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었네

image220 2004.11.29 10:07:37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지난 8월 4일 기도폐색으로 쓰러져 분당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온 한국시단의 원로 대여(大餘) 김춘수(金春洙) 시인 이 29일 오전 9시께 타계했다. 향년 82세.
김 시인은 저녁식사 도중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호흡곤란 증상과 함께 뇌가 손상돼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넉 달째 투병생활을 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김 시인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유학해 니혼(日本)대학 예술 학과 3학년에 재학중 중퇴했으며, 귀국 후 중고교 교사를 거쳐 경북대 교수와 영남 대 문리대 학장, 제11대 국회의원,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1981년부터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자유아세아문학상, 경남ㆍ경북문화상, 예술원상, 대한민국문학상, 은관문화훈장, 인촌상, 대산문학상, 청마문학상 등을 받 았다.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시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했 고,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에 이어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처용단장' `쉰 한편의 비가' 등 시선집을 포함해 25권의 시집을 남겼다.

그의 문학세계를 총정리한 `김춘수 전집'(현대문학ㆍ전5권)이 지난 2월 출간됐 으며, 이후 발표한 시를 묶은 신작시집 `달개비꽃'과 산문집 1권은 출간을 보지 못 한 채 세상을 떠났다.

부인 명숙경(明淑瓊) 씨와는 5년 전 사별했으며 유족은 영희(英姬ㆍ59) 영애(英愛ㆍ57) 용목(容睦ㆍ56ㆍ신명건설 현장소장) 용옥(容旭ㆍ54ㆍ지질연구소연구원) 용 삼(容三ㆍ52ㆍ조각가) 등 3남2녀.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장지는 부 인이 묻혀있는 경기도 광주 공원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