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지리멸렬 (Incoherence, 支離滅裂, 1994)

nnonster 2006.12.07 11:07:23
1
영화의 서두
이 영화에 나오는 각종 기관 회사 등의 실명은 단지 자연스러운 사실성을 위해 무작위적으로 선택 사용되었을 뿐이며 일체의 주제적, 사실적 의미가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자막)

2
Episode 1 바퀴벌레(cockroach)
대학캠퍼스의 한가로운 숲 길을 걸어가는 길교수. 앞서 걸어가고 있는 과대표 김양을 발견한다. 과대망상처럼 김양의 뒤를 따라가 어깨에 걸친 아슬아슬한 웃옷을 슬그머니 내리는 상상을 하는 길교수. 현실의 김양과 길교수는 여느때와 같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어느새 길교수는 자신의 교수실에 앉아 여유로이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고 있다. 전공 서적 같았던 책은 다름이 아닌 한국판 펜트 하우스. 흐뭇한 표정으로 잡지를 바라보던 길교수는 수업시간이 다가왔음을 알고 황급히 교재를 챙겨 강의실로 향한다. 사회 심리학을 강의 중이던 길교수는 학생들에게 나눠 줄 유인물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알게되고, 과대표인 김양이 유인물을 가지러 길교수의 방으로 향한다. 강의 중 문득 자신이 무심코 책상에 두고 온 도색잡지를 떠올리는 김교수. 황급히 강의실을 빠져나와 6층이나 되는 계단을 뛰어 힘겹게 뛰어 올라간다. 먼저 도착한 김양이 길교수의 방문을 열려는 순간, 길교수는 황급히 김양을 부른다. 그러나 김양은 여지없이 방문을 열고 길교수의 방으로 들어가는데...

3
Episode 2 골목 밖으로(up the alleys)
이른 아침, 저택이 즐비한 골목 사이로 50대 후반의 남자가 하얀 운동복 차림으로 조깅을 하고 있다. 열심히 조깅을 하던 남자는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 척 하다가 대문 앞에 놓인 우유 두 개 중, 한 개를 자신의 것 인냥 여유롭게 앉아 은근슬쩍 마셔버린다. 곧이어, 남자의 앞에 나타난 신문배달 소년. 집 앞에 신문을 놓고 가려는 순간 남자는 남은 한 개의 우유를 소년에게 건네고 신문을 받은 뒤 유유히 사라진다. 소년이 우유를 마시려는 순간 갑자기 대문을 열고 한 아주머니가 나온다. 우유 도둑으로 오인을 받은 신문배달 소년은 아줌마의 심한 꾸중을 듣고 신문을 끊겠다는 말까지 듣는다. 멀찌감치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는 신문배달 소년의 눈길을 피해 조깅을 다시 시작한다. 이 골목 저 골목, 눈치를 살피며 조깅을 하는 남자는 결국 골목에서 소년과 마주치게 되고 이때부터 소년과의 일대 추격전을 벌인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속도와 포즈로 조깅을 하는 남자 뒤로 신문을 정확히 집집 마다 넣으며 남자를 따라가는 소년. 각자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하며 말없이 쫓고 쫓기는 공방전을 벌인다. 결국 남자는 골목 한 켠에 숨어 소년을 무사히 따돌리는데 성공을 하게 되는데...

4
Episode 3 고통의 밤(the night of pain)
한옥집으로 보이는 술집에서 나오는 두 남자. 몹시 취해있다. 후배 남자는 선배를 깍듯이 대하며 자신의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부탁을 하지만 선배로 보이는 남자는 모범 택시를 타고 가겠다며 급구 사양한다. "대치동 로얄 빌라"를 외치며 택시를 잡으려는 남자.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고 그의 앞에 우연히 정차한 좌석버스를 타고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술에 만취한 남자는 좌석버스에서 잠을 자게 되고, 한참있다 잠이 깬 남자는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 내리게 된다. 낯선 곳에서의 불안감과 함께 밀려오는 아랫배의 고통. 화장실이 급해진 남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지만 화장실을 찾는데 실패하고 만다. 결국 인근 아파트 단지의 잔디밭으로 몸을 숨기고 볼 일을 보려는 남자. 그만 경비원에게 들키게 되고,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된다. 망신을 당한 채 경비원의 말에 따라 아파트 지하실에서 신문지를 펼친 채로 볼 일을 봐야 하는 남자는 경비원에게 당한 박대가 여전히 불만스럽다. 볼일을 보고 나온 남자는 다시 한 번 경비원의 안스러운 듯한 눈길을 받으며 아파트를 벗어난다. 그러나 남자가 쓰레기 통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던져버린 신문지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는데...

5
에필로그(Epilogue)
불꺼진 방, 한 남자가 티비를 보고 있다. 광고 후 바로 시사 토론회가 진행되고 사회의 각계 인사들이 한 명씩 보이기 시작한다. 출연자들은 어쩐지 낯이 익은 사람들이다. 바로 에피소드 1 . 2. 3에 나왔던 남자들이다. 사회학과 교수인 길교수와 조선일보의 논설위원이었던 조깅을 하던 남자 그리고 한밤중에 노상방변(?)을 할 뻔하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던 검사가 토론회의 참석자로 나온다. 이들은 사회악과 범죄에 관련된 토론을 하며 저마다 자신의 평소 행동과는 맞지 않는 말들을 연거푸 해댄다. 이들의 얼굴이 방송되는 TV 주변으로 각각의 사람들이 보여진다. 과대표인 김양과 아파트 경비원 그리고 신문팔이 소년이다. 마지막 길가의 멀티 비젼을 통한 검사의 얼굴이 크게 보인다.

출처 : Text By 김준호(cahiers@cine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