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행 감독

JEDI 2002.08.03 12:45:52
필름메이커스가 만난 필름메이커스.. 두번째 인터뷰는, 코닥의 제작지원작 '봄산에'를 연출하는 이지행 감독님입니다. uni592가 만나고 왔습니다.
이날 오구리는 한 30분가량 늦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여름밤 이었지요. 지행씨는 만나면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 대화를 하면 즐거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자청하게 되었지요. 인터뷰는 지행씨의 단편을 준비중인 사무실에서 하였습니다. 여의도와 한강이 보이는 멋진 야경을 선사하는 곳이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이 많아 간략하게 정리를 했음을 밝힙니다. 이하 지행씨는 필름메이커스 아이디 준리라고 칭하겠습니다.


오구리 : 이지행씨 본인소개 좀 해주시지요.

준리 : 저는 이지행이구요. 한국나이로 스물 여덟. 지금 단편영화 <봄산에>를 준비하다가 제목은 바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봄에 찍기로 했었는데 9월에 촬영 하기로 연기가 되서 제목은 공모하고 있는 중이고요. 앞으로 또 다른 상황을 대비해서 계절적인 배경을 드러내는 제목은 당분간 쓰지 않을 예정입니다. 지금은 미국에 있는 대학원 휴학중이구요.

준리의 학교 칼아츠에 대해서

오구리: 현재 칼아츠의 한국유학생으로 칼아츠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면...

준리 : 일단 선택한 이유는 이렇게 얘기할께요. 제가 유학을 가려고 했을 때 사실은 영화 연출을 전공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하던 일이 케이블 티비 피디였고 만약 공부를 더 하게 된다면 영화쪽을 하게 되겠지만 이론을 할지 실기를 할지는 결정을 하지 않은 상화이었는데 예전에 어디선가 말을 한적이 있는 것 같은데 실기를 뺀 이론은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공부하는 것 좋아 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감은 가지고 있었고 근데 연출 같은 경우는 제가 Cable TV PD 였음에도 교육방송이니까 굉장히 shot이 협소하고 재미없고 고정으로 3 shot으로 커버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말 연출에 대한 자신이나 욕구 같은게 그리 크지는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왠지 잘하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case였던거 같아요. “그러니까 해보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이트에 가게 되었어요. US News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학교별로 순위를 매기는 데가 있어요. 대학원을 특히 전공별로. 그래서 그 안에 있던 영화연출 대학원중에서 10안에 있는 곳들을 쭉 골라봤더니 몇 개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좀 따뜻한 곳 쪽으로 고르려고 뉴욕을 젖히고 4-5군데 원서를 냈어요. 그래서 그 중의 하나인 칼아츠를 가게 된 것은 캘리포니아였기 때문에 갔다고 말하는게 정직하구요. 학교에 대해서는 가서 알았어요. 너무나 놀랐고…

오구리 : 왜요? 아마 유학가실 그 시점쯤에 칼아츠가 많이 알려졌고 많이 가는 분위기 였던 것 같은데…

준리: 제가 98년 가을 학기에 들어갔으니까 칼아츠를 그러니까 애니메이션이 좀 유명한 학교라는 것은 알고 있고 live action – 영상연출을 다녔거든요. 생긴지 30년 정도 됐는데 처음엔 Art School을 기조로 세워졌어요. 그 이후 미국에 불어닥친 아방가르드 문화라고 하나요. 비디오 아트나 새로운 사조의 미술을 하는 교수들과 학생들이 주류였고 캘리포니아의 학교답지 않게 영화학교 같은 경우에도 실험영화쪽 분위기가 강하고 영화를 내러티브를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장르로 보기보다는 필름으로 하는 미술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잇는 학교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미대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Art School수업을 들었죠.
제가 웃긴 게 한 학기에 한국 학생이 1-2명이었는데 제가 대학원을 들어갈 때 같은 동기중에 10명이 한국사람 이었어요. 제가 들어갈 때만 생긴 현상이죠. 우리과 같은 동기중에 반이 한국사람 이었던 거죠. 그때 계셨던 분 중에 <아이언 팜>준비하고 계신 육상효 감독, 단편영화<필통낙하실험> 손태용씨가 동기고 광고계, KBS카메라맨 등 다양한 분이 오셨죠.

준비중인 <봄산에>에 대해서…

오구리: 어떻게 한국에서 찍으실 생각을 하게 됐나요? 시나리오를 한국배경으로 쓰셨던데…


준 리: 방학 때 한국에 잠깐 들어왔는데 그때 생각했던 게 이 영화 시놉시스였고 딱히 뭐 미국에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고 배경상
한국의 산이 아니면 힘드니까 더구나 캘리포니아 같은 곳은 산이라고 있어 봤자 그랜드캐년 밖에 없으니까 이 영화를 거기에서 찍기에는 무리고 또 한국에들어오고 싶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야 했고… 또 졸업작품을 찍으려면 돈도 필요했고 돈도 없었고 돈을 벌려고 들어왔죠. 그리고 당당하게 졸업작품을 찍자. 저는 그게 일년 안에 찍을 줄 알았는데 벌서 2년째 한국에 있게 되니까 생각과는 다른 일들이 많구나. 생각이 드네요.

오구리 : <봄산에>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는지 궁금한데 이미 많은 얘기가 진행됐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기대도 많이 할 것이고 본인이 갖고 계신 생각들이 있을것 같은데 자세히 얘기 좀 해주세요.

준리 : 오디션을 했어요. 엄마와 딸역이 주요역인데 딸역만 오디션을 했거든요. 2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1차, 2차 오디션을 하면서 제가 기록해 놓은 화면을 보면은 이렇게 까지 극단적인 대치상황은 아니지만 아빠와 모녀간의 관계가 모두들 자기 얘기라고 하더라구요. 이 사람들의 각기 100인 100색의 가정에서 자랐고 환경도 다르고 사람도 다른데 모두다 자기얘기라고 주장하는 공통점이 있더라구요. 특히 젊은 여자들의 경우에는 엄마와의 관계, 아빠에 대한 조금은 퇴색된 적계심 같은 것 말이죠. 이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는 사회인이구 성장한 성인이지만 가족안에 들어왔을때는 어리고 유치한 모습들을 갖고 있다는 것에 동의를 표해서 만이 놀랬고 주변에 시나리오를 처음 보여드렸을 때 영화하시는 분들의 반응을 씨네21 인터뷰할때도 그랬고 너무 리얼리티가 없지 않느냐 어떻게 여자 둘이 얼마 못가서 관이 깨진다고 해도 그걸 들고 갈 생각조차 하겠느냐. 관이라는 것은 장정 6명이 들어도 힘든 상황인데, 그런 문제점을 지적해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촬영이 미뤄진김에 그 부분을 손을 대고 있어요. 처음에 올라가는 부분에 어떤 도움을 받고 올라가다가 그 도움이 없어지는 순간에 얼마 안가 관이 부서져 시신만 들고 올리는 것은 차라리 괜찮거든요. 어떻게 보면 이고 끌고 갈 수 있으니까…

(참고로 딸역은 배우 문소리씨가 한다고 합니다. 오디션에 참가하셔서 누구보다 영화에 대한 뛰어난 분석력을 보여주셔서 매우 흡족한 캐스팅이라며 준리가 침튀겨가며 자랑하셨습니다.)

오구리 : 영화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신 분도 있겠지만 간단하게 시놉시스 정도 소개해주신다면.

준리: 모녀가 있어요. 엄마는 평생을 헌신하고 순종해온 타입인데 나름대로 강단은 있는 사람이고 딸 같은 경우에는 일생동안 아버지한테 많이 지적으로나 어떤 자신감 면에서 눌려고 살아온 친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그런데 어버지가 돌아가시기전에 어디어디에 있는 어느 산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해요.
하지만 알고 보니까 그 산이 군사 보호지역으로 묶여있는 산이예요. 그래서 법적으로 매장이 금지되어 있고 그 상황에서 엄마는 몰래라도 올리자는 얘기를 하고 딸은 처음엔 시큰둥하다가 동의를 하고 올라가면서 생기는 문제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어머니와 같이 오르게 되는데… 오르면서 일어나는 얘기예요.
올라가면서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거의 극한 상황에까지 몰리고 엄마와 딸이 심각하게 감정적으로 평상시에 하지 못하던 대립을 하게 되면서 올라가죠. 마침내 밤이 깊어서 아버지가 얘기한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한숨을 돌리는 순간 어느새 나타난 군인들한테 걸리고 새벽쯤이 되서 다시 군인들에 의해 아버지 시신과 함께 산을 내려오게 되요. 그렇게 해서 영화는 끝납니다.

오구리 : 학교 다니실 때 미술쪽 수업을 많이 들으셨다고 했는데 그러면 분명히 그 영향이 있을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 작품을 하시는데 미술컨셉이나 계절감 때문에 포기해야 되는 부분에 대해서 어떤 대안을 갖고 계세요?

준리: 음 영화의 미술 컨셉은 사실 뭐 제가 학교에서 미술수업을 들은 것들은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비디오나 필름으로 내가 가진 사상을 성명하는 작업이었구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토론하고 반론을 제기하고 그때 설치작업 같은 것을 했었죠.interview_ljh_1.jpg
<봄산에>의 미술 컨셉은 지금은 얘기하기가 힘든데. 이게 대답이 될지 모르겠네요. 보여지는 것 보다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을 비중을 강화시키는 영화가 될거라는 정도고 그리고 일단은 모녀가 (산을) 올라가는 의상자체가 소복을 입고 올라가요. 왜냐하면 지금 상황은 바로 영안실에서 새벽에 몰래 인부들을 불러서 삼일장을 제대로 치르고 하관을 하는게 아니라 몰래 가는 거거든요. 영안실에서 나온 복장 그대로 가는 거죠. 그러니까 산의 색깔이 지금보다 녹음이 적어져 있을테지만 아무래도 산은 좀 크고 넓고 단단하고 움직이지 않고 그것에 비해서 이 사람들이 휜 옷을 입고 비틀비틀 갈 때 관을 메고 흰 광목 끈을 잡고 올라가는 자체가 굉장히 대비되어 보이는 모습으로 보여지면 좋겠다. 그게 나아가서는 인생이라는 것에 산을 비유하고 올라가는 이들의 모습을 등에 진 아빠의 시신이 사람들 인생의 짐이라고 생각하고 그것 자체를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을 때 얼마나 악전고투하는 것들이 생뚱맞게 보여질것인가 좀 비루하게 보여질것인가에 대한 이미지를 연상하려고 노력한다. 그 외에는 미술적으로 컨셉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 같아요.

오구리 : 원래 계획하셨을때도 35mm 포맷이었나요?


준리 : 그렇진 않은데요. 이스트만 코닥 지원제도에 되고 나서 바뀌게 된거죠. 감히 35mm는 꿈도 못꿨는데… 주변에 16mm작업하시는 분들 얘기를 듣고 한국에서 16mm작업하는게 미국에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품은 많이 드는데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어쩌면 35mm 포맷으로하는게 영화 특성과도 맞아 떨어질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죠…

준리의 개인적인 이야기들 …

오구리 :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죠? 영화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준리 : 생각이 지금 준비하고 있는 <봄산에>에 치우쳐 있으니까 아무래도 영화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요. 자세 문제인거 같아요. 사실은 영화를 5월말에 스케줄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잡아 놓고 미뤘거든요. 여러가지가 있지만 제작비 문제도 그렇고 제일 큰 건 저 본인의 자세에 대한 문제였던거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이거 졸업작품 한편으로 찍고 끝낼게 아니라면은 제가 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앞으로의 영화를 대하는, 만드는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그러면 내가 이렇게 적당하게 스스로와 타협하면서 적당히 뭔가 이렇게 하면 만들어지겠지 하는 생가가을 가지고 시작했을때 내가 다른 작업을 또 할 때 안 좋은 관성이 될 것인가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죠. 적당히 그림 예쁘고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기계적으로 찍어내는게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게 아니라면 모든 것을 나에게 납득시킬수 있는 다음에 촬영에 들어가야 되는게 아닌가 하나에서 열까지 세세한 것까지 그리고 누가 뭘 가지고 덤벼도 스스로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정도는 중요한 한 자세정도는 내가 가지고 가야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그런것들이 고민이예요.
사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영화 없으면 못살 것 같아서 이래서 영화하는 것은 아니고. 얘기하고 싶은 것 표현하는 수단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강한데 그래도 영화라는 매체를 선택했으면 책임져야 될 쪽이 있지 않나요? 제가 뭔가를 만들면서 그런것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이나 디테일에 대한 자신감이나 열등감 같은 것은 열의로 치더라도 내가 얘기 했을 때 얘기를 시작했을 때 가장 진정한 태도로 끝까지 지루할만큼 고루하게 끝까지 가보는 어떤 그런 자세가 좀 부족하지 않나 자책을 많이 하죠. 여러분들한테 자문을 구하고 그런 자세들을 좀 배울려고 노력하는 시기예요. 추상적이지만.

오구리 : 봄산에 이후에 다시 학교를 갔다 오시면 그 이후에 준비하고 계신 작품 꼐획은 무엇인가요?

준리 : 일단은 갔다 오면은 돈을 벌어야 되구요. 그래서 그런 생각하지 않고 이구요. 연출부를 빨리 하고 싶어요. 연출부를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는 그때 가서 해야 할거고 연출부 하면서 단편 작업을 할 생각인데요. 생각하고 있는게 있어요. 제가 취미가 일기대신 단편쪽으로 글을 끄적거리는게 있는데 지금까지 써놓은 글들이 100개 정도 있는데 보니까 단편영화 소재로 이용할 만한게 있더라구요. 그래서 이 아이템을 남들한테 얘기했는데 말도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굴하지 않죠. 사랑에 관한 얘기예요. 제목은 왼쪽창가 오른 쪽 손이라고. 이루지 못할 사랑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등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동감을 많이 하고 이루면 재미없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들도 있죠. 그러니까 등을 본 사람은 등을봐서 누군가 사랑하는 이의 등을 봐서 슬픈 반면에 굉장히 메조키스트적인 자족감을 가지고 있을거라구요. 그 등을 보는 사랑을 해서 그 사람을 자기를 마주보게 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다른 남자, 여자에 대해서 가능성을 열어 젖히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관계에 돌입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면서 혼자서 가지고 있는 감정에 대해서 자족하면서 때론 슬퍼하고 그것을 자기 자신의 인생의 안주거리로 삼아서 쭉 살아가고 연명하는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중입니다.

오구리 : 주로 생각하시는 시나리오의 주인공, 화자가 여자인가요?

준리 : 제가 술자리에서 얘기를 했는데 영화를 찍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저의 자세는 글을 쓴는데도 그렇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얘기는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가장 잘 아는 것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예요.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거짓을 꾸미지 않으려고라고 해야 되나? 잘 모르는 것을 얘기하다보면 그럴법하다라는걸로 자꾸 밀고 나갈수가 있잖아요. 기본적인 주제에 대한 어떤 감정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잘 느껴온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편이죠.

오구리 : 여러가지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장편 데뷔작이 될 수도 있고 꼭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요?

준리 : 아이템은 없구요. 그런 얘기가 있지요. Open ended. 끝을 열어 놓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비관 보단 희망을 암시하면서 끝내는 영화가 좋아요. 그 희망을 직접적으로 얘기하지않으면서도 희망을 암시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구요.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가 좋았구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거 같아요. 그래 너만 그렇게 추레하게 사는게 아냐. 나도 그래 근데 우리 진창에서 다 한번 놀아보자는게 아니라 어차피 이렇게 사는건데 괜찮지 않느냐 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 “ 괜찮아” 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보는 사람들한테 “괜찮으니까 가끔 심각해졌다가 돌아와라” 그런 얘기를 가슴에 앉고 영화로 봤으면 좋겠죠. 뭔가를 만들게 된다면.

오구리 : 인터뷰제의가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나요?

준리 : 내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게 필름메이커스랑 성격이 얼마나 들어오시는 분들한테 도움이 되고 맞을까? 고민 좀 하게 되더라구요. 내가 영화를 이렇게 이렇게 찍어보니까 이런 문제들도 있고 이런 것을 느꼈다. 라고 얘기하면 좋지만 “이제 찍을 거예요” 네지는 “준비, 요이 땅”하는 건데 특별한 사연도 없고 특별한 사연이라면 PD가 갈리고 제작이 미뤄지고 돈 구하느라 힘들었다 이런건데.

오구리 : 물론 제가 인터뷰 대상자를 초이스 할만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뵙구 싶었구 그래서 제의를 한거죠. 특이한 케이스인거 같아요. 필름메이커스 사이트에 들어와도 그냥 나는 연출부입니다 무슨 작품하고 있습니다. 뭐 이정도만 서로 오고 가는데 본인은 밝히셨잖아요. 물론 제가 알아낸거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흥쾌히 응해주셨고 아마 부담은 있으실거라고 생각해요. 작품이 아직 가시화 되지 않았는데 이런식으로 규정지어서 인터뷰를 사이트에 내보낸다는게 힘드셨을꺼라 이해합니다.

준리 : 잘하면 뭐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는 거고 그렇게 얘기를 많이 하더니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 놨냐? 뭐 이런 얘기들…
지금 제일 힘을 주고 있는 것은 “힘을 뺴자”에 힘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남들 눈이 어쨌건 제가 보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되겠다. 어떻게 보면 학생 졸업작품이라고 치부하는 의미만 될 수 있는 거고. 즐겁게 작업해야죠. 앞으로 갈 날이 많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네요.


인터뷰를 하고 나오니 또 비가 엄청나게 쏟아 붓고 있었습니다 . 비와 함께 준리님과 술 한잔 기울이고 싶었지만, 바쁘신 관계로 한잔의 약속은 담으로 미뤄야 했습니다. 인터뷰에 같이 참가해주신 marlowe71님,사진 찍어주신 hj122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