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뉴스와 화려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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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8 20:42:44
광주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건 자유지만...
그것을 누구나 봐야 한다는 주장은 군사정부에서 단체 관람을 강요했던 반공 영화와 똑같이 보인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입장을 영화로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아주기를 바란다. 그들 눈에는 새로운 세대의 자유분방함이 무질서나 무지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차이속에서 저항이 싹트는 것이고, 그속에서 진짜 소중한 문화가 탄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성공이나 실패와는 무관하게, 이 영화의 방식은 낡았다.
광주를 성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에 무관심 한 사람들을 역사에 무지한 사람으로 평가 하는 것일까?
나는 더 비극적으로 죽어간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 부호로부터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이다.
광주를 신성시 하고 그것을 범접해서는 안되는 신화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들도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북한의 평양에 우뚝 솟아 있는 김일성 동상이 가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신격화 내지는 신성화를 묵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에게 그때의 광주가 교양 과목으로서 참고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무겁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기성 세대는 하나의 거대한 권력일 뿐이다.
물론 이 영화는 '배달의 기수'나 '대한뉴스'보다는 훨씬 세련되게 이데을로기를 전달한다. 그러나 두 가지는 별로 다르지 않다. '배달의 기수'속에도 조국을 위해 비극적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쩌면 세련되지 못하기 때문에 순진해 보이기도 한다.
그때의 광주에 부채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80년대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던 사람들이 지금은 청와대에도 있고 교단에도 있고 언론사에도 있다. 그들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똑같다.
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무시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것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저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