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엔 참이슬이 없다.

pearljam75 2004.06.08 20:03:24
골굴사불상.JPG

고다보탑.JPG

12년전, 고등학교 2학년때 수학여행 갔던 경주엘 다시 다녀왔습니다.
월요일에 과외하는 애가 학교에서 수련회를 간다길래 과외를 지난 주말에 미리 보강하고,
저도 월요일 껴서 2박 3일 경주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죠.
혼자 갈 계획이었는데, 심심할 것 같아 출근없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
학교 동생을 꼬셔 같이 갔습니다.

2박 3일, 네병의 소주와 두병의 맥주를 마셨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웬종일 싸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는데, 가끔 저는 저의 체력에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난, 터미네이터여.

첫째날.

아침 6시 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반을 달려 경주에 도착,
불국사행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다달아 나무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었습니다.
불국사가는길, 수학여행때 내무반 같은데 2,30명씩 쑤셔놓던 숙박업체들을 보니,
그때 기억이 스믈스믈 나더군요.

불국사에 들어가 옛날생각하며 다보탑앞에서 사진도 찍고,
부처님께 정신 좀 차리게 해달라고 기도도 드렸죠.
그리고 석굴암행 버스를 타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석굴암의 부처님은 여전히 아름다우시더군요. 이마에 피어싱 아니, 보석을 이쁘게 박으신것이,

법정스님의 '진리는 하나인데-기독교와 불교'라는 글을 보면
예수님과 부처님의 만남을 상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대화없이도 그분들은 미소로 말하며 마음은 하나일것이라는 ... 불자와 기독교신자들이
타종교를 비방하며 으르렁대는것을 그분들은 상상하지 않는것이라는 ... 그런 내용같았는데.

진리의 모습이 여러개일찌라도 그 핵은 하나로, 서로 통하게 되어있으니,
종교전쟁처럼 얼탱이 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야하는데요.

하여간,
정보가 부족하여 가지 않아도 좋을곳을 가기도 했습니다.
"통일전"이라는 곳인데 박정희시절에 신라 화랑도를 기리기 위해 만든곳이라는데 영 꽝이었습니다.
유화물감으로 그린 시대상황 설명 그림들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어울리지도 않고.

버스를 한참 타고 (서울은 버스요금이 700원인데 거긴 기본 1,150원이라서 정산해보니
2박 3일 경주시내돌아다닌 차비가 택시비포함, 1인당 2만원 이상 나왔습니다.)

골굴사라는 절로 이동했습니다.
가파른 절벽에 부조로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그절에는 무술하시는 외국스님들과 불공을 드리는 흰진돗개가 살고 있어서 TV에도 몇번 나왔다고 하던데
정말 백구가 있더군요. 목에 염주를 두르고, 임신을 한 상태였습니다.
외국인스님은 소림사 포즈로 마당에서 운동중이셨고, 관광객들과 사진도 함께 찍으시더이다.

벌써 저녁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감포항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항구가 있는 마을인데 오징어잡이 배가 많았습니다.
바다와 배들을 보니 진짜 여행을 온것 같더군요.

싼맛에 여관을 잡았는데, 여관주인아줌마는 고스돕을 치느라 손님은 신경도 안씁니다.
수건 좀 더 달랬더니, 없다며, 쓰던 수건이라도... 거참.

옷을 갈아입고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회가 싼 편이어서 매운탕까지 신나게 먹었는데 참이슬을
팔지 않아 그 지역 소주인 참소주를 먹게 되었습니다. 참소주는 참 순하더군요.

여관에 돌아와 다시 소주를 먹으며 성인채널88번(한국에로-나름대로 재밌었음)과
MBC일요명화(타임투킬)를 오가며 TV관람을 하고,
구상중인 시놉시스를 몇줄 적다가 새벽에 잠들었습니다.

둘째날.

여행을 갈때마다 비가 오는건 무슨 조화일까요? 언제가든지, 어디로 가든지...
가뭄으로 고생하는 농촌지역으로 이따금 한번씩 여행을 가줘야겠습니다.

1회용 비옷을 사입고 방파제와 항구마을 시장을 돌며 구경을 하고 아침을 먹고
다시 경주행 버스를 탔습니다.
첨성대와 천마총을 돌고 포석정과 김유신장군묘 구경을 했습니다.
푸른 잔디로 뒤덮힌 커다란 무덤들은 언제봐도 신기합니다.

무덤 꼭대기까지 뛰어올라가 내려다보고 싶은 충동을 참기는 어려웠습니다.
신라의 왕족 귀신들이 밤에 꿈에 나타날까봐 그러지도 못하고
무덤 주변만 뱅글뱅글 돌았지요.

무덤구경을 너무 많이 해서 슬슬 지겨워질무렵 터미널근처로 와서 늦은 점심으로
막창을 먹었습니다.

우와, 막창구이가게 아줌마 역시 고스돕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장사는 신경을 안쓰더군요.
반찬 좀 더달라고 말하면 방에서 귀찮다는듯 대답을 합니다. 반말로...
거의 셀프로 가져가라는 식입니다.

서비스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정말 돈내고 밥먹기 싫어집니다.
내가 서빙 아르바이트할땐 얼마나 친절하게 서비스정신을 발휘했는데,
그럴꺼면 장사를 접든가.

......배를 두드리며, 이제 서울로 올라갈까?
그러다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문무대왕릉이 있는 봉길리행 입니다.

문무대왕릉은 수중릉인데, 모르고 보면 그냥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돌언덕들입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으로 수장을 했다는... 수장이 아니었나? 아이쿠... 정보부족.

작년에 강릉에서 민박을 하다 막무가내로 방에 들어와서 뛰어노는 민박집 아이들한테
한참 밟힌 경험이 있어서 다시는 민박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기에
여관을 찾았지만 해수욕장이긴 해도 감포항처럼 숙박업소가 많이 않아서 1km를 뒤져
유일한 모텔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근처에 식당도 없고 가게도 없어서 아쉬운데로 미리준비한 컵라면과 참이슬,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 모텔엔 외국 포르노채널이 나오던데
한국에로비디오가 낫지, 외국 포르노는 지겨워서 볼수가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일본 야오이 만화가 훨씬 후끈~ 달아오르더구먼. 아참, 딸기가 구속되었다죠?

캐치원에서 하는 섹스 앤 더 시티 시즌6편 마지막회를 보며
술을 홀짝거렸더니 소주도 금새 떨어지고 맥주는 훨씬 전에 바닥났고
술이 모자랐지만, 배달되는 곳이 없어서 그냥 잤습니다.

셋째날.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일출을 보았습니다.

첫차를 타고 1시간 동안 달려, 다시 경주터미널
곰국으로 해장을 하고 9시반 서울행 버스표를 끊었습니다.

서울가기 싫어, ...... 징징거려보았지만 내고향 서울, 안가면 어쩔것입니까.
버스가 천안을 지나 수원을 지나 서초동으로 들어오니 가슴이 답답해져왔고, 탁한 공기가
서울에 왔구나,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신촌, 우리집에 오니 눈먼 미미가 꼬리를 치며 날 반겼습니다. 불쌍한 것!

자, 다음엔 또 어디로 떠날지 생각해보렵니다.

우선 한 몇주는 또 압정처럼 제자리에 박혀 조용히 지내겠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