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를 나서며...
pearljam75
2006.01.03 19:30:27
박살난 차를 뒤로 하고 가장 두려운 것은 저 인간들이 나이롱 환자 놀이를 하면서 합의금이랍시고
돈을 왕창 왕창 뜯어내면 어떡하나,였다. ...물론 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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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9일, 한 해가 기울어가는 마당에 외식이나 한번 할까?
나는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아빠가 입원해 계시는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도 간호하시느라 병원에 둥지를 트신지 오래다.
병원 근처에서 갈비를 먹고 다시 엄마, 아빠를 병원에 모셔다드리는 길.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다가 앞에 서있던 마을버스가 좌회전 하길래 따라 들어갔다.
그러다가 쾅! 번개가 치는 가, 천둥이 치는가, 와! 이게 뭔가 싶은 데 엄마의 안경이 날아갔다.
내려서보니 직진하던 차가 동생 차 조수석쪽 문짝을 왕창 박아서 뭉개트려놨다.
당시의 충격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난 이제 영원히 운전을 못 할것 같다.
뒷문짝도 너덜거리고... (지금 공업사에 있는 차는 프레임이 나가서 꽤 오래 손을 봐야한다고 했다.)
수술 후 회복중이던 아빠와 머리를 차체에 심하게 부딪힌 것 같은 엄마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임을 확인하고는 저기서 달려오는 상대편 차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어디 다치신데 없어요? 라고 말문을 트려했지만 달려오는 청년 셋은
“아이씨, 지금 뭐하는거에요!” 외쳤다.
뭐야, 이건? 얘네들 무서운 애들인가?
경황이 없는 가운데 감정만 격해진 두 팀은 신호싸움을 벌였다.
상대방 차 청년들은 당장 경찰을 불렀고 나는 ‘차보다 사람이 먼저’ 보험회사를 불렀다.
응급차가 먼저 달려오고 상대방 남자 하나가 목에 보호대를 댔다.
엄마는, 저것들이 쇼하네? 하면서 아빠랑 응급차에 올라 아빠가 입원해 계시는 병원 응급실로 가셨다.
경찰이 오고 신호가 좌회전이었냐 직진이었냐 실랑이를 벌이다
상대편은 목격자를 확보했다며 그 사람의 명함을 주고 우리는 모두 경찰서로 가서 사고 접수를 했다.
사고 당시, 같이 일하는 작가님과 대본 때문에 통화중이던 나는 신호를 전혀 보지 못했다.
나는 동생이 좌회전 하는 마을버스를 따라 들어가면서 신호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상대편 남자들의 인상이 험악하지 않은 걸로 보아 우리가 잘못을 인정,
사과를 하고 보험처리를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앞좌석에 탔던 아빠가 신호를 제대로 보셨다면? 저들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며? 정말로 못된 애들이면?
...우리가 왕창 덤택이를 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동생은 엄마의 지시에 따라 신호를 봤다고 박박 우기고 앉아있고.
엄마는 응급실에 들어가서는 고의적인 자해공갈단들한테 우리가 재수없게 걸린거라면서
경찰서에 와있는 나와 동생 전화에 불이 나도록 소설을 쓰셨고,
오랜 운전 경력의 아빠 역시 우리의 과실을 인정치 않으셨기에 뭐가 진실인지 무척 혼란스러웠다.
엄마의 말대로 쟤네들이 신호위반을 했는데 우리가 덤탱이를 쓰는 거라면,
보험처리 이후에 형사처벌 때문에 합의금으로 수천만원 뜯기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도 생겨났다.
서로 신호위반했다고 박박 우기다가 목격자 확보를 위해서 각자 현수막을 걸고
한 달정도 기다려 정황을 살피고 그 다음에도 진실이 가려지지 않으면 재판을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1년이고, 2년이고,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라고 담당 교통순경은 말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그 짧은 시간,
나는 변호사 개업한 동창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려보았다. 뭐, 몇 안되네...
아직도 고시촌에 있는 애들이 수두룩하잖아?
...그럼? 검사임용 받은 애가 누가 있더라? ...아이쿠. 그 새끼랑 친하게 지낼 껄!
어째꺼나 확신이 있다면 끝까지 가봐야지,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니까!
1월 1일 아침 다시 경찰서에 오기로 약속을 하기로 헤어졌다.
응급실로 와서 부모님의 상태를 다시 살피고 우리 가족 누구도 신호를 보지 못한 사실을 확인했다.
엄마는 평생 속고만 산 사람처럼 합의금을 노리는 자들의 소행이라고 소설을 쓰셨고
우리는 오바하시지 말라고 진정시킨 후 신호위반의 과실을 인정,
보험처리 후 벌금만 물면 따로 합의문제가 남지 않는다는 것을
친분이 있는 경관님과의 통화로 알게 되었고
마음을 다독이며 그제야 병원으로 달려온 오빠에게 사건의 전말에 대해 얘기했다.
오빠는 현장 신호등 체계를 보더니 동생이 신호위반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상대방 차에 타고 있던 청년들은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일하는 분들이었는데 나보다 서너살씩이 많았다.
그네들도 송년회 하러 가다 사고가 나서 연말이 짜증났을텐데
사고 당시 좌회전 신호를 보았다고 우기는 우리 가족을 황당하다는 식으로 쳐다본 그들....
엄마는 목과 머리가 아프다며 입원하고 동생은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고
나는 오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일했다.
다다음 날 목에 파스를 붙이고 산울림 콘서트에 갔다왔다.
맨 앞자리에 앉아 폴짝 폴짝 뛰었다. 물론 헤드뱅은 할 수 없었다. 이 얼마나 보람찬 한해의 마무리인가.
2006년 새 아침, 다시 경찰서.
동생은 신호를 보지 못하고 좌회전을 했음을 인정하고 상대방 청년들은 받아들였다.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느냐는 교통순경의 말에 사과만 하면 청년들은 형사처벌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과만 하면 될 것을... 동생 옆구리를 쿡 찍으며 사과하라고 하고 나도 사과했다.
형사문제는 그들이 합의를 해줌으로 벌금에 감면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차와 신체에 대한 민사문제는 차보다 사람이 먼저인 보험회사가 처리해 줄 것이라고 했다.
순순히 합의서 서명란에 지장을 찍어 주는 그들.
그때... 그들의 엄지손가락 손톱 밑에 기름때를 보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고의던 과실이던 잘못은 우리가 했으면서 확신도 없으면서 혹시 이 사람들,
흉포한 사람들일까봐, 합의금 뜯어내려고 작정한 나쁜 사람들일까봐 몸을 사리고,
그래 너희들, 정비소에서 일하는 무식한 애들이지? 니네가 아는 변호사 있니?
아는 검사 있니? 아는 경찰 있니? 끝까지 한번 가 볼까? 그런 못되고 오만한 마음을
5초 이상 먹었던 내가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같잖은 인맥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악랄하고 흉포한 상상력을 발휘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세상에 이런 썅년이 어딨니?’
새해아침부터 경찰서에 오게 만든게 너무 미안해서 점심식사라도 하시라고
지갑에 있는 현금을 탈탈 털어 3만원을 쥐어드렸다.
다 지난 일인데 무슨 돈이냐고 뿌리쳤지만 떡국이라도 사드시면 맘이 편할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막 떠밀었다.
이러는거 아니라고 계속 손사래를 쳤지만 봉투에 넣어드리지 못하고
그냥 드려서 미안하다고 다시 떠밀어 보냈다. 청년들이 다 가고나서 우리는 다시 담당경찰 앞에 앉았다.
동생은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사건 경위서를 작성하며
2006년 들어 처음 시행되는 전자지문을 찍는 영예를 안았다.
... 경찰서를 나서며 동생은 아까 지장 찍는 그 청년들 손톱 봤냐고 물었다.
손톱밑의 기름때를 보며 동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그렇게 악의없이 열심히 사는 착한 청년들을 혹시 나쁜 사람은 아닐까, 해코지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의심많은 자매는 이제 매달 엄청나게 점프할 보험료 걱정에 잠 못 이룰 것이다.
사필귀정,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그렇게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