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해물파전집...
kinoson
2008.07.19 00:03:31
1.
1997년...
IMF.. 가뜩이나 어려웠던 집안 형편을 생각하여 휴학계를 내고
입대를 준비했다...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영장만을 기다리며
이 세상이 끝날것처럼 놀기를 6개월....
처음엔 막내아들 입대결심에 눈물 글썽이시며 열심히 술값을 내주시던
부모님도 이제는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입대 지원자가 많아서 기다려야 한다는 병무청의 말...허허
입대에 대한 굳은 결심이 거의 사라질 무렵 날아든 영장...
........일본으로 밀항 해볼까도 잠깐 고민했지만...
뭐 입대를 했다....
306보충대에서 며칠 있다가 발령받은 28사단...
훈련을 열심히 받으며 육군이라는 곳에 차차 적응해갈무렵....
훈련소 퇴소를 하루 앞둔 전날밤...
462기 동기들중 단 3명만 연병장으로 불렀다...
- 니네들은....전경으로 착출됐다...
지급받은 모든 물품을 내무부 물품으로 바꾼후...
남들퇴소하고 신나게 놀아제길때..
우리 3명은 경찰학교로 2주 훈련을 받으러 갔다..
그렇게 난 전경이 되었다...
뒤로 동기놈의 분노어린 혼자말이 들린다.
- 씨발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의경 지원하는건데...
어쨋든 난 전경이 되었다...
2.
살면서 시위라는걸 별로 접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모든것이 상당히 무서웠고(이경) 신기했고(일경) 모든 민중가요를 알게되고 (상경)
이젠 모든것이 귀찮아졌다(수경)
이 타이밍에서 정치적인 얘기나 그런쪽으로 가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다..
내가 갑자기 군대얘기를 하고 있는건 제대를 3달앞둔 어느날 부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니까....
3.
제대를 3달 앞둔 어느날....여차저차 욱하는 일이 생겨서
2주위의 고참을....
좋게 말하면 가벼운 하극상....나쁘게 말하면 그냥 하극상 을 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그때의 나는 조금 욱! 하는게 있었다..
현장에서 행정반장님에게 붙잡히게 되었고..
부대내의 모든 간부들이 모여 나에 대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 그냥 규율대로 영창 보내죠 (나랑 안친했던 행정반장)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전경들이 영창가면 사회에서
영창 가는것과 똑같은 것이었다...빨간줄이 그인다는 얘기다...
다행이 그 고참도 어느정도 용서를 하는척했고...
나도 진심으로 반성하는 척 했더니...
제대도 얼마 안남은놈 불쌍하다고...영창대신 파견을 보내기로 결정 되었다..
장소는 계룡산 입구 동학사 파출소.....(참 그리운 곳이다)
여튼 부대에 있었으면 한창 깔아져있을 짬밥에 난 파견을 가게 되었다..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영창보다는 10000000000000배 좋은 조건이라....
그곳에서 2달 가량을 있으면서 맞은편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던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4.
나와 동갑이었던 그녀는 항상 씩씩했다...
근무 마치고 새벽에 들르면 언제나 따뜻한 커피를 주었고...
잠을 덜 잘지언정 항상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 항상 시를 썻고......
(이 부분은 쓰면서도 참 그렇지만...그때의 난 참 순수한 아이였다 -_-) 험....
그녀는 나를 위해서 휴무날 꼭 나를 찾아왔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사랑이라는 감정은 만나는 시간과 꼭 비례하지는 않는구나..
그러기를 2달...부대복귀를 하루 앞둔 날....
제대하면 꼭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부대로 가는
경찰트럭에 몸을 던졌다....
마침내 제대날....나는 그녀를 찾아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고....
그녀는......
그날이 휴무날 이었다........이런 뭐같은 상황이....
집에다가는 큰 시위가 있어서 제대가 이틀 밀렸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고....민간민으로 다시 동학사를 찾아 하루 저녁 자고...
다음날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녀는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었고...나를 보고 싱긋 한번 웃어주었다...
그리고 내 손을 이끌고 인근 해물파전집으로 향했다...
두어시간....파전과 도토리묵...그리고 나의 제대를 축하해주는
사장님의 서비스 버섯찌개까지.....에다가 동동주...
거하게 취한 나는....그녀에게 말했다..
- 나 아무래도 너 사랑하는거 같다...
- .........
말이 없는 그녀.....잠시후 그녀는 차분히 말했다...
- 난 대전에 살아....넌 부산에 살고...이런 만남....힘들거야....
참 많은 말이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이거 였다....
- 어제 너 제대하는 날 인거 알고....휴무 잡은거야..다시 안보는 편이 더 좋을거 같아서...
그녀는 잠시 자리 비운거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 편의점까지 데려다 줄께....
- 아니 그냥 여기서 헤어지자.....
그녀는 일어나 계산을 했고....난 멍하게 자리에 앉아
동동주 한병을 더 시켰다....혼자 마시는 술...
잠시후 사장님이 맞은편에 앉았고.....
20년전 자신의 험난했던 군생활 얘기를 하셨지만...
내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만취한 나는 다시 파출소를 찾았고....
여기가 모텔이냐며 머리를 쥐어박는 파출소장님을 뒤로한체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자다가 속이 쓰려 새벽에 일어나니....
내 옆에 술마시고 행패부린 어떤 아저씨도 함께 자고 있었다..
부시시 일어나 다시 편의점으로 가 보았지만....
이미 그녀는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매우 추웠던 그날....
아마도 눈물이 몇방울 흘렀던거 같다...
5.
제대후 전경과 편의점 아가씨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썻지만
많은 사람들의 비난속에 이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날은 더운데 잠은 안오고.....
요즘 시위가 많은데...쇠파이프에 물대포 얘기가 나오고....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난 갑자기 편의점 그녀가 떠올랐다....
좀 더 거창한 무언가가 떠올라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