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나라라는 미국이 과연 한미투자협정을 통해 빼앗아 가는 게 많겠는가 주는 게 많겠는가를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는가?
무엇보다도 우리의 문화와 영혼을 다만 몇 푼의 밥그릇과 맞바꾸려는 그대들의 발상은 발칙하다는 어휘말고는 선택할 어휘가 없다. 참,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