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기술

junsway 2004.11.15 12:12:41
1. 연애법을 잘게 쪼개는 법.

아는 여자프로듀서가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이라는 책을 작년에 소개시켜 주었다.

꽤나 재미있게 읽었고, 몇몇의 구절과 상황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김모 작가가 감독 데뷔하다 엎어진 작품도 '유혹의 기술'이라고 하던데 계속 진행되고 있나?

이 책의 구성은 대략 이렇다.

마치 사상의학처럼 인간을 몇가지 부류의 타입으로 분류하고 그런 인간들은 이런 것이 약점이니

이렇게 꼬셔라.... 그리고 좀 더 디테일하게 이런 방법들을 두루 쓰면 이성을 꼬시거나 비즈니스나 기타

인간관계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정말 그럴 수 있으리란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대학시절, 과에 연애박사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의 문제는 실전보다 이론에만 너무 밝다라는 게 문제였다.

많은 남자녀석들이 그 연애박사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 결과 나름대로 꽤나 성공해서 결혼에 이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연애박사는 정작 여자들 앞에서는 그야말로 꿀먹은 벙어리였다.

이런 친구도 있다. 가령 술자리... 더 구체적으로 나이트클럽에 10여명이 몰려간다. 여자가 한 3명정도 남자가 7명정도,

그중에 한 남자애가 한 여자애를 찍는다. 오늘밤 데리고 자리라. 별별 지랄 육갑에 온갖 감언이설로 여자를 녹여놓는

다. 나머지 8명의 남녀는 오늘반 두 남녀가 만리장성을 쌓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몇일 뒤 학교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자중 전혀 여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한남자애가 그 여자애와 잤다는 것이다.

너무도 궁금해 그 잔 남자녀석에게 비법을 물으면 '여자는 신비스런 구석이 있는 남자를 좋아해. 기회를 보고 있다

확신이 드는 시점에서 한방을 날리지.' 듣기에 따라선 대단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현실과 다르다는 사실을 몇달 후

에 알게 되었다. 이런거다, 그녀석 말은 맞는 말이지만 술을 마시는 몇시간동안 그녀에게 계속에서 의미심장한 표정과

행동으로 인상적인 기억을 남긴다. 정말로 여자가 보기엔 그녀석의 행동은 신비로운 매력이 있다. 싸게 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어렵지도 않는데 자꾸 뭔가를 흘린다. 여자는 자기에게 추근대는 녀석에게 시간이 갈수록 자꾸 매력이

떨어진다. 무료하고 지루할 즈음, 그녀석이 다가와 한방을 던진다..... 그리고 여관으로......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은 그런 잡다한 유혹에 대한 일종의 백과사전같은 책이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쓸 때

이 책을 많이 참고하는 데 그때마다 그녀석이 생각난다. 이 책은 그런 그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을 잘개 쪼개어 놓은

책이구나. 그래서 부분부분은 기가막힌데 실전에서는 쓰기 좀 그렇단 말이야.... 이 이론들을 종합해서 하나의 인격체에

심어줄 수는 없을까?



2. 타인을 이해하는 혹은 타인을 사랑하는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몇가지 인간관계의 특수한 비밀들을 깨닫게 된다. 그 중에서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 하나의 깨달음은 한 개인은 타인의 내면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라는 사실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보면 둘째 아들인 브레드피트가 도박을 하다 살해당하고 마지막에 죽기전 목사인 아버지가 설교를 한다. 큰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를 잊지 못한다. "우리는 한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

다."

우리는 저마다 타인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속속들이 꿰뚫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다 바보같은

생각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타인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기 위한 교묘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물론 많은

부분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한 개인이 가진 본질적 존재감은 결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유혹이란 타인을 이해하고 그 타인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이용해 그에게 나를 각인시키는 행위라는

좁은 의미를 떠나보자. 우리는 정말 한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완전히 사랑함으로써 내 의무를

다하는 성실한 자세를 갖추자. 이게 더 큰 유혹의 기술이 아닐까?



3. 시나리오의 작법과 유혹의 기술

여러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면서 꽤나 많은 시나리오를 읽게 된다. 야, 죽인다 하는 시나리오도 있고, 이거 정신병자가

쓴 거 아냐?라고 속으로 분노할 때도 있다. 내가 쓴 시나리오가 후자가 될까봐 가끔 경기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유혹의 기술은 시나리오 작법과 많이 유사하다. 시나리오를 공부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처음에

작법이고 테크닉이고 지 혼자 들떠 써댄 작품은 거칠고 앞뒤가 안맞지만 사람을 끄는 순수함과 열정이 숨어있다.

그러다 어느날 시나리오 작법을 접하게 된다.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처럼 시나리오의 기술적 문제를 아주

잘게 잘게 쪼개어 놓는다. 앤드류 호튼의 '인물 중심의 시나리오쓰기'까지 가면 정말 시나리오 작법이 스스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의 부류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작법에 빠지면 최소한 몇년은 고생한다. 자꾸 분석하고 작법을 연결시키고, 지우고 창작의 열정은 이성의

날카로운 족쇄에 묶여 감성을 마비시킨다. 나도 한 7,8년을 그 작법에 빠져 있었다. 그 기간동안 쓴 글들은 한마디로

쓰레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악하고 작위적이고 심지어는 파시스트의 계몽선언문 같기도 했던 그 글들....

다시 감성으로 돌아왔을 때 난 당장 좋은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너무도 자유로워진 나를 발견했다. 아, 내가 쓸데없는

부분에 빠져 전체를 보지 못했구나.

작법은 필요하다. 천재가 아닌 이상 테크닉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유로워진

다. 명작을 쓸 수 있다라는 말이 아니다. 한마디로 수련기간이라고 해두자.

그래서 결론적으로 시나리오 작법과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은 너무도 닮아 있다. 그러나 그 책을 읽고

누구를 유혹하겠다는 생각은 지독한 오류다.

문제는 수련된 단련된 감성이다. 그 뜨거움이 타인을 이해하려는 건방진 태도를 버리고 사랑하려는 그런 태도가

있으면 그때 상대방은 넘어오리라는 생각, 나 또한 이제 그 방법론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결심인.......

추운 겨울을 코 앞에 둔 지금.... 그런 따뜻한 마음이라도 지피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모두 유혹의 마스타가 되길 기대하며......




취생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