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hyulran 2004.06.23 11:25:28
지난 주 수요일이었다.

포천에 있는 한 사원-절이나 사찰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사원이라고 표현하면 어딘가 모르게 이미지의 무게중심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분명한 곳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받는다. 앙코르와트도 사찰이나 절이 아니라 사원이라고 표현하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에서 나는 대웅전 뜰 앞의 많은 나무들 가운데 유일하게 존재하는 한그루의 앵두나무를 살리려는 스님의 의지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녀석보다 훨씬 더 오래된 벚나무와 오동나무의 일부를 잘라내야만 했다.


무지막지한 톱으로 박을 타듯이 톱질을 하면서 나는 분노한 목신의 저주같은 것을 상상하며 과연 집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하는 작은 두려움에, 이따금 배짱 좋은 포즈와 표정으로 무심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스님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며 꼭 이걸 잘라야 하냐고 무의미한 질문을 반복했지만 결과는, 가끔씩 여자들의 찌찌를 만져줘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스님의 초지일관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말끝에 그 스님은 덧붙이기를,


"그래야 이 다음에 자네 아들이 와서 잘 익은 앵두를 따 먹을 수 있지 않겠어?"


엉뚱하게도 악역을 맡게 된 나는 잘린 나무 가지들을 해우소 앞 안쪽의 숲속으로 끌어다 놓으면서 왠지 그것들이 월남전에서 정글에 숨어있는 베트콩같이 여겨져 마음 한켠이 형용하기가 힘들었다.


하여간에, 별로 유쾌하지 않은 잡다한 노동을 끝내고나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10시가 넘어서 몇명의 사람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벤처기업가, 부도난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그와 동행한 묘령의 여인, 그리고 지하철에서 스크린 도어를 장식하고 있는 로또 복권 광고물속의 한 연극배우. 모두들 근래 들어 인사를 나눈 안면이 있는 자들이었다.


어찌됐거나 3살무렵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술을 마실 줄 모르는 나는 홀짝 거리며 대작없이 차를 마셨고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스님과 함께 17년산 발렌타인을 음미했다. 18살 소녀를 경험하는 자들과의 찻자리에서 나는 스님이 왜 그런 술을 마시냐고 따질 생각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 스님의 언행은 조심스럽게 관찰한 후 한마디 하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흐름'에서나 비로소 이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위선과는 거리가 먼 아주 솔직 담백한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은 얘기의 핵심은 그게 아니라 그날의 홍일점이었던 어떤 여자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지지난주 일요일에 잠깐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한 것이 전부였는데 어딘가 모르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미혼의 연상녀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지만 대화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내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그녀에게 나는 서서히 끌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알고 있던 사람을 만난듯한 느낌이 들면서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 나머지는 다음에,



* 고인이 되신 김 선일씨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