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를 읽었을 때 나는 알레르기 결막염으로 인해서 두 눈이 몹시 불편한 상태였다. 그래서 집필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위해서 그의 소설을 손에 집에 들었었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했지만 나는 어느새 그의 소설에 대해서 깊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중반 이후를 넘어서면서 그의 현란하고 화려하고 촌철살인의 유머에 탄탄한 구성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주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그의 세련된 국제적 서사 감각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두꺼운 소설들을 모두 다 읽었을 때는 참으로 행복하고 뿌듯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부러웠고 왜 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랍권과의 마찰과 갈등을 피해가기 위해서라는 노벨상 위원회 내부의 암묵적인 합의라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만 무성할 뿐, 참으로 생긴 것 답지 않게 괜찮은 작가였다. 정말 생긴 것으로만 따진다면 루시디가 오히려 더 악마적이지 않을까? 안검하수증에 걸린 대머리에 털복숭이 그리고 촌스러운 안경, 모두 다 그 이미지를 조합하면 인간을 닮은 악마를 쉽게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건 그렇구,
나는 간만에 그의 두꺼운 소설들을 다시 읽었다. 장장 800여 페이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두가지 것들이 상반교차되는 것을 감지해야만 했다.
하나는 그의 소설은 여전히 매력적이었지만 이번에는 당시와 같은 충격을 받을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당시 장편소설 집필에 열리 올라있던 내 두뇌와 달리 지금은 풀어질대로 풀어진 그래서 나태한 폐인인 관계로인한 나의 집중력 부족때문이겠지만 30개월전에 읽었을 때의 그 남다른 감흥과 충격은 재현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조금은 그와 내 자신에게 번갈아 가면서 실망스러운 적반하장식의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그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장점과 단점 및 약점과 결점 그리고 그의 문체적 특성들이 눈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내게 나도 이와 같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넌지시 암시하는 즐거운 오버센스였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게 일어난 이 작은 변화에 대해서,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지난 30개월 동안 하나에 사로잡혀 열이 올라있던 두뇌가 차갑게 식어버리고 대신 썰물같이 그 무엇이 빠져나가 그냥 고급 단백질 덩어리로 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현재의 내 머리에 일상이라고 표현해야할 가장 범상한 것들이 지닌 원초적 생명유지 조건들이 각기 저마다 내게 자신들의 존재를 피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나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거시 대신 미시의 영역들이, 내게 작은 조약돌을 던지며 아주 무수히 많은 그것들이 떼거지로, 걸리버였던 나를 소인국으로 끌고 가는 느낌의 축적이 천상을 맴도는 컴플렉스를 정화시켜왔다는 것이다.
이 흰소리를 정리하면
즉 나도 이제는 소시민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해하지 못할 것이 어디 있을까? 끼어들지 못할 틈이 어디 있을까?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공통의 관심사에 공통의 욕망에 각기 비등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쿰틀대는데...
다시 식어버린 손과 머리에 불을 지펴야겠다.
다시 활활 타올라라.
불멸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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