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테오 앙겔로풀로스를 보다. 환장.

pearljam75 2004.10.15 15:5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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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에 집을 나가 금요일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가보는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 바다, 익사해서 부산에 묻히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으나.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77년작 <사냥꾼들 The Hunters>을 보았다.
165분, 첫장면부터 내 두눈이 놀란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빠지게되었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대부분이 one scene/ one cut 으로 기가막힌 롱테이크를 선보였는데
매 씬마다 감독의 화가같은 지구력이 느껴졌다.

저 헌팅, 저 색감, 저 소품, 저 구도.... 으아아아아...... 미장센이여.
거대한 스크린에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인상파 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나는 그날 밤 잠들기 전에 같은 숙소의 동료에게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화가일꺼야, 화가야. 화가가 확실해!”라고 소리쳤다.
음악은 또 어떤가! 미친다. 미쳐.
쉽게 잠들지 못하고 오랫동안 영화의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자주 뭔가에 미치곤하는데 이번 부산에서는 그의 천천히 움직이는 그림들에 미친것이다.
아직도 몸이 뜨겁다.


이틀 후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했다.
일흔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정해보였고 눈빛은 강렬했다.

<당신들은 영화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영화도 당신들을 필요로 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할것이다....>

이 그리스의 거장감독, 정말 날 환장하게 만드시는군.
영화가 날 필요할 수 있게 영화에 더 많이 아부하며 살아야겠다.

<영화가 우리를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구해야한다.
플라톤이 말했던 것처럼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들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아야한다.>

질의문답시간에 한 여학생이 감독님의 영화는 마네나 램브란트를 연상시킬만큼
멋진 그림같다라고 말하고 회화와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어렸을적부터 화가가 되고자했으며,
지금 영화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면 분명 화가가 되었을것이라고 답했다.

아름다운 화면의 배경이 되는 로케이션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 장소가 우리를 선택한다.
우리가 각자 다르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느낌, 생각을 통해 장소가 우리를 선택하는것이다.

그는 여행광이다.
그를 가장 흥분시키는 때는 시나리오를 쓸때도, 편집을 할때도, 완성된 영화를 볼때도 아닌
촬영의 순간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여행으로 표현한다. 그에게 있어 여행과 영화, 삶이 모두 이콜인것이다.

나도 질문하려고 손을 들었지만 마스터 클래스 시간은 짧았다.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달려나가 싸인도 받고, 가까이서 사진도 찍었다.

(언제 다시 뵐수 있을까 하는 나의 마음은 다음 날, 뻘쭘해졌다.
남포동 PIFF무대에서 앙겔로풀로스감독의 핸드프린팅 행사를 보며
또 한번 가까이서 뵙고 가슴 떨려했으니까 말이다.)

230분짜리 <유랑극단>이나 예전에 개봉했던 <안개속의 풍경>등을 보지 못했다.
그외 그의 영화들을 다 보고 오지 못해서 난 너무 아쉽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과 그의 영화에 압도당해버린 부산에서의 나는 하루종일
약먹은 사람처럼 들떠있었고
5박 7일의 부산영화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그 뜨거운 마음을 식히느라 철도청 아저씨가 가져다주는 차가운 캔맥주를 서너개 작살내야했다.


아, 그리워.......죽겠다.



꼬리글...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안에서 우리가 불쌍하게 소주한병을 나눠먹고 있자,
젊은 시절엔 운동권이었으며 영화광이었던
50대 후반의 사업가 아저씨가 청춘이 좋다며,
영화는 스태프들이 만들어가는거라며 호기롭게 캔맥주를 잔뜩 사주시고는 동대구에서 내리셨다.
평소 착하게 살아서 그런 아저씨도 만나나보다. 클클클.


내가 본 영화들

<2046>왕가위
<비포 선셋Before Sunset>리챠드 링클레이터
<빈집>김기덕
<모터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le Diaries>월터 살레스
<인생은 기적처럼 Life is a Miracle> 에밀 쿠스트리차
<수퍼사이즈 미 Super size Me>모건 스펄록
<이조Izo>미이케 타카시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코로에다 히로카즈
<애플시드Apple seed>아라마키 신지
<세상밖으로 Out of this world>사카모토 준지
<하와이의 꿈 Holiday dreaming>쑤 푸춘
<귀향 The return> 안드레이 즈비야긴체프
<미낙시:세도시 이야기 Meenaxi:Tale of 3cities> M.F 후세인
<달빛없는 밤 The Moonless Night> 아르탄 미나롤리
<야경 Night Scene> 추이 즈언
<부미의 모험Homeland>강사르 와스키토
<거짓말Trace of stones>프랑크 바이어
<겨울날 winter days>카하모토 키라치로 외
<사냥꾼들 the Hunters> 테오 앙겔로풀로스

200편이 넘는 영화중에 물리적 한계로 보지못하고 온 영화들이 너무 많아
느무느무 아쉽습니다.
밥만 먹고 때론, 밥도 굶고 영화보기에 매진했건만.

Waiting for the 10th PI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