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노을이 빨갛게 물들어가는 저녁이 되면 괜시리 바람자락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 서성이게 된다.
곰팡네나는 듯한 방안에서 사방이 탁 트인 밖으로 나오면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은 무수히 이마를 간지럽히고, 저멀리에선 저녁을 준비하는 아궁이처럼 빨갛게 익어 가는 노을이 고개를 내밀고 나와 마주한다.
그때까지 불어다니던 쓸쓸함이 도깨비눈처럼 내게 들러붙는다. 주머니에선 아까부터 계속 전화기만 만지작거리고, 먼 허공을 향한 내 동공엔 숱한 이름들이 자막처럼 스쳐지나간다.
스산하리만치 쓸쓸하고 외로웠던 시절, 내게 말걸어줄 지나가는 도깨비 하나라도 있어주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랬던가......
뒤 돌아보면 반쯤 입 벌리고 정신없이 잠을 자는 내 아내가 있다. 어젯밤 소설을 쓴다고 밤을 새웠다.
전에는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으로 이야기하다가 마음맞는 새로운 친구도 만들고 그러더니, 이젠 싫어하는 사람을 골탕먹이는 것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모양이다. 어지간히 싫어하는 모양이다(^^)
내가 보지 못하도록 그 작은 몸으로 컴퓨터를 가리며 밤새워 히죽히죽거리며 자판을 두드렸다. 정말 도깨비 같은 녀석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다가 나보다 아내가 먼저 작가가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언제나 내 곁에 꼭 붙어 있는 도깨비눈같은 아내...... 노을앞에 마주앉아 쓸쓸해 있던 나에게 세월을 갈라먹고 어디선가 툭하고 나타난 도깨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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