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일요일 오후엔

ty6646 2008.08.26 06:32:58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촤아아 촤아아 빗물을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쿠르릉 쿠르릉 천둥번개가 잠꼬대하는 8월의 어느 일요일,

비오는 일요일 오후엔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소주한잔 마시고 싶어진다.



맑고 투명한 무색 소주한잔을 삼키고나서
알콜냄새와 쓴 맛을 일시정지시킨 사이에 재빨리,
노릿노릿 잘 구워진 삼겹살과 마늘과 고추를 상추에 얹고 장을 발라
입속에 쳐넣고나서 마주앉은 친구녀석의 빈잔을 넘치도록 채워준다.

그렇게 맛있냐고 깐죽거리는 친구녀석,
천천히 쳐먹으라고 고기한점 찜해놓구 굽는 녀석
고기가 모자른다고 주문하면서 소주도 추가시키는 녀석
옆자리 여자를 흘깃거리며 홀짝홀짝 술처먹는 녀석

그래 씨발놈들아 그렇게 맛있다
타지생활하다 몇년만에 돌아와서
니네들하고 이렇게 허연 연기피워 올리며
소주잔 깨지도록 건배하면서 쳐먹는 삼겹살이 죽도록 맛있다

죽도록 쳐먹고 죽도록 게워올리면서도
잔은 채우고, 고기는 굽고, 쳐먹으면서 주절거리느라 입속의 잔해는 튀어나가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술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고 이야기도 맛있다
거리의 모든 여자들은 다 예쁘고 조폭과 한판 붙어도 안질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돌아보면 친구가 있었고,
내 집앞에 쪼그리고 앉아 자판기커피 한잔씩 홀짝거리는
돈안되는 우정도 있었던 것 같다.

하루종일 비가 온다.
자고 일어나도 하루해가 저물지 않고
꿈속의 친구들은 업그레이드 되지않은채 늘 그렇게 오래전 모습으로만 등장한다

비오는 일요일 오후엔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소주한잔 마시고 싶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바라기만할뿐 삼겹살을 구워먹지도 않고 소주도 마시지 않는다.
친구하나 없는 이 외진 곳에서
나 혼자서
삼겹살 굽고
나 혼자서 잔을 채우고
마주하며 건배할 잔하나 없이 나 혼자서 마신다고 생각하면
쫌, 쫌, 쫌 많이 우울할 것 같다


차라리 마스터베이션 한번하고 자는게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