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 아줌마

tudery 2004.05.30 00:53:34
얼마전에 슈퍼간 김에 사서 냉동실에 쳐박아 놨던 삼겹살을 꺼냈다.
땡땡 얼어붙어서 두시간이나 꺼내 놨는데도 도통 해동이 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과도로 고기위에 흠집을 내놓고 과도 등을 뻰찌로 두들겨 팼다. 한참을 그렇게 낑낑대는데... 삐끗하더니 하마터면 손꾸락을 잘라 먹을 뻔했다.
놀란 가슴 진정시키고 나서 벌건 괴기 육수(?)를 내려다 보자니 먹을 생각이 싹 달아난다.

고향집 동네 초입에 오래된 정육점이 하나 있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도 있고 원체 동네가 좁아놔서 원주민(?)들은 왠만하면 정육점을 하지 않는다.
뭐, 백정이라는 오래된 의식이 좀 남아 있는 듯하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정육점을 하는 사람들은 백에 아흔아홉은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우리 동네의 젊은 부부도 그랬다. 그네들이 우리동네로 들어온것이 내가 국민학교 3학년땐가 그런거 같다.
어머니는 처음 개업한 그 집을 다녀오시더니 덤으로 엊어준 사태에 넘어가셨는지 '젊은 사람들이 전라도(!)사람 답지 않게 참 싹싹하고 좋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후로 우리집은 그 정육점 단골이 되었고 유달리 김치찌개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인지라 막내인 나는 종종 그 집으로 돼지고기 한근을 사러 심부름을 다니곤 했다.

어떤 때는 키가 180은 넘어보이는(이건 확실하지가 않다. 그 때는 내가 어려서 그렇게 더 커 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덩치가 상당히 컸었다는 기억은 뚜렷하다) 아저씨가 썩썩 야스리에 칼을 갈다가 웃으며 맞아 주기도 했고. 종종 그 아저씨에게는 너무나 아까워 보이는(ㅡ.ㅡ;;) 자그마하고 얼굴이 하얀 아주머니가 애기를 등에 업은채로 600그램에 두덩어리를 더 얹어 주시기도 했다.
두 부부가 워낙 친절하기도 했고 다른 정육점은 500미터는 더 내려가야 하는 거리에 있어서 그집은 꽤나 번창했고 처음에는 허름하던 정육점도 차차 스탠레스 장식장이 번쩍 거리는 갈끔하고 번듯한 가게로 바껴 갔다.

내가 중학교를 입학하고 나서였던 거 같다. 개업하고 나서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던 정육점이 내리 삼일을 문을 닫았다. 나는 목하 한창을 연애질 중이던 때라 그 집앞을 매번 지나치면서 그런 기미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이고. 징허게애. 그 무사, 아래 정육점허는 집 있지 안수까. 문 열어정 가보난 그 여자가 돼지고기 팔지 안햄수까. 지 남편 경 되시믄 질리지 안허카이.'
(번역- 하이고. 징하기도 하지요. 그 왜, 아래 정육점집 있지 않아요. 문이 열려 있길래 가보니 그 여자가 돼지고기를 팔고 있지 않겠어요. 자기 남편이 그렇게 되었으면 질리기도 했을텐데 말이에요-내가 이래서 사투리 왠만하면 안 쓴다 ㅡ.ㅡ;;)
사일째 되던날 저녁 식구들이 둘러 앉은 밥상에 김치찌개를 내려 놓으며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며 한 말이었다. 아버지는 또 전라도 운운하시며 그 좋아하시는 김치찌개도 멀리 하는 기미를 보이셨다.

삼일전에 그 아저씨가 죽었다고 했다. 야스리에 칼을 썩썩 갈다가 그만 그 날이 선 칼이 아저씨의 배를 갈랐다고 했다. 그래서 그 아저씨 장례식을 마치고 아줌마가 이젠 대신 칼을 갈고 고기를 썰고 정육점을 꾸려나간단다. 아기를 업고.
어머니의 말이 아니어도 나는 소름이 끼쳤었다. 그 칼이 남편의 배를 가른 칼은 아닐테지만, 그 칼은 버리고 다른 칼을 장만했을 터였지만. 똑같이 생긴 그 물건을 매일 보면서, 어떻게 자신의 남편이, 아기의 아버지가 죽은 그 자리에서 다시 장사를 계속 할 수가 있을까.

그 정육점은 동네 초입에 있어서 그 앞을 지나지 않을래야 그럴 수가 없었다. 그 후 6년을 난 그 앞을 계속 지나다녔고 몸집이 더욱 작아 든 듯이 보이는 정육점 아줌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야스리에 칼을 썩썩 갈고 고기를 잘라내고 비닐봉투에 피가 흐르는 고기를 담고. 아이는 어느새 커서 정육점 앞 흙바닥에서 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이 하얀 아줌마가 난 무서웠다.

오늘 그 아줌마가 갑작스럽게 생각이 났고 왠지 모르게 설움이 컥하고 목을 타고 올라왔다.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먼 섬까지 갓난 아기를 데리고 옮겨온 그 아저씨와 낯선 타지에서 그 곳 사람들은 하지 않는 정육점을 열어 웃음을 잃지않고 번듯하게 가게를 꾸려낸 부부와. 행복의 절정에서 홀연히 남편을 잃어버린 간난아기 엄마에게 닥쳐온 생활의 무게와 그래도 여전히 칼을 갈고 고기를 썰어대던 어머니의 용기가, 나에겐 어떤 전류로 설움을 밀어낸걸까.


결국 고기 써는 것은 단념하고 커다란 전골 남비에 물을 끓이고 그 안에 비닐 봉지째 고기를 쳐넣었다. 분홍빛을 띠던 삼겹살은 희어죽죽하게 늘어져 버렸고, 난 그 맛없는 삼겹살에 맛 소금 찍어가며 맛없는 저녁을 먹었다.

*이글은 시나리오 작가집단 풍년상회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