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후배의 선택...

jfilm 2004.09.08 19:56:44
어느날, 안면을 트고 지내던 캐스팅 메니져한테 전화가 왔다.

자신이 단편을 제작한다는 거다. 뭐, 축하할 일이지.

근데 전화한 용건은?

스텝이 필요하단다.

쩝. 그런것도 없이 무슨 제작을 한다고.

그래도, 안면트고 지낸지 삼년인데... 나 연출부할때 열씨미 캐스팅해주던 사람 아닌가.
그래서, 주변에 놀고있던 내 대학 동아리 여자 후배와 남자후배를 연출부로 소개시켜 줬다.

그래도 여자 후배는 대학 졸업하고 영화한다고 M사 제작부로 잠깐 있기도 했던 친구였다.
이 친구는 스크립을 하고, 남자후배는 학원다니느라 다는 못하고 틈틈히 가서 도와줬단다.

하긴 단편인데, 무슨 차비가 나오겠나, 밥을 제때 주길 하겠나.

어쨌든 내가 도와줬어야 하는데, 시간이 안되서 어쩔수 없이 소개시켜주고, 난... 잊었다.


영화가 끝나갈때쯤 여자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촬영 잘 마쳤고, 좋은데 소개시켜줘서 고마웠다고.

그리고 자기는 결국 아버지의 압력에 못이겨, 아버지가 하라는 데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쩝.

그래도 충무로에 같은 여성동지 하나더 만들려 했건만...

집안 사정이 그렇다니 어쩔수 없지.

그렇게 그녀는 영화판을 떠났다.



그리고 어제. 바로 그 캐스팅 메이져, 아니 지금은 단편 피디님이시지.
전화가 걸려왔다.
여자 후배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거였다.

왜요... 전화안되요?
그러니깐... 번호를 바꾼거 같아요.
근데, 왜...?
후반작업 후정을 해야 되서요. 스크립페이퍼가 필요하네요. 테입을 다 뒤지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뭐, 그럼 도와드린 김에 끝까지 도와드려야죠.

난 두세통의 전화끝에 그녀의 번호를 알았고,
그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또... 잊었지.


잠시후.

귀청이 떨어질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후배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거 아닌가.


왜 그러나 자네.
언니가 내 바뀐 핸펀 번호 알려줬어요?
ㅡㅡa 응... 그랬지...

그녀는 그 단편작업했던 사람들이랑 인연을 끊고 싶어서 전화번호까지 봐궜다는 거다.

당체 무슨 소린지.
나한테 고맙다는 소리까지 한 후배아닌가...

그녀는 한 십분동안 앞뒤도 없이 마구 사건들을 열거하다가,
결국, 이 단편작업을 했던 것을 계기로 영화판을 접었다는 거다.

그러니깐, 도데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사람들 다 괜찮았고,
현장 분위기도 너무 좋았는데 왜.

감독이 자길 좋아했대.
그래서 그 감독이 찝쩝댔니?
그건 절대 아니었대.
신사적으로 잘 대해 줬대.

근데 왜.
자기가 감독 엿먹였대.
헉... 어떻게?
연락을 끊었대.
ㅡㅡ;;;
둘이 무슨 썸씽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니고. 아무일도 없이. 그냥 작업끝나고 편집실에서 일 다 마치고 조용히 모든걸 정리했대.
참나... 그게 뭐 엿먹인거야.

근데, 왜 영화판을 접었냐고.

글쎄...
글쎄...
편집실에서 작업 할때 였는데...
우리 팀은 다 멀쩡하고 별 문제 없었는데...

옆팀에서...
글쎄...
감독이...
남자 감독이...
여자 스텝을 강간당했는데...

우리팀 스텝들이 그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도 당연하고, 그렇게 당연하게 얘기하더래.
뭐라더라...'강간당해준 얘한테 전화오면 너무 무섭겠따!! 우헤헤헬~'하는 식으로.

ㅡㅡ;;;

그리고 편집실에서 뭐 그리 어젯밤에 여자랑 몇번했는지 자랑삼아 이야기를 해대는지.
정말 구역질나서 못들어주겠다는 거였다.

하긴 나도 스크립터 시절에 모편집기사님이
'아가씨, 가서 테이프좀 삽입해주세요','삽입하지 말고, 넣어주세요','삽입과, 넣는것과, 끼우는 것과 뭐가 틀린걸까?'
이따위 농담쪼가리를 좁은 방에 우글우글 열명도 넘는 남자 스텝들 사이에 낑궈있는 나에게 묻곤 했다.

그리고 영화 작업 같이한 제작부장이 촬영 한창일때,
남자스텝들을 데리고 좋은곳(...)을 데리고 갔었다는 후문도 들었다.

....

내가 충무로 온지도 인제 오년.

같이 충무로 생활 시작한 형들은 입봉을 하네, 마네...

나보다 나이어린 감독들이 수두룩해지고...

여자 감독들도 점점 많아지고...


그 여자후배에게 내가 뭐라고 ...

앞으로 여자 후배들에게 난 뭘...어떻게...

'바보야. 그거에 니 꿈을 접냐. 한심하게. 사회다른곳 가면 안그런줄 알아? 오히려 영화판 남자들이 더 순진해. 남자는 다 똑같아. 그냥 여자를 돈내면 젖탱이 주무를수 있는 단란주점 기지배들로 밖에 생각안한다니깐! 그냥 참고, 무시해버려!!' 라고... 그렇게...말을 했어야 하나.

왜 여자스텝들은 모여도 남자랑 어제 몇번했는지 말을 안하는 걸까.
남자가 옆에 있건 말건. 왜 물건 크기가 어떻고 얼마나 좋았고. 이런말을 안하는 걸까.

...
...
...

어쨌거나 그 후배는 배고픈 이 길을 전혀 배고프지 않아보고 떠났고.
....
차라리 배고파서 떠난다면...
마음 쓰려도 마음 아파도, 화가 나도....

이렇게 기분이 이렇게... 좆같진 안을텐데.

씨발이다.

젠장.

젠장.

아무리 욕을 해봐도.

젠장이다.

뭐라고 말을 하겠는가.

남자스텝들에게 당부의 말씀이라고 대자보라도 붙여놓을까.
'여러분 어제밤에 어딜가셨건 나 알바 아니지만,
제발 정력 자랑으로 이빨 까지 마세요'
당신이 어디서 강간을 하셨건 나 알바 아니지만,
당신의 그 꼬추를 언젠가는 잘라드리겠습니다...;

젠장이다.
젠장이다.
젠장이다.


정말 젠장이다.
앞으론 여자고, 남자고 영화판 소개시킬때.
'올바른 성교육과 성문화'에 대한 지침을 내린후 현장에 투입시키던지....

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