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제, <꽃피는 봄이 오면>, 그리고 생일파티.

pearljam75 2004.09.22 07: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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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오바이긴 하지만, 마음을 정하고, 故 정은임 아나운서의 49제에 갔다.

오전늦게 일어나 아점을 먹고
집에서 청량리, 청량리에서 대성리, 대성리에서 다시 북한강 공원까지
먼길,

비는 그녀가 떠나던 날 처럼 억수같이 쏟아지고,

제를 시작할 즈음엔 말갛게 날씨가 개었다.


사진속의 부녀를 본다.

너무 이쁜 딸을 먼저 보낸 저 잘생긴 아버지는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스쳐
할아버지의 모습이지만 여전히 번듯하시다.
어르신은 울만큼 우셨는지, 딸을 보내는 마지막 날에는 가족들과 그녀의 팬들을 챙기는 여유를 부리셨다.
술은 산소의 여러군데 뿌리라고, 한 쪽에만 뿌리면 한군데만 취한다고 웃으신다.

그녀와 너무나 닮은 자매분들을 보고 있자니
그것은 또 다른 고통이다.

가족만큼 먼저 보낸 사람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피를 나눈 사람들의 사별.
그 깊은 슬픔은 무엇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가족들의 마음이 헤아려지는 듯 나의 눈물샘은 제를 행하는 동안 마르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그녀의 영정사진앞에서 절을 한다.
"먼저 가니, 저 어린것이 어른들한테 절을 받는다"며 사진속 그녀를 질타하시는 친척 어르신.

나도 다른 분들과 함께 술을 따르고 절을 하며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술과 과일을 나누어 먹고 자리를 정리한다.

조용하고 조촐한 49제가 끝나고

어르신은 저녁식사를 같이들 하자고 하신다.

딸, 가주는 자리에 와주어서 고맙다고...


정은임 아나운서의 팬카페 분들과 인사를 하고
나는 시사회가 있다고 대성리에서 잠실행 버스를 탔다.

그들은 FM영화음악 방송 폐지에 관한 MBC의 일방적 조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다가
그녀가 갑자기 떠나자 기획의도를 바꾸어 그녀를추모하는 의미로 다큐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작은 힘이나마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좋아했던 영화 스태프들을 나중에 소개시켜드리겠다고 했다.
(내 주변 인물들중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그대들의 힘을...)


영원한 쉼을 누릴 그녀를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막히고 마음은 조급했다.


필커에서 영광스럽게 얻은 시사회 자리인데, 지각하거나 불참하게 될까봐 버스안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잠실에서 내려 교대로 갔고 교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탄 후 신사에서 내렸다.
극장으로 달렸다.

weirdo님은 안계신것 같고 8분 지각,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아무데나 빈 자리에서 영화를 보라는 다른분들의 지시에 따라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아, 생각해보니 시간이 없어서 하루종일 화장실에 못갔다.


<꽃피는 봄이 오면>. 영화는 길었다. 하루종일 화장실에 못간게 더욱 생각났다.

그래도 영화는 행복하다.
<슈퍼스타 감사용>과 맞물리어 화려한 인생의 주인공이 아닌 사람들, 인생의 쓴맛, 인생의 맹맛을
본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비는 내리고 시커먼 광부 아버지들을 위해 탄광촌 중학교 관악부 아이들이
번쩍이는 금관악기를 연주한다.

가난하고 사랑스런 그들과 라면만 먹는 선생님의 눈은 반짝인다.

하루종일 화장실에 가지 않고도 버틴 까닭은 하루종일 눈에서 물을 흘렸기 때문이리라.

벗꽃잎이 날리고 영화가 끝났다.


종로로 달린다.
sosimin님의 생일파티다.

이 시간만큼은 눈물 흘리지 않는다. 모두 다 둘러앉아 또 영화얘기다. 현장얘기다.

맥주잔을 들고, 9월 21일은 넘어가고, 이제는 Happy Tog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