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중.

pearljam75 2004.10.03 01:11:59
몇몇 대학의 실력있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에서 석사를 하는 것을 인류사상 최대의 '돈지랄'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도 그럴것이 나와 같이 졸업하던 아해들중 A, B는 각각

남친이 카이스트 박사인데 자기도 좀 맞추려면 (혹은 시댁 눈치 좀 덜 보려면)
석사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유로,

또는 졸업하고 취직은 하기 싫고 집에 돈 좀 있고 해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학생신분이나 좀 더 누려보자는 이유로 대학원 시험을 보았다.

그들은 학부시절, 출석만 부르면 땡땡이쳤고,
C학점만 받아도 잘나왔다면 박수를 치던,
공부와은 담쌓은 학생들이었고,
나와 제일 친했고,
도서관에선 볼 수 없던 얼굴들이었고

그들이 어떻게 졸업에 필수인 텝스 기준점수를 습득하고
전산시험을 통과하고 전공졸업고사를 무사히 (재시험엔 몇과목 걸렸지만) 패스하고
제때 졸업을 했는지는 웃음이 나올 일이었다.

어째꺼나 우리나라 대학은 졸업을 아무나 졸라 막 시켜서 문제다.

그들은 당근, 대학원 시험에서 떨어졌다.

요즘 자주 국회도서관을 산책삼아 방문,
(늘 정문에서 검문을 당하지만! 나, 정말 운동권같이 생겼나보다.
국보법 폐지 찬,반 시위나 전교조들이 어떤 문제로 국회앞은 늘 살벌하다)

자료들을 찾으면서 나의 대학원에 대한 편견이 35% 이상은 맞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대학 영화과에서는 20 페이지도 안되는 본문에 시나리오 한부,
녹음대본 한부를 첨부해서
100페이지를 넘겨서 낸 것을 석사논문이라고 도장찍어주었고
(우리가 다 아는 영화쪽 분의 것이다.)

어떤분야에서는 20여년간 한가지 연구측정도구를 가지고
좁은 땅덩어리에서 연구대상지역만
요리조리 바꿔가며 울궈먹은것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석사를 해봤자,
외국에 나가면 인정해주지 않고 다시 석사를 밟아야하는 것이
그 분야 학문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느껴진다. 나는.

이쯤에서 잠깐,
illegal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 ‘불법적인’ 이란 말을 직접 쓰려니 너무 쪽팔리고 괴로워서 왠지 느낌이 덜 오는 illegal을 써본다.-
내가,
남이사 한국에서 석사를 하든, 박사를 하든, 박사 할아버지를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 다만 돈이 아까워서 그럴 뿐이다.
(난 illegal한 일을 해야 할 만큼 돈이 아쉬운 사람이니까.)

결국, 나도 이 논문, 저 논문 기웃거리며 결국엔 편집의 예술가로 변신해야할테니
누가 누굴 평가하고 비난하겠는가?


검색용 컴퓨터에 앉아 자료를 찾다가
잠깐 딴 생각이 들어서 떠오르는 사람들의 논문을 찾아보았다.
PDF등 전자파일로 된 것은 검색대 앞 모니터에서 바로 볼 수가 있다.

김영하의 경영학 석사논문 <언론기업의 비정규노동과 노동통제>

냉소적인 듯 하지만, 뭔가 늘 중심 밖으로 비껴가 있는-표현하기 모호한- 냉철함과
논리의 지구력이 돋보이는 그를 아니 그의 소설을,
눈물과 콧물과 동정심이 너무 많은 나는 꽤 좋아한다.

누구나 한번씩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반대 성향의 사람에게 끌리지 않는가.

석사논문을 내면서 ‘감사의 말’을 논문 앞머리에 넣는 사람은 별로 없거니와(그 학교 전통인가?) ,
국문학 논문도 아닌데 기형도 님의 시로 끝맺음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
던 꿈의 짐들로 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 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기는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수운 믿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냐.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가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
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
를것인가. 내 생 뒤에도 남아 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
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 할 나의 죽음
들.




연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밀착인터뷰 방식과 관련 문헌연구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있다.

탄탄한 연구과정과 더불어,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라 그런지
(나는 가끔 뜨거운 머리, 뜨거운 가슴인데!)

냉소 밑바닥에 깔려진, 보호해주어야 할 약자에 대한 사랑이 있으니,
어찌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인 김영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상력도 발랄한 그를. 나는.

딱딱할 것 같은 경영학 논문이 그의 소설만큼이나 재미지다.


그를 생각하며 기쁜 맘으로 변혁 감독의 <주홍글씨>를 기다린다.
조용히 놀래키던 각기 다른 세 개의 단편소설이 하나의 시나리오로 탄생하고
그것이 다시 영상화 된 것을 보는 느낌은 과연 어떨까?



재밌는 논문은 또 많다.

<김기덕감독의 작가성 연구: 파란대문의 미장센을 중심으로>
<작가주의 재해석론에 의한 김기덕의 작품 세계론>
<김기덕 감독 영화의 옹호와 비판에 관한 변증법적 고찰>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의 시공간 연구>
<홍상수 감독 영호의 일상성에 관한 연구>

어째꺼나 작가 트로이카 시대는 영화학도들에게 학위를 받을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

앙드레 바쟁은 꼭 이론적 토대에 들어가 있고,
얼굴없는 미녀 김혜수의 언론정보학 석사논문은 저작권 개방까지 되어서 올라와있다.
<연기자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관한 연구>


하여간 이 분야 저 분야, 논문들 구경하다보니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대한민국에서 석사를 하는 것은 사상 최대의 돈지랄이지만.

그러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