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thetree1
2004.07.22 21:36:38
일요일 신촌역 야외극장에서 동물학대 방지 행사를 펼쳤다.
이제 생각해보니 초복과 삼복을 앞둔 그들의 발언의 장이었고
여러 단체들의 조인으로 행사는 진행되었다.
행사의 기획이 꽤 허술하여 준비되지 않은 단체회장의 사회보기는
정말 우스웠다. 각 단체장이나 회원들을 소개하고서 박수를 치라느니, 하늘을 보라며 비가왔으면 이런 행사를 못 이뤄냈을 거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자기들만의 행사임에 뚜렷했는데
개모양의 80년대식 탈과 의상을 갖춰입고 나름대로 보신탕이 되기직전의 개 세마리 대화를 보여주었는데
인간은 아주 아주 나쁜 새끼였고 개들은 가엽고 인격까지 갖춘 인물로 묘사했었다.
뭔가 깨닫고 건지려고 끝가지 기다렸는데
살풀이가 볼만하였다.
어찌나 화장 아니 분장을 했던지 구미호 저리가라였다.
전반적으로 각 순서마다 일관성도 없었고 의견 조율로 잘 안된 것 같아 아쉬웠지만 서넛 보이는 외국인들은 감탄에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고 구경삼아 바라보는 것이 그냥 그랬다.
행사 중에 어떤 회원분이 김밥 50줄을 선사한다기에
이제사 마무리를 하는가 싶어 나는 빠져나왔다.
신촌거리를 지나 지하철역에 도달해서
디카로 셀프질을 하고 흐뭇해 했다..
[오늘은 그래도 널널하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구나.
동물을 사랑하는 맘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까] 하는 궁리를 하던중
역에 도착한 지하철을 타려는 순간 내 허리에 예리한 통증이 내 두발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한걸음 두걸음 옮길때 등뼈들의 갖은 아우성,,내 몸과 전쟁을 일으키며 피흘려대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도림가지 갔다..
인천까지 가려면 그 험란한 계단들과 지하도를 거닐어야 하는 데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신도림은 사람이 많았고
내 눈엔 통증으로 가득해서 도움의 사람을 두리번 거렸으나,,,
지하도 기둥만을 부둥켜 잡고 기대서 있었다..
겨우 겨우 걸어서 지하매표소 직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안내를 받아 관계자외 출입금지가 걸려 있는 사무실 쇼파에 앉게 되었다.
나이든 장급 아저씨가 어쩌다 [그렇게 됬냐 119를 불렀으니 참아라] 하셨다.
기다리는 어느 중간에 공익이 말하길
[아줌니 119 사람들이 역입구까지 올수 있겠냐고 하는데 가보세요]
했다.
내가 무슨 힘이 있나,,,하는 수없이 바르르 떨며 일어서는 데
장급 아저씨가 공익에게 차가운 핀잔으로 [니가 모시고 가든지 구조원 사람들을 일루 모시고 와] 했다.
나는 다시 제자리에 앉았고
그제서야 주황색 복장의 119구조대 도착
나를 부축였다.
그들의 생김새는 시골 어느곳에서 농사짓다가 막 온 사람들 마냥 검게 그을렷고 이발소에서 자른 머리와 마른 체구에 터프하게 보였지만
환자를 다루는 노하우가 몸에 익었는지 매우 부드럽고 자상하게 내게 안심의 말을 건냈다.
이젓 저것 꼬치 꼬치 물으며 내 몸 상태와 해결방법까지 상세하게
상의하려고 해서 너무 감사했다.
원래 신도림 근처 병원까지 안내하기를 부탁했지만
입원해야하는 상황에서 측근에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을 텐데 그건 아니다 싶은 것 같다 하시며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 병원을 알아봐야 겠다고 했다..
난 미안해서 어쩌냐 했더니 원래 관할 구역이 아니지만 어쩌겠냐...하셨다.
시간이 지나고 차는 막히지 않아 신속하게 한마음병원 집에서 30분거리의 종합병원엘 도착했고 나는 응급실로 옮겨졌다.
침대로 내려 눕혀져서 마지막 고맙다 인사를 하려했는데
그들의 뒷모습만을 봤을뿐 ,,그들은 내게 인사도 받지 않고 유유히
그 병원을 떠났다..
멋있었다..
다만 자기 책무에만 충실했을 뿐이라는 말없는 그들의 뒷모습에
맘이 참 따뜻해졌다.
그날은 입원수속을 받았고 나는 환자 5명이 묵고 있는 306실로
안정을 취했다.
같은 배를 탄 사람마냥 별다르게 인사를 하거나
뭘 격식을 갖추며 아는 체 하지도 않고 정말 말없이 ,,
나는 누웠고 티비의 코미디에 웃고 옆에 환자의 자녀분 되는 딸아이가 내가 약봉지를 떨어트리면 줏어 주고 물뚜껑도 열어주는 둥 정말 분위기 만점의 병동이었다.
사람은 말을 하게 되면 오해를 하게 마련이여서 하루에 한걸음씩 다가 가자고 했던 어린왕자의 여우가 떠올랐는데
역시나,,,한시간 두시간 지나며 내 몸상태와 모양새를 간음했던 아주머니들은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것 같았다..
당근 엄마 아빠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걱정하실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전화도 하질 않으셔서 속으로 그렇치,,,또 어디 친구집에 있나 부다 생각하시고 계실께야,,
전혀 서운해 하지 않았고
누워만 있었고 병원 밥이 참 맛있고나 했거 후딱 후딱 물 마시듯 식사를 했다.
일년에 한 3일정도는 매년 이렇게 병원 신세를 져야 하기때문에
늘 긴장 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측 불허의 이런 사고가 일어나니,,
나의 팔자도 참 그렇다..
그다음날이 되서
과장이라 칭하는 의사분이 나를 진료하는데
내 등을 톡톡 건디더니 어때요? 해서
나는 시원해요 했다.
옆에 아주머니가 재밌다는 듯이 웃으셨다.
의사분 머리스타일이 고이즈미처럼 약간의 곱슬기가 있었고
그윽하기까지한 눈매가 영락없이 예술가처럼 보여서 편했다
하지만 말투는 어눌했지만,,,
나는 하루만 입원하기를 말했다. 통원치료를 하겠다고 하니
의과적인 견해로 볼때 일주일은 입원을 해야하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며 강요하지 않았다.
시티사진을 처음으로 찍어 결과를 말씀해 주었는데
디스크가 명명백백했다.
하지만 내게 심각한 말투나 큰 일처럼 종용하지 않아서 이 의사분 베테랑이구나 했다. 환자인 내게는 죽을병처럼 느끼지만 정작 정보를 익히 알고 있는 의사에게는 치료하고 처방하는 길을 알고 있는 셈이니 평범에 가차운 일상적인 말투의 심리가 작용하는 구나 생각했다.
월요일 집에 엄마가 어디갔었냐고 하시길에
병원에 입원했다고
허리때문에 치료받았다고 한니까는
[미친년 하루종일 컴터 앞에 있으니 그렇치] 하고 욕을 하셔서
웃어버렸다.
아부지도 그럴줄 알았다며 테레비 리모콘을 돌리며 나한텐 눈길도
안주셨다.
쩝,,
그럴줄 알았다,머
암튼 그다음날 화요일은
엄마가 괜찮냐고 하며 병원가라 해서 병원엘 다녀오고
씨나료 강의 숙제가 좀 많아서 몇시간을 과제하니라 또 앉아 있어야 했다
다시 몰려오는 허리뼈의 아픔,,
땀 찔찔 흘렸지만 과제를 다 했다는 포만감으로 잠이 빨리 들었다.
수요일에 강의는 빼먹고 말았다.
차마 광화문까지 갈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한 저녁 10시쯤 다되어 인천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같은반 혜진에게
왜 안왔냐는 둥 다음 강의는 금요일이라는 문자가 날라와서
디스크 걸려서 죽을뻔 했어라고 말하기엔 별 신통치 않은 기분만 전달 할것 같아서 매직엘 걸려 배가 아퍼 못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헤진은 그렇구나 하며 담주에 보자 했다.
고마웠다.
목요일은 은공예 하는 날인데
10시에 나가봐야 하지만 병원엘 가지 못하고서 이동하면
다시 통증에 재발할것 같아 포기하고 누워있었는데
은공예 강사선생이 왜 안오냐는 전화가 걸려와서
디스크땜시 움직거리지 못한다 했더니
놀라워 해주며 개인적으로 자기 공방으로 시간되고 몸 괜찮으면
오라고 해서 그러마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아줌마인데,,강의비가 아깝지 않겠냐고 해서..
녜 그랬다.
내일은 풍년상회 엠튀가 있는데
같이 갈 동생 윤경한테 연락이 안되서
조마조마 하다가 겨우 연락이 되어
강남역 6번 출구 1:30까지 만나기로 했다.
몇달만에 만나는 윤경이와 어떻게 다시 친해져야 할지
걱정이 앞서지만 허리병도 기운을 되찾고 있고 해서
좋은 맘으로 만나야 겠다.
이제 누워야 겠다..
내일을 위해 셔야징,,
노는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