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 혹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junsway
2007.02.28 12:30:09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에 쫓겨 서쪽으로 서쪽으로 쫓겨가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이념이나 그 이념에 대한 확신이
그들에게 온전하게 붙어 있었을지 항상 의문이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들어오자
국민당 정부가 정신없이 일본것들과 싸움할 때
다시 세를 규합해 동으로 동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공산당의 역습은 세계사의 명장면 중의 하나이다.
그들이 지나는 마을마다 화장실을 개량해 주고,
길을 닦아주고, 환자를 치료해 주자
촌의 사람들이 묻는다.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오?"
그들이 쉽사리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 없었겠지만
마지못해 자신들이 누구인지 말했을 때
촌사람들은 그것이 국민당에서 이야기하는
붉은 악당이 아니라 새마을 사업을 하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로 오인한(?) 이상 게임은 거기서 이미 끝나버렸다.
반대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껍데기만 남고 사람들의 마음을 떠날 때
인도적 차원의 자본주의의 민간단체에 의해
그 붉은 세력들이 속수무책으로 넘어갔듯이
국민당이건 공산당이건 혹은 그것이 누구의 계급적 이해에 의해서이건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화장실을 고쳐주는 사람에게
이념을 떠나, 신념을 떠나 우리는 온정을 느낄 수 있다.
껍데기만 남은 공산주의 세력이건,
말만 앞세운 사회민주주의 세력이건,
철없는 386세대의 불장난 같은 정치건,
교활한 구세대 기성세대이건 간에.....
우리는 다시 이념과 구태의연한 명분을 초월해
기본기가 훌륭한 세상을 꿈꾸며 우리의 현실을 환기해 본다.
중세에 멕시코에서는 전쟁터에서 식량을 보급하기 위해 가족들이 살림도구를 챙겨
후방에서 밥을 짓고 살림을 했다고 한다.
그 고생과 번거로움이야 말로 다할 수 없었겠지만
가부장적 사회의 남성 권위주의에서 집안에 짓눌렸던 여자와 아이들이
24시간 가족들이 모여 이동해 가며 마치 여행을 하듯 밥을 해먹고 외지를 구경하며
'아 이게 정말 사람사는 것이겠구나.'라며 느꼈다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더 낭만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선에서 아버지들이 창이나 총에 사지절단이 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표현이다.
요새는 정말 이상한 생각이 든다.
1990년대 중반, 기업자본으로 무장한 새로운 프로듀서들이
수공업적 한국영화계를 일신하고 르네상스를 주도했다면
그것이 지금의 한국영화계의 부인할 수 없는 토양을 이뤘다면....
그리고 이제 제대로된 씨를 뿌려야할 시점이 된 것이라면....
지금의 영화계 권력을 움켜쥔 그 분들이 과연
우리가 기다리던 그 씨뿌리는 사람들인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만나보면 열정과 순수함이 넘쳐나는 지금의 제작자들....
인간적이고 냉철하고 명석한 두뇌로 현시장을 판단하는 그들이라도
웬지 왕건 앞에서 미쳐버리고 마는 궁예처럼
그리고 영원히 앞을 볼 수 없이 눈 한쪽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요즘이다.
마틴 루터나 칼빈이 카톨릭의 부패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새로 도래할 자본가 계급과 손을 잡고 구세대의 영주와
카톨릭교회를 붕괴시켰지만....
지금은 그 어떤 종교보다도 부패하고 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이러니하다.
영원한 강자라고 믿었던 시네마서비스도
젊은 영화인들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었던 싸이더스도
웰메이드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었던 MKB도
그 정점에서 기본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허둥대며 신음과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개런티를 챙겨주고, 밥과 술을 사주는 것도
선배들의 기본적인 의무이기도 하지만
10년 앞을 내다볼 영화적 미래를 제시하는 것 같이
중요한 것이 있을까?
우회상장이니 몇백억 펀드를 겁도 없이 만들어
물쓰듯 써버린 사람들이
실패의 책임을 한국영화계의 구조니
정치며 불경기에 떠넘기고...
비만의 몸집을 웅크리며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청승을 넘어서
범죄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
과연 한국영화계도 새로운 혁신적 세대들이 나올 수 있을까?
마틴 트레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