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살다가 힘들어지는 때에 숲을 그리워 했습니다.
옛사랑을 추억하듯 숲을 추억했습니다.
어느날 그녀가 날 찾아왔습니다
숲을 혼자 끌어안고, 아니. 온 숲에 겨우 나 하나.
그렇게 숲에 끌어안겨 누워있는 느낌은, 지금 제가 알고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엄마를 통째로 혼자 독차지한 아기는 이해할 듯 한 그런 느낌입니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하듯,
그냥 그 안에서 죽어도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내 영혼을 발가벗기어 숲에게 내어 놓으면.
한줄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 내 시야로 쏟아지는 반짝이는 햇살이
진하게 올라오는 축축한 흙내음이.
잊을뻔 했던 숲의 내음, 흠뻑 날 젖게 하는 축축한 숲의 내음이
너덜거리는 제 영혼을 맑게 씻어 줍니다.
숲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텅 비어 있어주어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채우려 하지 않아도 이미 숲은 숲으로 가득합니다.
숲으로 가득찬 숲에 제가 걸어 들어가도 얼마든지 자리를 내어 줍니다.
그런 숲이 고맙습니다.
숲은,
자신을 찾아온 나그네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떠날 때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숲은 나그네가 다시 저를 찾아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숲을 떠나는 저도 숲을 되돌아 보지 않습니다.
아직도 제 몸에서 숲의 내음이 베어있습니다. 한동안 이 도시가 그 내음을 다 지워내면
저는 다시 숲을 찾아 갈 것입니다.
아무런 말없이 날 맞아 주는 숲이라야 숲입니다. 늘 그렇듯 가득 차 있고, 비어 있는 숲.
그 숲을 찾아간 나그네는 숲처럼 비워내고, 또 가득 채워옵니다.
숲을 다녀와 무슨말이라도 하고 싶어 낙서를 끄적이는 헤르메스는 이미 숲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것임을 압니다.
창 너머 숲이 보이는 곳. 내 영혼이 쉬고 온 자리.
내가 사랑하고 온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