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부의 영화보기 1

image220 2007.06.04 19:11:14
일과 놀이, 상업과 예술, 사랑과 우정, 천국과 지옥 ,

지상의 온갖 계곡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연출부의 영화보기 1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읽고나서 영화를 보면 엄청난 스포일러에 경악할,

진퇴양난의 연출부 대좌담!

 

막무가내로 기획된 그 첫번째 시간. 오늘의 영화는

쿠마자와 나오토 감독, 아오이 유우 주연의

<니라이카나이에서 온 편지(ニライカナイからの手紙)> (2005)입니다.

 

 






이야기 나눈 사람들

전자양 | 고리 | 히요 | 봄봄 | 이미지 (이상 현직 영화 연출부)

 







이야기/이미지


 

히요: 무엇보다 저는 아오이 유우가 잘 안보여서 아쉬웠어요. 전면에 부각시키는데 안보여요. 혼자 이끄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앵글이나 조명이나, 한결같이 아이돌스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어요. 환한 미소와 뽀사시한 조명으로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해 줘야하는데. (웃음)

 

봄봄: 그런 면에서는 부각이 너무 되는 거 아니에요?

 

고리: 너무 훈훈했죠

 

히요: 슬픈 얼굴이 많던데요. 이런 측면샷들. 보면서 행복한 마음이 안생기더라구요.

 

고리: 촬영배경이 된 섬(오키나와 어느곳)이 이미지화하기에 뚜렷한 공간이죠. 그렇게 드라마틱한 걸 끌어낼 수 있는 데서 촬영했다는 건 나쁘지 않은데, 공감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야기에 내포된 내용은 강한 드라만데, 영화 전반의 호흡이나 배치가 보는 사람의 진을 빼는, 무리한 오버들이 많죠. 동어반복도 적지않고.


 

전자양: 이게 뭐에 대한 영화냐를 생각해보면, 어린 여자애가 엄마와 헤어져 살다가 비밀을 알게된다... 그런 스토린데. 결국 이야기도 이미지도 실패한 거라고 봐요. 이미지는, 관객 입장에서는 아오이 유우에 대한 기대가 있죠. HD를 선택한 이유도 있을 거고. 그런데 전반적으로 너무 어둡고 심지어 얼굴도 안보이고. 남자관객들은 아마 실망했을 걸? 영화 속에서도 잠깐씩 빛을 받으면 너무 예쁜 얼굴인데.

 

고리: 감독이 일부러 누르지 않았을까? (웃음)

 

봄봄: <소녀들은 수영을 못해>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도 디지탈에다 거의 노 라이팅이었거든요. 비교해 보면, 이 영화에서 이미지가 가진 문제는 그런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제 생각에는 이미지가 이야기랑 맞물리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끌어나가는데 있어서 인물의 얼굴을 중요하게 다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섬의 이미지를 관조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도 아닌 것 같고. 두 지점 사이가 애매해요.

 

전자양: 한참동안 이 영화가 도대체 뭔가 했어요. 긴장감이 없었달까. 편지에 얽힌 이야기도 크게 와닿지 않고. 그러고 있는데, 여하튼 간에 그렇다면 이미지라도 뭔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거잖아? 앵글을 틀고 무빙을 주고 하는 것도 의도였던 것 같은데 그것조차 어울리지 않았던 거죠.

 

고리: 이런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는 이미지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이야기의 실패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하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거죠. 이것이 잘못된 이야기냐 잘된 이야기냐를 따지기 전에. 쉽게 드러나는 문제는 캐릭터가 죽어있고, 단편적이라는 거죠. 건드려야 움직이고 말을 해줘야 움직이고. 극적 긴장감을 일부러 죽인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할아버지가 손녀랑 헤어져서 신사에서 할머니랑 얘기할 때, 할머니가 괜찮을 거야 하면 도쿄로 받는데, 아오이 유우가 할아버지가 보낸 마늘장아찌를 먹으면, 그럴 때는 일반적으로 이쪽에서 새로운 국면을 제시해서 이야기를 끌어가기 마련인데...

 

봄봄: 구성에 문제가 있어요. 이야기 흐름이 지루한 건 어떤 면에서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템포가 느리다는 건. 그래서 처음엔 그 템포감이 좋았었는데, 여유있게 공간과 인물을 비춰주는 것이 좋았었는데, 이야기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뻔하게 흐르다보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전달이 안되더라구요. 끝에 가서 울리는 것도 그렇고.

 

고리: 이 이야기는 엄마의 무한 사랑으로 커가는 소녀의 이야긴데. (웃음) 관객들은 엄마가 죽었다는 걸 영화 시작 15분만에 눈치 채는데, 만드는 쪽에서는 나중에 나중에 영정사진을 보면서 알게될 거야, 그럴거야, 하고 만든 것이 제일 문제였다고 봐. 이미 시작 부분에서 섬을 바라보면서 니라이카나이 어쩌고 얘기하면 눈치 채는데. 아니면 엄마에게 편지가 오는 순간부터. 긴가민가 하긴 하지만.

 

전자양: 아오이 유우가 도쿄에 간 이유 중에는 사진을 하고 싶은 것말고도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큰 이유가 있는데. 그 아이가 신주쿠 우체국 앞까지 갔다가 뒤돌아오잖아.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이후 어느 순간에는 능동적이어야 동네사람들이 사실을 숨긴 것과 자신의 의지 사이의 접점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터질 수 있는데. 안그러니까 재미가 없지.

 

고리: 쉽게 생각해서, 재밌게 풀어나가는 방법이라면 많은데. 예를 들어, 상상을 해. 후키가. 엄마는 여전히 살아있고 도쿄에서 잘 살고 있어. 그런 걸 생각하면서 엄마를 찾아다니고 상상이 펼쳐지는 거지. 그러면서 그걸 숨기려는 할아버지와 대결 구도에서 진실이 밝혀지고...그런데 그런 부분이 없으니까. 자기 꿈을 실현하는데 가로막는 것도 없고.

 

전자양: 나중에는 엄마 편지가 자꾸 올 때, 무섭다고. (웃음) 그런 게 없으니까 뒤에서 음악을 미친듯이 올려도 하나도 슬프지가 않잖아.



봄봄: 느린 것도 알고 다 알겠는데, ‘진행’이 없달까. 특히 엔딩에 가면 음악에 몽타주에 다 좋은데, 여지껏 제자리를 계속 맴돌다가 끝에서 피치를 올리려고 하는 무리가 있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보면 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단락단락 나열해서 제시되는 것 같아요. 사진을 좋아했다. 도쿄 갔다. 돌아왔다... 그게 끝이었잖아요.

 

고리: 이제 정리가 되네. 이건 이야기 자체가 매력이 없는 이야기야. (웃음)

 

전양: 이미지와 이야기가 있다면, 어느 한쪽에 치우쳤다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 다만, ‘아 너무 좋다’ 하고 와닿지가 않는 게 문제지.

 

봄봄: 이미지도 이야기에 맞는 당위성이 있어서 맞물려가야하는데, 공간과 그 속의 인물이 나열되는 느낌이랄까요.



고리: 소재도 나쁘지 않았고 그림도 좋았는데. 이야기의 방식이 그것들을 망쳐놓은 거지.

 

이미지: 나는 이런 생각이 들던데. 아 이걸 두시간 짜리로 찍을 만한 여유가 일본에는 아직 남아있구나! 이런 순수한 시나리오에도 배우가 하겠다고 나서고 투자가 이루어지는구나. (웃음)

 

봄: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나요?


 

모두: ....

 


 

HD

고리: 어떤 이유에서 HD를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험상 단순히 제작이 용이하고 제작비를 낮출 수 있다는 이유로 선택하는 건 좋지 않죠.

 

봄봄: 확실히 필름과 디지탈은 공간감이 다르지 않아요?

 

고리: 룩의 문제지. 룩은 일종의 가치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영화마다 원하는 룩이 있는 거지. 필름이 낫다, 디지탈이 낫다 하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이 영화만 봤을 때는 썩 잘 쓰여졌다고 보는데 정말 활용을 잘 했느냐는 의문스러워. 실외 장면은 생각보다 좋은데 오히려 라이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실내 상황에서는 실망스러웠어.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랫한 감은 있지 않아? 그게 몇곳에서는 잘 어울렸다고 보고.

 

고리: 그건 분명히 있죠. 섬에서 도시로 들어왔을 때, 다르구나 하는 느낌은 잘 왔고.

무빙은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어요. 특히 컷 안에서 정보를 줄 때의 무빙. 교실 안에서 선생님과의 대화 씬이나 마늘장아찌, 편지 읽는 장면들. 카메라가 땅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는 무빙이 여러번 나오잖아요. 호흡 문제는 결국에는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는데, 뻔히 아는 상황을 올라와서 컷, 올라와서 컷이 반복되니까 짜증으로 이어지는 거죠.

 

봄봄: 전체적으로 호흡이 길다보니까 생략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까지 무의미하게 보여주게 됐다고 봐요. 결국 성공하지 못한 거죠.

 

전양: 나쁘지는 않은데 의미없는 무빙이라서.

 

고리: 호흡이 길다고 해도 그 안에서만큼은 움직임으로 다른 의미들이 나온다거나, 우리를 좀 더 즐겁게 해주면 좋은데 같이 늘어져버리니까. 망망대해의 해파리처럼. 이 영화 속 감정들은 파도지. 거센 감정이잖아. 근데 바다밑에서는 해파리가 이렇게... (웃음)

 

히요: ...오버로드? (무시당함)

 

 

전자양: 뭔가 HD의 강점, 장점이 있는 거잖아. 비교할 영화인지 모르겠지만 <하나와 앨리스>만 봐도 잘 활용했잖아 HD를. 흔들흔들하면서 점프도 많고. 이 영화는 나름 정적인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HD가 여기에 어울렸는지는 잘 모르겠어. 필름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고리: 선택의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판단은 어려운데, 스피디하게 가야할 제작환경이 아닌 이상, 세상을 관조하고 화면에 빛을 더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무래도 필름이 낫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면에서 보면 아쉽지.

 

봄봄: 이건 결국 아오이 유우 한 사람을 따라가는 이야기잖아요. 그만큼 단독이 중요하고. 거기에 이 느린 템포가 맞았나 하는 생각도 해봐요. 이야기는 아오이가 끌어가야 하는데 흐름은 저 뒤를 쫓아오는 느낌이 들죠. 차라리 샷 안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부딪히는 상황이라면 카메라를 쭉 뻗쳐놔도 좋았겠지만. 오즈 영화처럼.

 


 

고리: 이 영화에서 후진 부분을 HD라서 그렇다고 딱히 말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그런데 몇몇 지나치게 어두운 부분들은 아쉽더라구요. 얼굴이나 눈빛을 보고 싶은데 안보여주면... 과감한 것도 인정하고 꼭 인물 얼굴을 보여줘야 할 필요도 없지만 보고 싶은데 안보여주는 건. 의도도 아닌 것 같고. 실내 라이팅이 대부분 안좋은데 빛나는 순간이 있었어요. 카이지가 도쿄로 찾아왔을 때, 반지하 실내에서 아오이 유우가 의미심장한 대사를 하는데 밖에서 들어오는 자동차 불빛이 좋았는데. 빛이 들어와서 채워질 때는 좋았는데 빠져나가니까 참...

 

 

 

봄봄: 간간이 타이트한 앵글이 있었지만, 아오이 유우를 잡았다는 느낌이지 영화 속 인물을 따라가는 느낌은 없었달까요. 섬 부분이랑 도시 부분이 서로 달랐으면 그나마 리듬이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섬이라는 정적인 공간, 그 공간을 담는 카메라의 템포와 도시의 템포가. 분명히 공간마다 템포가 다를텐데 비슷한 리듬으로 가고 있잖아요. 그렇게 엔딩까지 가게 되면, 보는 사람은 이미 준비된 감정을 어느 타이밍에 가지고 들어가야할지 모르게 돼요.

 

고리: 그게... 이분들은 다르게 찍으셨는데, 표현이 안된 것 같아. (웃음)

 


 

주인공

고리: 내내 주인공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게 답답해요. 애매하게 사람들 속이는 것 같아요. 얘는 뭘하고 있는 건가 싶은.

 

봄봄: 유우의 무게중심이 제일 큰데, 막상 욕망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건 없는. 캐릭터가 사고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이야기 진행을 따라서 인물을 움직여놓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고리: 전자양은 얘기할 가치를 못느끼는 것 같은데. (웃음)

 

전자양: 의미를 찾자면, 애가 엄마 찾으려다가 힘들어하잖아. 자기가 힘들어서 꿈을 포기하려는 시기에 엄마가 잡아줬다는 그런 좋은 의미로... 그래서 섬으로 오는 것 같고. 동네 사람들이 선물 주잖아. 그런 것들이 다 그냥.

 

히요: 근데 마을 사람들이 선물은 왜 주는 거죠? 저는 마치 사당에 제물 바치듯이 주는 느낌이었어요. 아오이 유우가 여신(!)이 된 것처럼.

 

전양: 난 좀 뜨악하던데. 그게 처음에 사람들이 모여서 ‘부탁드립니다’ 하고 섬사람들이 모의를 한 거잖아. 애를 위해서. 중간중간 할머니 나오고. 연관선상인 것 같은데 그렇게 마지막에 뚝 나오니까 놀랬지.

 


 

일본영화

고리: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아요? 일본영화는 기술적으로. 바람이나 소품 배치나 보조출연까지도. 어떤 프로페셔널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편차가 있죠. 일본 영화는 그게 고르다고 할까.

 

봄봄: 저는 그게 단점이 될 수 도 있는 것 같아요. 빛나는 것이 있지만, 편차의 문제에서, 다른 면으로 보자면 차분하기만하고 밍밍한.

 

이미지: 어떤 그런 고착? 화석 같은?

 

히요: 일본영화의 특질아닐까요? 꽉 짜여진.

 

고리: 스탭들이 기본적인 퀄리티가 고르(게 보여진)다는 거죠.

 

이미지: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긴한데. 혹시 남의 떡이 커보이는 건 아닐까?

 

고리: 그럴 수도 있죠. 얘네들이 우리나라 영화를 봤을 때 어떻게 느낄지 궁금한데.



이미지: 역시 한국사람 정서와는 다른 게, 역시 와사비 맛이랄까 왜간장 맛이랄까. 90도 인사나 투철한 직업의식을 보여주는 대사가 흔하게 끼어드는 것도 그렇고. 집단적으로 선물주는 것도 우리 정서에는 전체주의스러운 오바지만 그 부분은 히요의 얘기를 들으니 뭔가 한겹 더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 같네.

 

 


 

마무리 한마디씩

영화의 2/3는 아오이 유우. 그녀가 아니었다면 어쩔 뻔 했어.

단순히 얘기할 순 없는데, 좀 아쉽다 영화가.

한류의 영향으로 일본에 신파물이 쏟아진다는 루머가 있다는데요?

재능있는 스무살 꽃처녀는 무조건 섬에서 나와야 해!



 

*다음 회에는 영화 선정을 잘해서 보다 알찬 영화보기로 만나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