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라
junsway
2006.06.10 18:20:55
가끔 오래전 어떤 한 순간이 떠오르며 상념에 잠길 때가 있다.
3년전 난 에어컨이 없는 한 사무실에서 땀을 흘리며 데스크 탑으로 문서를 만들고 있었지.
10년 전에는 산속의 한 집 툇마루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던 적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경찰서 유치장에 처박혀 있었던 때도 있고.....
제주도 협제 해수욕장 해변에 누워 제주를 떠나는 비행기를 보다 그대로 잠든 적도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제 갓 스물인 한 여자아이와 여관 침대에 같이 누워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호주에 갔을 때는 해변가 야외 주차장 스포츠카 안에서 오랄섹스에 열중인 호주남녀를 본 적도 있고
중학교 연합고사 후에 단체로 간 서울대공원에서 호랑이가 점심식사로 살아있는 토끼를 먹는 것도 보았다.
인생을 축복해야 할 신혼여행 때 누워있던 태국 푸켓의 한 해변가는 몇년 뒤 쓰나미로 쑥대밭이 된 후 삶을 끝마쳐야
했던 원혼들이 떠돈다는 소문이 무성하기도 했다.
중학교때는 4명의 부랄친구들이 단체로 동네 비뇨기과에서 부랄까는 포경수술을 했고
첫사랑의 여자를 아주 우연한 장소에서 10년에 걸쳐 세번이나 만나기도 했다.
술처먹고 일주일동안 이대앞 거리와 까페를 어슬렁거릴 때도 있었고......
동사무소 방위병 때에는 예비군훈련통보서를 돌리러 들어간 집의 예비군 아내가 너무 예뻐서
아내가 도장을 가지러 간 사이에 어린 딸에게 "아빠라고 불러 봐." 했다가 낭패를 당한 적도 있다.
삶은 쉼없이 이어져 있는데 자꾸 찰라적인 이미지가 머리속을 떠돈다.
생각해 보면 그 찰라적인 순간 순간에 내가 정말 제대로 살기나 한걸까?
너무나 헤어지기 싫었던 사람이나 순간은 그 당시에도 찰라에 없어진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그 사람과 똑같은 장면과 느낌을 만들려 해도 도저히 만들어 지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에게서 멀어져 간다.
20대 때에는 그 아픔과 고통 때문에 많이 울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참을성과 인내하기 좋은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슬프다. 어떤 상황에 휩싸이면서 아무 손을 쓸 수 없을 때 참 서글프고 난감하다.
그러면서도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행운과 인연에 만족하며 살아가긴 하지만.....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는 어쩔 수 없는 이러한 운명의 찰라에 관한 것이다.
픽션의 세계에서 제구성하고 싶은 마음, 현실보다 더 풍부한 감성과 드라마틱한 삶을 그리고 싶다는 염원.
그러한 것들이 마법처럼 글쓰기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시간과 찰라의 이미지를 사랑하고 싶다. 그 이미지가 동영상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의미로 내 가슴에 새겨지기를
항상 간절히 원한다. 많은 시간을 들여 단 하나의 이미지를 얻기 보다는 많은 이미지를 버리더라도 그리고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라고 괴로워 하더라도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갖는 그러한 인간을 영화 밖..... 픽션의 밖에서
꿈꾸는 것이다.
마틴 트레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