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흘려버려도 좋을 말들

ty6646 2009.05.21 07:20:53
가장 뾰족한 어려움들이 한꺼번에 닥쳐왔을 때의
그 좌절과 절망과 고통과 무기력감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도대체 내가 왜 그렇게 살았을까?
화가 날 것이고 미치도록 분노할 것이고
그러다가 마침내 무중력 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아끼고 아끼고, 쥐어짜고 또 쥐어짜고 살아오다가 어제,
백화점과 마트를 접수하듯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들였다.
지출의 빨간줄에 속이 쓰리고 아프지만 한편으론
왠지모를 가슴한켠의 "시원함과 소통, 그 뻥뚫림"이 느껴졌다.

어떤 목표가 있다해서
그 목표외엔 모든 문을 닫아 놓고 살아갈 수는 없다.
언제고 어느 한쪽의 쪽문이라도 열어두고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
모두 닫히게 되면 큰 것을 얻으려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

부지런히 가되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 어떤 통로도 없이 포기하고 싶어질만큼 스스로를 죄이기만 한다면
그간의 애씀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수 있다.



***최진실의 장미빛 인생이란 드라마를 보고난 후 어느 누군가가 쓴 글임다






실패해서 꿈이 깨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도전 앞에서 스스로
꿈을 접는 나약함이다.


***권영설이란 사람의 글중에서 발라온 것임^^



입으로는 냉소적으로 제법 인류애를 말할 수 있지만
정작 실천의 차원에서는 전혀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는다.
수용소에서 피어 올라오는 뼈가 타는 냄새는 없지만,
배타적 인종 이데올로기는 나름의 민족주의적 정당성을 부여받으며
사방에서 매캐한 연기를 피워올린다.

선진국인 미국 프랑스부터 콩고와 수단 르완다 같은 인종사태의 지옥까지
지금 전세계는 모두 소규모 아우슈비츠 지점이 되어 가고 있다(마치 맥도날드처럼).


***누가 쓴 글인지 모름, 분명한건 내가 이렇게 멋진 말을 했음 하는 것





****킹콩의 성생활(이종도기자의 블로그에서)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서 쉽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에서 킹콩은 나오미를 닮은 여자를 절망적으로 찾아다닌다.
킹콩은 그 수많은 여자들 가운데서 아주 쉽게 나오미만의 개성을 알아낸다.
킹콩은 심미안과 기억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킹콩의 사랑은 대상의 육체성보다는, 대상의 심미성에 더 많이 의존한다.

근원적인 외로움과 이해받지 못하는 자의 운명은 괴물처럼 변한다.
우리 관객의 눈에 킹콩처럼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고 흉한 괴물로 바뀌는 것이다.
나는 이 점에서 심하게 공감을 했는데, 그래서 영화 내내 내가 킹콩처럼 살았던,
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렇게 이해받지 못한 상황으로 내몰렸던
(거꾸로, 내가 어떤 타인의 운명을 그렇게 만들거나 만들려고 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때를 끊임없이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동시대, 같은 사회로부터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괴물로 몰려서,
겨우 극장에서나 전시되는 존재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나 킹콩 같은 순간을 숙명처럼 맞닥뜨리지 않는가?
괴물이 되어 조소와 비난을 받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 같은
아무런 지지할 곳 없는 데서 생의 가혹함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낭만주의적 신화는 결국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
킹콩처럼 외롭게 쓰러진다고 해서 누가 박수쳐주거나 눈물 흘리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 진정 아픔의 눈물을 뿌려주거나 기립박수를 5분 동안 쳐준다고 해도 그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살아서 벗어나야 하고, 설령 자기 뒷모습이 우스꽝스럽고 비겁해 보여도 자신의 존재에 최대한 충실해져야 한다.

그렇게 외롭고,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로 살아야 하는 게 숙명이라면
오히려 그 숙명 안으로 더 깊게 파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더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킹콩은 20대 초반의 불안과 질풍노도와
로맨티시즘적 정서에서 멈추고(또는 성장을 포기하기를 결단하고) 그만 자살하고 말았다.
인생은 그 이후에 더 아름다워질 수 없다고 믿는 매우 오만하고 예술지상주의적인 견해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 울상을 하고 있을때
3초만 말없이 웃어주자.
그 아이는 잘못을 뉘우치며,
내 품으로 달려 올지도 모른다.


그녀가 화가 나서 소나기처럼 퍼부어도
3초만 미소짓고 들어주자.
그녀가 저녁엔
넉넉한 웃음으로 한잔 술을 부어줄지도 모른다.

******* joins 3, 40대 사랑방에서





이렇게 비가 오고 마음이 젖어 있을때는 지나간 일기를 뒤적인다.
많은 사람과 많은 풍경, 많은 이야기가 먼지를 툭, 툭 털어 내며 일어선다.

그렇지 ! 네가 그때 있었지.
여름막걸리를 마시며 돌아오는 그 천변에서 우리는 노래, 노내를 부르곤 했지.

지금도 그 노래들은 거기 좁은 언덕길에 흩어져 있을까?
그때 피어있던 꽃들과 풀포기 들은 여전히 살아들 있을까?

하늘에 구름, 강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내 가슴엔 늘 깊고 폭 넓은 물길이 있어 흐르고 있지.
늘 무언가 흐르고 있지.

******* joins 3, 40대 사랑방에서






가끔씩 슬퍼지는 날에는 동전을 들고 나갑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걸어다니다
공중전화박스를 발견하면 7개의 번호를 누르고 신호가 가길 기다립니다.
"여보세요" 하고 그대의 친숙한 반응을 기대합니다.
그대가 "왜" 란 이유를 붙이면 수화기를 든 채로
전화박스 유리 너머로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그냥" 이라고 해버립니다.
가끔씩 슬퍼지는 날에는
"그냥" 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집니다.


******** 부산 송은화님
******** 짧았던 사랑, 긴추억여행 중에서
******** 이 글은 지금까지 발견한 글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와 닿는 글이다.






어느 대학교수가 강의 도중에 갑짜기 10만원짜리 수표를 꺼내 들었답니다.
그리고서는 '' 이거 가질시람 손들어 보세요 ~'' 라고 했대요... 그랬더니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지요.
그걸 본 교수는 갑자기 10 만원짜리 수표를 주먹에 꽉 쥐어서 구기더니 다시 물었습니다...
''이거 가질사람 손들어 보세요 ~'' 그랬더니 이번에도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는 또 그걸 다시 바닥에 내팽겨쳐서 발로 밟았고...
수표는 구겨져 신발자욱이 묻어서 더러워 졌습니다. 교수는 다시 물었습니다...
'' 이거 가질사람 ?'' 학생들은 당연히 손을 들었겠지요. 그걸 본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꾸겨지고 더러워진 10만원 짜리 수표 일지라도 ...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알고 있는것 같군요.
' 나 ' 라는 것의 가치도 마찬가지 입니다. 꾸겨지고 더러워진 나 일지라도...
그것의 가치는 전과 다르지 않게 소중 하다는 것이랍니다.
실패하고 사회의 바닥으로 내팽겨 처진다 할지라도 좌절하지 마십시요.
여러분의 가치는 어느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랍니다...'''


****** 야후 블로그 풍차돌리기 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