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tail감독의 미장센

pearljam75 2004.07.11 00: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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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국대에서 영진위 제공의 영화인교육프로그램 강의를 듣고 있는데요,
8월말까지,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제법 빡쎈 수업이에요.
현재 영화판에서 활동중인 분들을 위한 수업이라 수강생들은 다들 선수들이죠 뭐.
하여간 덕분에 술도 금요일, 토요일밖에 못마시게 되었지요.
그 다음날 수업에 지장이 가면 안되니까요.

그래서 어제, 금요일을 맞이하야 새벽까지 술을 마셨는데....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요.술도 덜깨고,...
맥주+와인+소주..... 벌컥, 홀짝, 홀짝.....
생각해보니 막판에 막걸리도 마셨군요.
이 강도 높은 두통은 막걸 리가 주범일터...

결혼을 한다면 꼭 해장국 잘 끓이는 남자랑 할테야요!
콩나물국, 북어국, 선지해장국....파를 왕창 넣은 뜨거운 곰국도 해장하기엔 좋지요.


어제 오후에는 '헌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봉준호감독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는 헌팅기간이
1년여에 걸친것이라 ...... 할말이 많다며 강단에 선 봉 감독님.

*헌팅 장소가 어떻게 텍스트에 작용하는가?

봉준호 감독


1. 섹시하다.

키크고 팔다리가 길고 몸도 좋고 (배도 나오기 시작한 것 같고)
안경을 쓴 얼굴이 귀여운 소년같고....
게다가 수업 중간에 운동화를 벗더니, 양말도
벗어 제끼고 맨발로 나무로 된 맨질맨질한 교단을 왔다리 갔다리 하며 강의를
했지요. 허거걱...... 너무 섹시하시군요. 그 맨발....

요즘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가 보니 머리도 못자르고 옷도 못갈아입고 왔다며
스스로를 "좌절한 고시생"같은 모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2. 정말 detail하다.
영화학과에서 정식으로 영화를 배운적이 없는 저는
이번 프로그램 강의를 통해서 꽤 많은 것을 배울수 있었는데요,
<살인의 추억>같은 경우,
매 씬마다 '미장센'이 뭔지를 보여주마!라며 공을 들였는데
저는 관객으로서 환장하고 드라마를 쫓다보니 (시나리오도 워낙 재밌잖아요)
그 공들인 것들을 봉감독님이 DVD 화면을 보며 찬찬히 짚어주기전에는
그 디테일함과 깊이를 깨닫지 못했지요.
등장인물들의 각각의 모티브를 처음 등장할 때부터 복선처럼 깔아두는 작업도
열심히 하셨더군요.

작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요. 영화든, 소설이든, 시인이든, 음악, 미술이든...
작가가 착하면 작품도 착하고
작가가 악마면 작품도 악마같이 나오고,
쌈마이 감독은 쌈마이 영화만 만들기 마련이죠.
물론 빼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이문열이나 김훈, 서정주같은 경우는
작가정신과 글재주가 따로 놀기도 했는데요...

봉테일 감독님은 컴퓨터같아요.
감독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3. 헌팅
<살인의 추억>연출부 여러분들의 헌팅대장정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재밌기도 했구요. 전라도, 충청도 지역을 진짜로 이잡듯 뒤졌다는...
한씬안에서도 컷트마다 촬영한 장소가 각각 다르니 프러덕션과정에서
이지방에서 저지방으로 이동하면서 톨게이트비만도 엄청나게 나왔다고...
(라스트 터널씬: 터널 소재지 경상도,
비 맞고 있는 김상경 얼굴 빅 클로즈업 경기도-보충촬영-,
터널씬 바로 전 박해일 자취방씬은 전라도)

수업중간에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연출부셨던 분이 계셔서
<사마리아>촬영횟수가 17회라는 전설이 있던데 사실이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연출부님 하시는 말씀 ....“11회였는데요.”
그러자, 봉감독님 102회 촬영한 자신은 뭐냐며, 반성해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도 드라마의 최고조에 다닿을때 소품이나 의상, 세트 등등이 완벽하지 않으면
관객은 드라마에 몰입할 수 없다며, 관객들의 신경이 인물의 눈을 보고 절정에 몰입 할 수 있도록
배경의 모든 것은 완벽하게 준비되어 관객들의 눈에 띄지 않게, 장면에 묻혀있어줘야한다는
이율배반성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관객이 드라마에 올인할 수 있도록 스탭들은 그렇게 열심히 갈고 닦았나봅니다.


4. <살인의 추억> 장면해부와 헌팅정보

①오프닝씬 황금물결 논- 전라남도 부안
넓은 황금물결 논씬을 위해 추수바로 직전에 달려가 찍은 장면인데요,
그 넓은 논들의 주인이 30명이어서 제작부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니다.
돈맛을 안 논주인들이 로케 비용을 더 내놓으라며 촬영못한다, 논바닥에 들어눕기도 하고요...

하여간 그런 농협광고 같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논에 뛰노는 아이들뒤로 작고 음습한
배수관에서는 강간당한 시체가 놓여져있습니다.
시체는 실제 여배우였고 그 좁은 배수관은 세트촬영으로 이루어졌답니다.
(광선조절의 문제와 실제 배수관에 벌레가 너무 많아 여배우를 그곳에 둘 수 가 없었다죠.
마네킹을 두기엔 사실감이 떨어지고요.)

② 백광호가 츄리닝입고 삽질하던 숲- 전라도 장성
<살인의 추억>에서는 백광호가 삽질도 했고 <플란다즈의 개>에서는 라스트씬을 찍었고,
<넘버.3>에서는 한석규가 최민식을 묻으려고 했던 곳이고
<태백산맥>에서는 빨치산들이 살던 곳이었답니다.
헌팅관련 데이터베이스가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있다면
한국영화 로케이션촬영은 더 윤택해질텐데요... 그러지못한게 현실이랍니다.

③김상경:안송여중 운동장->복도->양호실->변소->밭->피해여성의 집
운동장, 복도, 양호실, 변소는 모두 안송여중이라는 곳으로 나타나야하는데 역시
각각 다른 장소였답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하면서 같은 공간의 느낌을 주기위해 특징적 포인트를 잡아서
통일감을 줘야하는데요,
운동장에는 민방위 훈련중인 여학생들의 흰체육복,
복도에서는 김상경과 양호실로 향하는 여중생의 흰체육복과 흰 복도벽,
양호실에서는 양호침대, 변소에서는 양호선생님의 흰 가운,
‘흰색’을 포인트로 공간간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학교건물쪽에서 밭을 지나 피해여성의 집을 바라보는 김상경 씬에서는
그 한 시퀀스를 위해 집을 지어야만 했다는데요
화면에 비치는 2면을 짓고 지붕을 얹어서 문열고 들어가면 방이 아니라 또 밭이 보이는 ...
미술팀에서 그 2면짜리 집을 짓고는 얼마나들 뿌듯해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집은 멋진 작품입니다.

④백광호 고기집-
버려진 구멍가게를 고기집으로 변신시켰는데,
백광호가 자다가 굴러떨어지는 다락방이 있는 것이 참 맘에 들었답니다.
방내부에서 왼쪽에 다른 손님들이 술마시는 모습도 함께잡는 것이
공간의 깊이를 주는 것이었다며
헌팅가서 좁은 장소일 경우 카메라가 원하는 앵글이 나올 수 있는가를 가늠할 줄 알아야한다고 했습니다.

⑤세트촬영은 경찰서 내부와 지하 취조실뿐이었답니다.
경찰서 건물에서 스테디캠으로 백광호의 범죄재연을 찍는 씬은 실제 경찰서 건물이었는데
그 경찰서가 신청사로 이전하고 구청사를 비워둔 상태에서 맘대로 쓸 수 있어서
꽤 대규모의 스테디캠 촬영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⑥ 송재호 선생님 등장씬-전라도 장성
80년대 후반의 시골길거리 뒤로 거대한 시멘트공장이 들어서있는 곳을 걸어오는 송재호.
한달 후 시멘트공장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겠다고 통보를 하고
촬영하러 간 감독과 피디 이하 스탶들은 깜짝 놀랐답니다.

시멘트회사측에서 회색빛 공장건물을 발랄하게 연두색으로 칠해놓았기때문인데
도장비용만도 3천만원이 들었답니다.
감독은 피디와 생각합니다.

회색페인트로 칠한후 촬영을 마치고 다시 연두색 페인트로 건물을 칠해줄 경우
6천만원의 비용이 쓰여져야한다.
.........
그래서 그 회색건물은 CG로 만들어진것이랍니다.

⑦라스트 기차터널씬-경상도......어디라고 했지?
철도청에 기차와 기관사를 이틀간 쓸 수 있는 조건으로 2천만의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오프닝의 어둡고 좁은 배수관의 확장개념으로 컴컴한 터널이 선택되었는데요
S자 터널이기 때문에 건너편 끝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효과를 볼 수 가 있었다며
그곳을 헌팅한 연출부는 영화를 볼 때마다 자랑스러워할만하다고 말했습니다.

FBI에서 온 서류가 기차바퀴에 완전히 뭉개지고 찢기는 컷을 하나찍고
“기관사님! 후진이요!”
김상경과 박해일이 기차에 부딪힐뻔한 컷을 하나찍고
기차는 다시 후진,
터널 건너편에서는 백광호가 기차에 치어죽는 장면을 찍었고
이틀안에 기차씬은 모두 안전하게 찍을 수 있었다지요.

영어로 된 서류를 읽지못하는 송강호,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김상경에게 ...
“Can you speak English?"를 외치며 장난을 쳤다는....


그 밖에도 텍스트를 보며 많은 정보를 주셨지만 이만 정리하겠습니다.

장소 헌팅시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크리에이티브하게 (감독의 의도대로) 장면을
구성해낼 수 있어야 좋은 화면이 나온다며,

물에 뜨지도 않는 고무상어로 촬영을 해야했던 스필버그가 겪은 그러한 물리적 난관이
죠스 시점샷으로 극복되면서 존 윌리암스의 빠~밤, 빠~밤 음악을 만나
미학적 발전과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음을 마지막으로 역설했습니다.

영화인재교육프로그램 강의를 들으며 많이 좋아하고 있습니다.
발전하는 영화인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지요.

나비픽쳐스의 조민환 대표님(<제작시스템>강의)이나
튜브의 황우현 대표님(<영화기획론>강의)도 프로듀서로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제가 노트를 제대로 안해서리....

최두영 촬영감독님이 해주신 현상과 인화 강의도 참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촬영과 조명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지라....

<올드보이>, <태극기>, <복수는 나의 것>, <스캔들>등을 작업하신
정상용 콘티작가님의 수업도 열라 좋았고요,
육상효 감독님의 ‘시나리오의 시각화’ 강의도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저에겐 더없이 훌륭한 정보였습니다.

법률과 계약을 강의해주신 박형섭 변호사님과 신창길 청년필름 피디님의 수업, 당근 유용했구요.

올 여름은 두달동안 동대에서 느~무 느무 알찬 영화강의 들으며 술도 조금만 마시고
즐겁게 보내렵니다.
결실을 맺을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 뭔가 제대로 좀 할 나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무더운 여름 밤.
하루종일 발열, 오한, 설사, 구토등 심한 생리통과 숙취에 시달린 후.......
정신 좀 차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