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다시 피우고 싶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난다.
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형식manner을 지키려 하지 않을까?
가까울수록 쉽게 서운하게 만들고 심하면 상처까지 입힐 수 있는데,
나같은 소인배는 사소한 일에 목숨걸고 쉽게 상처를 받으니까........
내가 시나리오 쓴답시고 집에서 뭉개고 있다지만 나름대로 바쁘고 읽을 것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바쁘다면 비웃고, 돈도 못벌고 시간 많아 보이는 백수라는 이유로 대신 여권을 만들러 종로구청에 가야하는데
부탁도 정중히 하지 않고, 도장도 알아서 파라고 하고, 돈도 5만원 다 안주고... 정말 기분 나쁘다.
제일 기분 나쁜 일은 돈받고 쓰는 원고가 아닌 공모전 제출용 시나리오를 쓰는 나를, 나의 작업을 인정도 해주지 않고
-사실이지만-그냥 놀고있는 사람 취급하거나 허황된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하는
실용주의파들의 시선이다. 그 시선의 주체는 부모님도 포함되어있지만, 뼈골빠지게 등록금 대줬더니
졸업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노는게 인생의 전부인게 이해가 안가는 까닭은
읽으나 안 읽으나 당신들의 삶에 별 영향이 없었던 소설 나부랭이나
명칭마저 생소하며 어째꺼나 피땀흘리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시나리오 작업같은 걸, 그것들의 가치같은 것을
아예 모르실 수 있으니, -그걸로 돈을 버는 건 부당이득, 불로소득이라고 생각하신다 해도!-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뼈골빠지게 등록금을 대준적도 없거니와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했던 나의 이상이 뭔지를 알아야하는 친구들은
달라야하는거 아닌가?
같이 예술의 전당 피아노 연주회가기로 했는데 못가면 못간다, 늦으면 늦는다, 전화를 해줘야하는거 아닌가?
티켓을 내가 가지고 있는게 아니니 뭐 ..... 어떡할수도 없고.
이건 피해의식이나 강박관념이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꼭 연봉 3000 짜리 직장을 얻어 월급쟁이 생활을 하라는 법은 없는데
그런 생활을 하고 있지 않으면 비정상적이라는 건가?
별 놈의 스타일과 모습들, 형태들이 빛을 발하며, 또는 빛 같은건 발하지 않고 알아서 조용히 살며
세상의 구성원으로 살고있는데 .... 무슨 대학교, 무슨 대기업, 무슨 박사학위,
무슨 고시 합격, 무슨 판검사와 결혼 등 획일화된 안전빵인 모습과 사회적 지위를 강요당하는 건 신경질이 나기도 한다.
나한테 일정한 사회 구성원으로써의 모습을 기대하는 동시에 자신의 잣대에 맞지 않으면
딱한 표정으로 보기까지 할 경우가 생길까봐 두렵기까지 하다.
난 지금 어떤 안전빵과도 관계가 없는데...... 나도 돈 많이 벌고 안전빵으로 살고 싶기도 한다.
비난하면서 거기 편입되고도 싶은 이 얄팍한 인성이라니....
박완서, 정태춘, 임순례, 김동원, 지승호, 최영미, 노희경, 강준만, 장정일, 박일문, 조경란......
뭐, 그런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난 그들처럼 살 수 있을까?
재능과 열정이 부럽지만 그들이 겪은 어려운 시절은 나는 좀 그냥 넘어가버리고 싶은 알량한 기회주의도
내가 가진 재능과 복 중 하나였으면 싶고.....
술을 먹으니 또 횡설수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기생충 탐정 마태우스님이 쓴 글을 옮긴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자유방임형 교육 스타일에 관한 글이므로 퍼왔다.
1. 마당닭
마당에서 자라는 닭(마당닭이라고 부르겠다)은 대개 몸집이 크다. 키도 오똑하고, 눈도 부리부리하며,
달리기도 잘한다. 겉모습을 봐도 충분히 놀랄 만하지만-친구 하나가 "저런 닭은 동물원에 가야 하는 거 아냐?"라고
한다-백숙을 시켜보면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삼계탕에 나오는 닭 한 마리는 우습게 먹는 사람도 거대한 크기를
가진 마당닭을 보고는 질려 버린다. "저 다리 굵기 좀 봐. 저게...닭이야?"
마당닭이 큰 까닭은 마당에서 크기 때문이다. 그 닭들은 마당 여기저기를 쏘다녀 다리근육을 발달시키고,
사료 외에도 마당에서 자라는 각종 벌레들-구더기를 포함해서-을 쪼아먹는다.
풍부한 영양과 운동이 제공되니, 큰 닭으로 자라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2. 그럼 양계장에서는?
양계장에서 대량으로 사육되는 닭들을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다. 철장 하나에 수십, 수백마리씩 들어가 있는데,
겨우 서있을 정도의 공간만이 닭들에게 허용된다. 그저 한 자리에 서서 가끔씩 주는 사료를 먹는 게 그들 일과의
전부인데, 배설물을 선 자리에서 싸니 환경 또한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그 결과 몸은 왜소해지며,
한 마리라고 해봤자 한사람이 먹기에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들에겐 삶의 즐거움나 미래에 대한 비젼 같은 것도
없어 보인다.
3. 김어준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를 만났을 때, 그의 예리함과 유쾌함에 감탄한 적이 있다.
운동권에서 학습을 받은 것도 아닌 그가 그토록 고강한 내공을 지니게 된 이유가 뭘까?
<쾌도난담>의 일부를 소개한다.
[김어준: 난 학교다닐 때 도시락을 잘 안싸갔어. 왜냐? 엄마가 귀찮아 하니까.
김규항: 어준이네 집은 어떤 시스템이냐 하면,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게 하나도 없어.
그 대신 통제나 참견도 일체 없어. 그러니까 이런 애가 나오는 거지.
최보은: 이상적인 가정이네....
김어준; 그리고 맛있는 거 있잖아? 그럼 부모님들만 잡수셔. 너는 먹을 날이 많이 남았잖아, 이 자식아,
이러면서. 아, 난 정말 우리 부모님들 인간적으로 좋아해.
최보은: 말 되네. 그렇게 살아야지.
김규항: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해주는 게 없는 대신 나중에 보상을 바라거나 섭섭해 하지도 않는 거야.
아주 초근대적인 시스템이지....
김어준: 해주는 것이 없었다기보다, 그런 식으로 통제 없는 시스템 속에서 난 자율적인 인간이 된 거지.
맘대로 하되 그 결과도 스스로 책임지는 거지.
김규항: 애는 나중에 애 낳으면 어떻게 키울 거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을 했대요.
어차피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되니까 그냥 놔둘거다.
김규항: 김어준이라는 독특한 인간, 운동권이라든가 제대로 학습을 했다든가 하는 경험이 없으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대단히 정확하거든. 내가 애를 '비학습 좌파'라고 부르는데, 배경에는 그런 부모님이
있었더라는 거지(244-245쪽)]
김어준은 대학을 다닐 때 2년인가를 휴학을 하고는 현지에서 돈을 벌어가면서 세계 각지를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김어준은 하고픈 일을 다 해가면서 자란 '마당닭'이며,
그래서 다 자란 후에 저토록 예리한 비판적 지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 시대 대부분의 학생들은 '양계장' 닭으로 길러진다. 학교가 파하면 바로 학원에 가고, 밤늦게 집에 갔다가 새벽에
학교로 오는 숨막히는 생활을 중학 1학년때부터 반복한다. 입시는 전쟁인데, 자율적인 인간이고 비판적 이성이
도대체 뭐가 중요한가. 자식에게 더운 밥과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는 어머니는 나중에 혼자 김치에다 식은 밥을 드시며,
자식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으신다. 어머님은 수시로 말씀하신다.
"공부 잘해야 해! 공부! 공부!" 그런 행위가 자식에게 얼마나 부담이 될까?
마당닭은 식용 뿐 아니라 싸움닭, 박제 등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식용으로 쓰지 못하는 양계장 닭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맛있는 닭이 되기 위한 경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의 사회는 그렇게 양육된 양계장 닭들이 지배할 거다. 새벽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라.
어디선가 닭이 구슬피 우는 소리가 들릴 테니까. "꼬---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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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울의대를 졸업한, 안전빵 인생을 즐기고 있는 마태우스 탐정이 이런 글을 쓴다는게
설득력이 디게 완빵이네~ 할 수 는 없다고 본다.)
하여간, 대범하고 멋진 마당닭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일이 잘 안풀릴때는 울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그렇게 불효스런 생각을
가끔 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담배가 다시 피고 싶은 꿀꿀한 날에는.......
아주 오랫동안 끊었던 담배인데...... 오늘은.......필까? 말까? 필까? 말까? 필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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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담배 한 개비 훔쳐서 몇 모금 빨아보니, 역시 별로다.
다시 겸손히 생각해보니, 내 친구나 가족에게 나를 자랑스러워하게끔 만든 적이 별로 없다.
결과물이 당장 보이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화가 나는 것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화풀이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날 많이 이해해주지 않더라도 인고의 세월이 모자르니 조용히, 열심히, 잘 써야겠다.
언젠간 나를 좋아하는 그 사람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할만큼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영화가 탄생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나는 강인한 낙관론자가 되었니까. 흐흐흐...